<이재호의 현안 브리핑>

지난해 12월 법률이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기준만 충족하면 외국인환자를 유치하려는 의료기관 등록과 의료법인 설립, 재산처분을 인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정부입법으로 발의됐다.

그동안 법에서 명시한 외국인 환자 유치 의료기관 등록이나 의료법인 설립, 재산처분 기준을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설립을 인가하지 않고 인가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관례를 없애 국민의 예측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 법개정을 추진하는 취지하고 한다.

법안발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는 의료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많아 보인다.

법안을 개정해 외국인환자 유치기관 등록과 의료법인 설립 및 재산처분 인가를 원칙적으로 허용할 경우 자칫하면 민간인에 대한 병원설립 진입 장벽이 낮아져 최근 환자유인과 허위청구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사무장병원들이 지금보다 더욱 더 활개를 칠 개연성이 높다.

의료법 제33조(개설 등) 제2항의 경우 비영리법인의 개설에 관한 규정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해 거의 무제한적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 있는 실정이다.

이렇다 보니 최근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을 근거로 의료기관을 설립해 환자유인 행위 및 허위청구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의료생협의 폐단이 불거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법안이 개정될 경우 의료법인 형식만을 빌린 비의료인 개설 의료기관이 난립할 우려가 크고, 돈벌이에만 급급한 의료기관들로 인해 의료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경쟁에서 밀려나게 된 선의의 의료기관 피해가 발생함은 물론 종국에는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건강보험재정 재정을 더욱 악화시킬 개연성이 크다.

이렇게 될 경우 국민에 대한 행정편의 제공의 발로에서 법인설립에 관한 허가요건을 완화한다는 개정취지와는 달리 자칫 의료계의 질서문란 등 많은 폐단과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다.

따라서 의료기관 개설에 관한 한 당분간 현행의 허가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보여진다.

이와 맞물려 비영리법인 설립을 기존 허가주의에서 인가주의로 전환해 비영리법인 설립을 쉽게할 수 있도록 하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이 법안 역시 개정될 경우 법인의 합병․분할에 관한 일반원칙이 작용해 향후 의료법 등 개별 법률에 영향을 끼쳐 추가 개정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고, 쉬워진 비영리법인 설립이 의료기관 개설 난립으로 이어져 의료체계의 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도 높다.

나아가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기관의 합병․분할이 양성화 될 경우 지역거점병원 및 의료전달체계 붕괴는 물론 자본력이 열악한 의료기관들이 거대 의료자본에 의해 잠식당할 우려가 크다.

정부는 민법 및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 개정안을 제출하기 이전에 만연하고 있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의료기관 및 의료인이 아닌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한 이른바 사무장병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 방안부터 내놓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료기관 개설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정부는 탁상행정 위주의 의료정책이 아닌 의료전달체계 개편 등 의료계 기능재정립을 통해 무너져가는 의료기관을 살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주길 기대해 본다.

이재호는?

1985년 한양대 의과대학 졸업2006년 전 제34대, 제36대 대한의사협회 정책이사2011년 의사협회 의료정책고위과정 간사2011년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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