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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톡] '카풍아 진료소'의 불편함이라면 그리움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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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채팅 인터뷰라. 시차적응이 안돼 약간 졸린데, 어서 시작하자.  sunsu : 알았다. 첫 질문 들어간다. 아프리카에서 1년 넘게 의료봉사를 했다고 들었다. 그곳에 얼마나 있었나. 

이호준 : 아프리카에서 머물렀던 시간은 통틀어 16개월이다. 의료봉사는 의대 졸업하고 2011년 8월부터 한국에 귀국하기 직전까지 총 4개월 동안 했다.

sunsu : 아프리카 의료봉사가 단순한 여행이나 일시적인 도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호준 : 사실 예과 1학년 때 휴학하고 NGO를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단 등에 1년 정도 머물렀다. 그 지역엔 생각보다 의사 수가 적었고, 환자는 많았다. 의사가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리고 의대를 졸업하고 5년이라는 수련 과정을 앞두고, 아프리카가 필요로 하는 의사가 누구인지, 내가 진정 그 일을 할 수 있는 지 알기 위해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떠났다.

sunsu : '집 떠나면 개고생'이란 말도 있다. 현지에 머물면서 고생도 많았을 것 같은데.

이호준 : 신기하게도 특별한 고통이 없었다. 불편함이라면 그리움 정도. 다만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엔 전기도 끊기고, 전화도 불통이 된다. 화장실이 따로 없어 현지인과 공동 화장실을 써야 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가장 고민이었던 건 제 짧은 의료지식과 경험이었다.

sunsu : 고통도 별로 없었다니, 그만큼 아프리카에 매료된 건가?

이호준 : 아직 지구상에 남아있는 순수함이랄까. 사람마다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 다르듯이, 내겐 아프리카를 보는 순간 ‘아 이 땅이 내 땅이다’라는 (마치 한눈에 여자에게 반하듯이) 느낌이 들었다.

무의촌 지역인 majyana에서 진료 중인 모습.

sunsu : 봉사를 떠난 지역의 의료환경은 어땠나?

이호준 : 의료봉사 캠프가 설치된 나라가 스와질랜드였는데, 어느날 정부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방문진료를 간 적이 있었다. 24시간 응급실인데도 불구하고 EKG나 Emergency Lab을 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문진과 신체검진으로 거의 모든 병을 진단하는 시스템이었다.

sunsu : 4개월간 봉사했던 병원의 규모와 의료진 구성이 궁금하다. 이호준 : 봉사했던 곳은 스와질랜드의 ‘카풍아 원광 진료소’다. 진료실과 약방 하나가 전부였다. 기초보건교육을 받은 원불교 교무님과 약학박사 학위가 있는 교수님이 상주했다. 의사는 물론 나 혼자였다. 의료장비는 음, X-ray, Lab 장치도 없는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sunsu : 그곳의 가장 흔한 병과 치료 방법은?

이호준 : 가장 흔한 병은 역시 감기환자와 관절염환자였다. 하지만 이들 못지 않게 설사병환자들도 많이 왔다. 감기나 관절염환자의 치료는 한국과 비슷하다. 설사병 환자의 경우 지사제를 처방하기보다는 ORS(경구용전해질제제)를 처방했다. 문제는 처방을 하더라도 환자들이 그것을 녹여먹을 수 있는 신선한 물을 구하기 힘들다는 거였다.

sunsu : 에이즈 환자도 많다고 들었다.

이호준 : 대략 하루에 5명 꼴로 HIV환자를 봤던 거 같다. HIV는 정부병원에서 해외원조로 이미 ARVs(항레트로바이러스제) 사업을 하고 있어서, 내가 있던 진료소에서는 영양지원사업을 주로 진행했다.sunsu : 짧은 기간이지만 기억에 남는 환자도 많았겠다.

이호준 :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라면 ‘놈필로’ 라는 20대 후반의 HIV환자다. 스와질랜드에 도착하고 얼마 안돼 바로 방문진료를 갔을때 보았던 환자였다. 그는 한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골방에서 촛불 하나 켜놓고 하루종일 방에만 누워있었다. 지속적인 기침과 설사를 동반했는데, 영양 상태가 너무 안 좋아 진료를 시작한 지 한달 만에 세상을 떠나버렸다. 의사면허를 따고 처음으로 맡은 환자라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환자이지 않을까 싶다.

sunsu : 소셜미디어 활동이 눈에 띈다. 팔로워 수(1,150)에 비해 트윗 수(6만5,000)가 엄청나다.

이호준 : 2010년 5월 경에 트윗을 시작했다. 스와질랜드에 있을 때는 하루에 1,000트윗까지 해봤다. 신변잡기적 주제가 대부분인데, 가장 반응이 좋은 주제는 술 이야기(맥주, 와인)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Sithobela 지역 무의촌 봉사캠프에서 나이지리아,쿠바, 콩고민주공화국, 짐바브웨에서 온 의사들과 함께.

sunsu : 트위터 활동 중에 곤란을 겪었거나 뜻밖의 인연을 만난 적은?

이호준 : RT때문에 제가 작성하지도 않은 글이 마치 내가 트윗한 것처럼 보인다든지, 내가 트윗한 글이 수정당해 의도와는 다르게 알티가 된다는지 하는 경우가 있을 때 당황스러웠다. 반면 트위터는 내가 스와질랜드에 가게 해준 결정적 계기를 제공했다. 트위터에서 알게 된 @byontae님(정준호, 런던위생열대대학원 기생충학석사)이 그곳에 대해 상세히 알려줬고 의료봉사가 필요한 지역임을 일깨워줬다.

sunsu : 앞으로 또 아프리카로 의료봉사를 떠날 계획인가?

이호준 : 기회가 된다면 아프리카 어디든지 다시 갈 거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주는 의사 아니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더 이상 외국의 원조가 없더라도 그들이, 그들의 기준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sunsu : 오지 의료봉사에 관심있는 의사들을 위해 조언한다면?

이호준 : 무작정 수련의를 마치고 오지로 가겠다는 마음가짐보다는 학생 때나 졸업후, 또는 틈틈이 떠나는 게 현실적인 것 같다. 봉사의 마음이 우러나올 때 봉사를 떠나서 자신의 성장과 그들의 필요를 동시에 맞춰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봉사와는 별도로 그런 곳(오지)에서 살아남는 생존훈련도 준비 과정 중 하나다.

sunsu :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호준 : 혹시 아프리카 봉사에 관심있는 분 중에서 카풍아에 가시고 싶은 분이 있다면 연락 부탁드린다. 내가 떠나 온 이후로 의사가 없는 상황이라 마음이 편치 않다.

sunsu :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카풍아로 의료봉사 떠날 지원자를 꼭 찾길 바란다.[ 그는 현재 티스토리에 'B급감정상태(http://statbemotion.tistory.com)'란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 중이며, 여기에 '카풍아 진료소 일기'란 제목으로 아프리카 의료봉사 활동에 관한 내용을 상세히 올려 놓았다. ]

서의규 기자  sunsu@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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