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을 계기로 이른바 '무상시리즈'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무상급식의 경우 찬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각 지자체를 중심으로 무상급식 도입이 속속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무상의료의 경우 만만찮은 재원부담과 국내 의료공급체계 등을 따져볼 때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런 가운데 전국보건의료노조와 한국환자단체연합이 ‘무상의료 시대! 한국 의료의 길을 찾는다!’는 기치를 내걸고 지난해 11월달부터 정책 대안마련 워크숍을 시작했다. 양 단체는 올해 2월까지 총 15회 연속으로 진행되는 이 워크숍을 통해 무상의료 도입의 전제조건인 '공공보건의료체계 확립과 의료공급체계 개편'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본지는 4개월에 걸쳐 진행되는 워크숍을 현장 동행하며 과연 국내 의료환경에서 의료소비자와 공급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무상의료 도입 방안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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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병원에 산재 환자가 없다?'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이것이 국내 산재병원의 현주소다.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생하는 산재 사망자 수는 매년 2,000명을 상회하고 있다. OECD 평균의 3배에 이르며 대표적 복지국가인 스웨덴에 비해서는 10배나 많은 숫자다.

그러나 업무상 사고 또는 직업성 손상률만 놓고 보면 OECD 평균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낮은 재해율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많은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해율은 낮은데 사망과 같은 중대재해만 높게 나타나는 현상은 사망재해가 아닌 일반 재해의 대부분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가 업무상 재해를 당할 경우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본인 부담이 높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현재 국내 산재병원의 산재전문병원도 아닌 지역거점병원도 아닌 어중간한 역할을 하고 있어 산재 노동자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산재병원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산재보험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산재환자, 근로복지공단 사전승인 절차 폐지해야"전국보건의료노조와 한국환자단체연합은 지난 19일 인천산재병원(구 인천중앙병원)에서 ‘산재보험 및 산제병원의 현실과 과제’라는 주제로 의료공급체계 개편 12차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날 워크숍에서 가천의과대학 예방의학과 임준 교수(사진)는 주제발표를 통해 “건강보험 환자 중 사고로 치료받은 경우를 조사한 결과 업무상 재해로 산재보험 처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2006년 기준으로 107만명”이라며 “그러나 이들 중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은 사람은 8만명에 불과하다”고 개탄했다.

임 교수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받을 경우 많은 문제를 발생시킨다”며 “건보 재정 악화의 상당 이유가 산재 처리를 받을 사람이 건보 처리 받기 때문에 건보 재정건정성 악화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건강보험은 노동자가 50%를 부담하는 반면, 산재는 사업주가 100%를 부담하기 때문에 산재 노동자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경우 사업주가 부담해야 할 치료비를 노동자들이 부담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건강보험은 휴업급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재보험법상 재해 직전 3개월간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토록 규정하고 있다.하루 평균임금이 5만원인 근로자가 산재처리를 받아 30일간 휴업급여를 청구하면 105만원의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경우 인정이 되지 않는다.

이처럼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다보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제대로 된 재활치료를 못받고 다시 일터로 돌아갈 가능성 높다.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장으로 복귀해 업무를 보다보면 증세가 재발하게 되고 다시 병원을 찾아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재보험의 절차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010년 4월 근로복지공단과 한국산재의료원이 통합한 후 산재환자가 산재보험 처리를 받기 위해서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임준 교수는 “현행 산재보험은 산재 노동자들에게 업무 관련성 입증을 요구하고 근로복지공단에 의한 사전승인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사회보험이라 보기 어렵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절차를 없애고 별도의 절차 없이 산재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통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산재보험의 예를 들었다.

비스마르크 산재보험은 사업주에게 기금을 걷어 그 기금으로 산재를 보상해주고 대신 사업주는 과실의 책임을 지지 않게 한다는 점에서 노동자가 아닌 사업자를 위한 성격이 크다.

임 교수는 “우리나라 산재보험은 산재가 발생했을 때 직업성보다 사고성을 우선으로 따지기 때문에 노동자가 직접 업무 관련성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스마르크 산재보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때문에 107만명이 산재임에도 불구하고 8만명만 산재처리를 받고 있어 산재병원의 본질적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산재의료전달체계 및 공공보건의료체계의 필요성, 산재환자 및 지역사회의 요구 등을 고려할 때 산재병원은 치료부터 재활까지 토탈 케어가 가능한 국내 최고의 산재종합 의료기관의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병원은 늘 정책 우선순위 뒷전에 존재"주제발표 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산재병원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위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근로복지공단 라승관 의료사업국장(사진)은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라 국장은 “산재병원이 처음 설립됐을 때는 지역내 독보적 병원으로 존재했지만 민간병원들이 들어서면서 정부의 투자가 단절됐다”며 “이로 인해 민간병원과의 질적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경쟁구도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라 국장은 근로복지공단에서 9개 산재병원을 이끌어 나갈 방안으로 수가를 현실화 시키고 재활 프로그램등을 개발해 산재의료 측면에서 민간병원을 리드하는 롤모델 역할을 해야 한다는고 제시했다. 

의사결정, 집행결정, 정책결정의 효율화 필요성도 강조했다.

라 국장은 “변화된 정책 패러다임으로 민간이 안하는 부분을 특화시켜야 한다”며 “이를 통해 사회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운영을 효율화해 보다 나은 서비스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김자동 의료지부장은 인력부족을 가장 시급한 현안과제로 꼽았다. 

김 지부장은 “현 정부 이후 공공기관에 대한 인력개편이 병원이라는 특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10% 구조조정이 단행됐다”며 “전국 9개 산재병원 간호사가 천명도 안되는 상황에서 질 높은 의료서비스의 제공이 안돼 환자들이 찾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국 효율성이 저하된 인력 구조로 인해 산재병원을 바라보는 환자들의 인식들이 나빠진다는 결론이다.

오는 12월 대선을 염두에 두고 산재의료 정책의 밑그림을 보다 크게 그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정책국장은 “산재병원은 늘 정책의 우선 순위의 뒷전에 존재했다”며 “산재병원에 대해 지금보다 더 커다란 요구가 가능한 시기인만큼 근로복지공단 의료지부와 보건노조가 큰 역할을 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을 마친 후 임준 교수는 “지난 10년 동안 산재에 대한 끊임없는 논의가 있었지만 실제로 변화된 것은 없었다”며 “이제는 산재환자는 산재보험으로, 일반환자는 건강보험으로 이원화해 모든 국민이 민간보험 필요없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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