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쓰는 기자나 글을 쓰는 작가, 다큐를 찍는 감독 모두 가장 도전이 되는 일들 중 하나가 인터뷰 섭외일 것이다. 물론 소속 기관이 어떤 수준이냐에 따라 그 도전의 정도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당연히 공중파, 중앙 일간지, 베스트셀러 작가들은 인터뷰 섭외를 위한 노력은커녕, 오히려 기꺼이 인터뷰를 해주겠다는 대상을 리스트에서 간추려내는 작업이 더 주된 업무가 될 수도 있겠다. 그게 과장이라면 최소한 전화 한 방에 인터뷰 섭외를 쉽게 할 것으로 생각한다.

당연히 필자와 같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실은 촬영 섭외 당시에는 감독이라는 호칭도 어색했던 아마추어 제작자였지만)의 입장은 다르다. 인터뷰라는 과정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세 시간을 아무런 대가없이 인터뷰어에게 인터뷰이가 자가 자신이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 성실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무상의 서비스 제공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진실에 가까운 사실들을 대중들로 하여금 알아보기 쉽게 간추려 놓는 것이 인터뷰어의 일이다.

여기서 인터뷰이에게 굳이 대가로 제공되는 것이 있다면, 정보와 소요 시간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에 차와 커피 정도일 것이다.(필자의 경우 주로 독거노인이나 어르신들을 뵐 때 먹을 것을 사들고 집으로 찾아가곤 했다) 어쨌든 결론은 인터뷰를 허락한다는 것은 자기 시간을 쏟아서 기껏해야 커피 한잔 대접받으며, 자신이 아는 정보를 무상으로 제공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일을 쉽게 허락할 리 만무하다. 특히나 독립다큐멘터리스트들에게 말이다. 더욱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고발성 내용을 담고자 하는 ‘간 큰 초짜배기’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에게 말이다.

그래서 환자분들을 제외한 인터뷰 섭외 과정에는 나름 어려움이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굽실거리기를 해봤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PK(편집자주, Polyclinic,사전적 의미는 '종합병원'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본과 3~4학년의 의대실습생을 지칭)실습 돌 때를 제외하고 거의 처음인 듯했다. PK 실습 때야 어리바리한 코흘리개로서 눈치 100단이 되어가는 사회화 과정이었기 때문에 레지던트나 스텝 선생님들께 머리를 조아리는 것은 자연적인 행동지침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굽실거린 것은, 정말 말 그대로 ‘굽실굽실’이었다. 얼굴에는 “당신이 날 안도와주면, 난 정말 어려움에 빠질 것입니라”라는 표정을 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달며, 허리와 어깨를 측은한 느낌이 들 정도로 굽히면서 번호를 따내기 위해 대충 다음과 같은 말: “당신이 도와준다면, 대가는 크게 없겠지만, 사회에 도움이 되는 큰일을 해주는 의미 있는 일이며, 동시에 불쌍한 독립 영화감독 살려주는  일입니다“을 되뇌곤 했다.

PK, 그러니까 스물다섯 살 이후에 그래본 적이 없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되기 힘들 것이다. 생각해보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그 어떤 직장의 초보자들도 눈치를 보며 몸에 배어야 하는 굽실거리기를 필자는 7년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인터뷰 섭외와 다큐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스물다섯 이후 평생 안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병원에 있는 의사는 그 병원 사회 계급의 꼭대기에 있다. 같은 의사들 사이에서도 그렇게 심한 ‘굽실거림’은 없다. 병원 안에서 환자, 간호사, 조무사, 파라메딕, 행정 분야 모두 위에 의사가 존재한다. 따라서 개인적으로 인터뷰 섭외 과정에서의 경험은 (죄송하지만) 새로운 충격이었다. “내가 세상 참 편하게 살았구나. 아쉬운 소리 안 해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직종이 많지는 않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혹시 병원 내 계급적 분위기에 젖어 30대 초반인 내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례한 적은 없었을까 살짝 반성해보기도 했다.

너무 착한 척하고 끝내는 것 같다. 고백하건데, 필자는 누군가에게 무턱대고 무례한 적은 없지만, 상대방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서는 굳은 얼굴로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상위 계급의 위엄을 내세우려했던 것 같다. 

누구나 어느 지위에 올라서면, 당연하게 그 지위가 허락하는 권력에 정말 놀랄 정도로 금세 젖어들기 마련이다. 그것은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베스트셀러 작가, 기자 등은 안 팔리면 다시 지위가 내려가기 마련이지만, 의사는 라이센스가 있는 한 웬만해서는 그 지위가 떨어지지 않는다. 달콤함에 취하진 말자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송윤희는?

2001년 독립영화워크숍 34기 수료2004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사2008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2009년 산업의학과 전문의2011년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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