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쥐의 뇌에서 어떤 종류의 유전자와 전기신호가 공포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데 관여하는지 밝혀냈다.

추가 연구를 통해 사람의 기억 속 상처,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치료에도 응용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희섭 박사와 이석찬 연구원 등이 짧게 독립적으로 끊어진 신경세포의 전기신호(단발성 발화)가 공포기억 소멸을 촉진하며, 이 단발성 신호 발생에는 'PLCβ4' 유전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정상 쥐에게 반복적으로 특정 소리와 함께 전기 충격을 주면, 쥐는 결국 실제 전기 충격 없이 소리만 들려도 모든 동작을 멈추고 움츠러드는(freezing) '공포' 반응을 나타낸다.

그러나 연구진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쥐의 몸 전체에서 완전히 PLCβ4를 없앤(knock out) 뒤 실험한 결과 '공포 기억의 소멸'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PLCβ4가 공포 기억을 지우는데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연구진은 PLCβ4가 뇌의 어떤 부위에서, 어떤 원리로 작용하는지 알아내기 위한 실험을 추가로 진행했다.

연구진은 우선 바이러스를 이용, 쥐의 뇌 시상(thalamus) 부위에서만 부분적으로 PLCβ4 유전자가 발현되지 않도록(knock down) 조작한 뒤 시상에 전기신호를 측정토록 전극을 꽂았다. 냄새를 제외한 모든 감각 신호는 뇌의 중심부인 시상을 거쳐 대뇌 피질로 전달된다.

관찰 결과 정상 쥐에선 공포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에서 시상의 신경세포들이 단발성 전기 신호를 더 많이 만들어 냈으나 시상에 PLCβ4 유전자가 없는 쥐의 경우 단발성 신호에 차이가 없고 오히려 여러 신호가 매우 짧은 간격으로 거의 동시에 나오는 '다발성 발화'가 늘어났다.

연구진은 시상 신경세포의 단발성 전기신호가 뇌의 다른 부위에 전달되면 "관련 기억을 지우라"는 명령과 같은 역할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석찬 연구원은 "지금까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들에 대한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었으나, 이번 연구 결과를 응용하면 뇌의 전기신호를 조절함으로써 나쁜 기억을 지우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논문은 귄위있는 과학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 인터넷 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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