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문구 가운데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것이 있다. 보건의료인 가운데 환자의 진료는 의사가 담당하고 처방에 따른 약의 조제 등은 약사가 담당한다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이나 약에 대해 궁금한 것은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위 문구대로라면 당연히 약사여야 한다. 약의 전문가인 약사는 조제만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약의 복용방법, 주의사항, 알려진 부작용이나 부작용을 의심할 수 있는 임상증상은 어떤 것이 있는지 등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이나 판례도 같은 취지다. 이를 위해 국민건강보험법상의 요양급여기준에서는 약사의 약제행위에 대한 수가항목에 엄연히 복약지도료를 포함시키고 있다. 즉 약사는 조제 외 복약지도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의사는 진찰료에 복약지도료가 산정되어 있지 않다.

최근에 복약지도와 관련된 하급심 판결이 내려졌다. 결핵약에 포함된 에탐부톨의 부작용으로 시각장애인이 된 환자가 의료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일부 승소판결을 내린 것이다. 에탐부톨은 시신경염이라는 유명한(?)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결핵의 치료를 위해서는 장기간의 꾸준한 약물투여가 필수적이므로 의료진은 반드시 시신경염의 발생여부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위 소송에서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피고로 하면서 에탐부톨의 부작용인 시신경염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않은 점을 과실로 지적하였고 법원도 이를 인정하였다. 흥미를 끄는 점은 의료기관인 피고가 약사에 의한 복약지도가 충분히 이뤄졌기 때문에 설명을 하지 않은 피고의 과실과 시력장애라는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약사들이 부작용을 설명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피고의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장 자체로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주장을 입증할 증거의 증거력이 모자라다고 판단한 것이다. 약화사고를 원인으로 한 소송에서 약사를 피고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엄연히 환자 일인당 720원이라는 복약지도료를 받는 약사가 약물의 복용이나 보관 방법을 설명하는 것에 더하여 부작용이나 이를 의심할 수 있는 임상증상 등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

의사의 약과 관련된 설명의무도 부정할 수 없다면 수가가 책정된 약사의 복약지도는 법적 의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환자는 의사만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다. 이 점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 환자가 약사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위 소송에서 일부 패소한 의사가 약사를 상대로 구상청구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최소한 의사와 약사의 약에 대한 설명의무가 병존적이라면 약사도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타당하다. 실현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소송의 결과가 자못 궁금하다.

이경권은?

성균대학교 법학과 졸업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졸업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석사수료(민법전공)사법연수원 제31기 수료現 분당서울대병원 의료법무 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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