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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이야기 - 3화] 치매에 덧씌워진 낙인과 혐오…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된 환자들양현덕(하버드신경과의원 원장, Brainwise 대표이사)

‘마녀의 망치’

중세에는 우울증이나 치매와 같은 정신질환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신이 부과하는 형벌이라고 간주되었다. 치매의 원인이 합리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시대였던 만큼, 치매환자의 이상 행동과 정신증상도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악령에 사로잡힌 때문이라고 여겨졌으며 당연히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치매환자들은 14세기와 15세기에 만연했던 마녀사냥의 대표적 희생양이었다.

1486년 로마 가톨릭교회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사제인 크래머(Heinrich Kramer)와 슈프랭거(Jacob Sprenger)가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 arum)>를 출간했다. 그 책은 교황 인노첸시오 8세(Papa Innocenzo VIII)가 인준한 마녀사냥 교본으로, 마녀의 식별 기준과 재판 및 형의 집행에 관한 지침과 요령 등이 담겨있었다. 이후 수십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으며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유포되었다. 그 책이 등장한 이후로 마녀사냥을 통해 수십만 명이 끔찍한 화형에 처해졌다.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 마녀의 망치)' 로마 가톨릭교회 도미니쿠스 수도회의 수사인 요하네스 슈프랭거와 하인리히 크래머가 쓰고 교황 인노첸시오 8세가 서명하고 인증해 준 마녀사냥 교본으로 알려졌다.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아(https://ko.wikipedia.org)

<마녀의 망치>에서 규정한 기준에 따라 마녀로 지목된 사람은 주로 정신질환자들로, 대부분 편집증을 비롯해 조증, 조현증, 뇌전증, 노인성 치매 등의 증상을 보인 여성들이었다. 정신적으로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어 중세 유럽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형틀에 묶인 채 화염 속에서 재로 변해갔다.

그런데 지구상에는 지금도 치매환자에 대한 마녀사냥이 자행되고 있다. 2010년 11월 아프리카 가나에서 건망증 등 치매증상을 보이던 72세 노파가 마녀로 몰려 화형에 처해지는 섬뜩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2012년 가나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 의하면 아직도 대다수 국민이 치매증상을 마법에 결부시키고 있었다. 물론 주된 원인은 치매에 관한 인식의 오류내지 부족 때문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치매와 사회적 낙인

근대에 이르러 의학이 발달하여 치매도 다른 정신질환과 마찬가지로 뇌의 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사회의 부정적 인식은 여전하다. 오늘날에도 치매를 초자연적이거나 영적인 현상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치매환자들은 사회적 낙인이나 이웃과 친척들의 혐오를 두려워하면서 스스로를 감추고 가정과 사회로부터 멀어지려 한다.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 1804~1864)은 1850년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를 발표한다. 17세기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턴 지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여주인공 헤스터 프린(Hester Prynne)은 간음죄로 재판정에 서고, 결국 간음을 의미하는 주홍색 글자 ‘A’ (adulteress)가 가슴에 아로새겨진 옷을 입고 평생 살아야 한다는 판결을 받는다. 이런 배경으로 ‘주홍글씨’는 지금껏 ‘사회적 낙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면 사회적 낙인(stigma)이란 무엇인가? 1963년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 1922~1983)은 낙인이란 ‘사회적으로 신임을 잃게 되는 속성, 행동, 평판을 말하며, 이로 인하여 다른 사람으로부터 정신적으로 원치 않게 거부되며 구분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2002년 발표된 세계보건기구(WHO) 규정에 따르면 낙인은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정당성 없이 수치스러움을 느끼고, 배제되며 차별 받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2012년 국제 알츠하이머병 단체(Alzheimer’s Disease International)에서 치매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24%가 진단이력을 숨긴 것으로 파악되었다. 주된 이유는 바로 사회적 낙인이었다. 응답자들은 치매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졌을 때 본인의 생각이나 견해와 대화가 폄하되거나 거절당한 경험이 있고, 앞으로도 그런 점이 우려된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40%는 치매로 인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으며, 23%는 치매진단 자체만으로도 친구관계가 단절되었노라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75%가 치매에 대하여 사회적 낙인이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국내 연구결과도 마찬가지다. 2014년에 실시된 치매 인식도 조사결과에 따르면 일반인의 70%가 치매에 관하여 부정적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2015년 미국 알츠하이머협회 보고서에 의하면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은 환자와 가족의 45%만이 치매라는 병에 대하여 인지하고 있었다. 암이나 심혈관 질환(90% 인지)에 비해 현격히 저조한 셈이다.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사람 중에서 최종 치매진단을 받는 경우는 절반에 불과하다는 결과도 발표되었다.

치매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인해 사회적 낙인이 가해지고, 낙인을 두려워하는 환자들이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에 조기진단과 치료가 지체된다. 그러므로 사회적 낙인을 막는 것이야말로 치매극복의 출발점이며,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높이는 첫걸음이다. 치매에 따라붙는 사회적 낙인을 떼어내려면 무엇보다 치매를 제대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치매와 인지증

과거에는 치매를 노망 또는 망령이라고 했다. 늙거나 정신이 흐려져서 말과 행동이 정상에서 벗어난 상태를 일컬은 말이다. 치매라는 단어는 어리석을 치(癡)와 어리석을 매(呆)로 부정적 의미가 중복되어 있다. 치(痴)자는 알 지(知)와 병들어 기댈 녁(疒)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능, 지성이 병들었다’는 의미이며, 매(呆)자는 사람이 기저귀를 차고 있는 모습을 나타낸 상형문자이다.

관련 질환의 경우 병명 자체에서 느껴지는 거부감과 이질감 때문에 증폭되는 사회적 낙인효과를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2010년 간질(癎疾)은 뇌전증(腦電症)으로, 2011년 정신분열증(精神分裂症)은 조현병(調絃病)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치매라는 용어 자체에 담긴 부정적 관념을 불식하기 위해, 명칭을 인지증(認知症)으로 대체하자는 의견이 최근 대두되고 있다. 인지증은 일본에서 2004년 도입한 용어로 현재 치매 대신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질환의 명칭이 일본처럼 바뀐다 할지라도 긴 세월 동안 깊게 뿌리 박힌 사회적 편견이 사라지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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