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건(근로복지공단 산재의료이사)
근로복지공단이 한국산재의료원과 통합한 지 1년 8개월이 지났다. 공단 측은 산재병원들을 직영화하면서 산재환자 점유율과 직업복귀율이 통합 이전 보다 향상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산재 수가체계 및 장기입원환자 관리시스템 개선 등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도 산더미다. 이런 가운데 대구재활산재병원이 내년 4월 문을 연다. 250병상 규모로 국내 최대 규모의 아쿠아 클리닉도 갖췄다. 공단은 이 병원을 통해 '한국형 산재의료모델'을 완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통합 전후로 산재병원의 경영을 총괄해 온 구본건 산재의료이사를 만나 근로복지공단 산재의료원의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통합되면서 연례 행사였던 노사분규가 거의 사라졌다. 과거엔 노조와 사측이 소통을 못했던 거다. 소통을 위해서는 노사간 신뢰가 쌓여야 하는 건데, 그런 통로가 없었다. 새가 한쪽 날개로 날 수 없듯이 노사도 이와 같다. 그래서 노조를 대상으로 병원의 발전 방향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노조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고, 어느새 노사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어 갔다."
-산재환자단체들과는 어떻게 소통하고 있나?
"기존엔 산재병원 측이 환자단체를 볼 때 장기입원환자를 양산하고 선동하는 단체로 색안경을 끼고 봤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당장 급여 혜택이 절실한데 급여를 조기 종결하는 병원에 당연히 항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게 핵심이다. 공단은 환자단체들에게 환자를 조기에 치유하고 현장 복귀율을 높여 삶의 질을 올리는 것이 산재병원이 존재하는 이유란 점을 충분히 설명할 의무가 있다. 임기 전에라도 산재병원이 추구하는 방향과 장기환자로 인해 다른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부분을 잘 알리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 -대구재활산재병원이 제공하는 차별화된 의료서비스란 무엇인가?"병원에 내원한 환자를 무료하지 않게 할 작정이다. 완전한 환자중심병원을 만들자는 얘기다. 우선 성인병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재활환자들을 고려해 맞춤형 식단을 제공할 계획이다. 환자뿐 아니라 직원들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는 미용실을 입점시킬 계획이다. 접수데스크 직원도 장애인을 채용해 환자를 응대하게 하고, 헬스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짜 환자와 직원이 어울려 자연스럽게 재활치료 효과를 볼 수 있게 하고 싶다. 담장을 허문 친환경 병원은 지역민 누구나 방문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대구재활산재병원과 지역의료기관이 상생하는 방안은?
"얼마 전 칠곡경북대병원 및 대구대학교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경북대병원에서는 임상교수를 파견하고, 우리는 의사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경북대병원에서 급성기 치료를 받고 산재병원으로 전원하는 시스템도 갖췄다. 대구대는 재활치료를 돕는 사회복지인력들을 배출하는 곳으로, 이들이 우리 병원에서 현장실습을 하고 마음껏 연구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산재병원들이 적자경영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장기입원 재활환자들이 40% 이상을 차지하는 병원들이 아직 많다. 향후 일차적인 전문재활치료를 받고 나면 적어도 6개월 이후엔 퇴원하게끔 하는 규정을 확고히 만들 것이다. 또한 재활치료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적정 산재수가체계를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 현 수가는 원가의 7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구재활산재병원에서 산재진료수가의 원가를 분석할 수 있는 자료 생성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산재의료 발전을 위해 전문 인력 확보도 중요한데, 인력 수급 현황은? "직업환경의학(구 산업의학) 전문의가 많이 부족하다. 얼마 전에도 산하 병원에서 산업의학 전문의를 채용하는데 애를 먹었다. 몸값도 많이 뛰었다. 불과 2~3년 전에 비해 2배로 뛰었다. 월 평균 1,400만원 급여에도 잘 오지 않는다. 고용노동부에서도 전문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을 알고는 있는 데 아직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노동부와 복지부, 양 부처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 어려운 점은 없나?
"노동부와 복지부로부터 예산을 받아야 한다. 특히 편성되는 예산 규모는 답답한 부분이 많다. 내용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예산 삭감에 치중하는 게 보인다. 따라서 공단이 한국산재의료원과 통합하면서 발생하는 인력 수요를 충당하기 힘들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내년부터 공단본부 및 산재병원들의 리모델링이 본격 시작된다. 이전보다 본부나 병원 간 인사 이동도 활발해 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