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일본 원격의료 전면허용이 시사하는 것

[라포르시안]  일본이 오는 4월부터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한다.

앞서 일본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8월 원격의료에 관한 고시를 개정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 일환으로 4월부터 일본에서는 '포켓닥터'라 불리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상용서비스가 제공될 예정이다.

일본의 원격의료 전면허용이 가장 반가운 건 아마도 보건복지부인 거 같다.

복지부는 지난 31일자로 보도자료를 내고 일본의 원격의료 전면허용 소식을 알렸다. 다른 나라의 보건의료 관련 정책 추진 소식을 이렇게 보도자료까지 배포하면서 호들갑스럽게 알리는 일은 사실상 처음이다.

복지부가 왜 그랬을까 짐작은 간다.

지난 2014년 4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의료계와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아직까지 법안 통과가 불투명한 상태이다. 일본의 원격의료 전면허용 소식이 의료법 개정을 위한 여론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한 거 같다.

안타깝게도 복지부 보도자료를 보면 지금처럼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허용을 도입해서는 안된다는 점이 더 부각되는 거 같다. 

▲ 4월부터 제공되는 일본 '포켓닥터'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서비스 과정을 설명하는 이미지.

너무 다른 한일 양국의 원격의료 도입 양상일본과 한국의 원격의료 추진 과정을 보면 두 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원격의료 도입의 필요성이다.

6,852개의 섬으로 이뤄진 군도 국가인 일본의 지형적 특성 때문에 낙도와 산간벽지 주민의 의료접근성 향상을 위해서 일찍부터 원격의료 도입을 통한 의료접근성 향상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하고 지역별로 의료자원 수급 불균형도 심각해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런 필요성에 따라 일본에서는 의료계나 시민단체의 별다른 반발 없이, 오히려 의사단체에서 원격의료 도입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데 적극 나설 정도였다.

복지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정부의 재정적 지원 아래 의료계가 주도적으로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효용성을 입증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벌였다. 지난 2005년 발족한 일본원격의료학회(日本遠隔医療学会)는 관련 임상자료를 축적·연구해 원격의료 확대를 뒷받침했다.반면 한국은 일본처럼 섬이 많지 않고(3,153개의 섬 가운데 2,689개는 무인도), 전 세계에서 의료접근성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도서벽지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원격의료보다는 정부 차원의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이 더 시급한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의료취약지 주민의 의료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원격의료 도입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주장이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은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다.   

복지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것처럼 일본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도입한 이후 전면 허용 조치를 취하기까지 2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일본에서는 이미 1970년대부터 병원과 병원 간 원격의료에 관한 연구개발과 시범사업을 해왔고, 1980년대에는 의료인과 환자간 원격의료에 관한 재택치료 지원 시스템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추진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1997년 말 처음으로 도서벽지 주민을 대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도입한 이래 상당히 제한적으로 적용 대상을 확대해 왔다. 

초기에 일본 후생노동성은 '정보통신기기를 활용한 진료(원격진료)'에 대한 고시를 제정해 대면진료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제한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대면진료 원칙 아래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대상은 도서벽지 환자로 제한하고, 적용 대상 질환도 재택 당뇨병·고혈압·천식 환자 등 9가지 만성질환으로 한정했다.

이후 3차례 관련 고시를 개정해 원격의료 허용 범위를 점차 확대했다.

2003년 3월에는 직접적인 대면진료를 대체할 정도로 환자에 관해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우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2011년 3월에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 오염으로 의사가 없는 의료 소외지역이 늘어나면서 이들 지역의 원격의료도 허용했다.

그리고 작년 8월 고시를 재개정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했고, 올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1997년 12월 처음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한 이후 20년 가까운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정책을 추진해온 셈이다. 반면 한국은 2014년 4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한 후 지금까지 두 차례의 시범사업을 실시해 놓고 이를 근거로 청와대와 여당, 복지부가 집요하게 법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 후반부터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실시됐지만 대부분 의료기관과 의료기관, 의사와 의료인 간의 유형이었다. 의사와 재택 환자가 직접 원격의료를 실시하는 시범사업은 사실상 2014년에 처음 실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복지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것처럼 일본은 의료계 주도로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효용성을 입증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벌였다. 반면 한국에서는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의료계가 불참하면서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큰 차이다.

복지부는 지금까지 2차례의 시범사업 평가를 통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의 임상적 유효성과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은 물론, 기술적 보안과 안전성도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 지난해 11월 12일 부산대병원 융합의학기술원 해양의료연구센터에서 진행된 해양원격의료 시연회를 참관하는 정진엽 복지부 장관. 사진 제공: 부산대병원

원격의료 전면 허용이 아니라 정책결정 과정 배워야 이처럼 일본과 한국에서 원격의료 도입을 놓고 뚜렷하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그 요인은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이 얼마나 있었느냐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이나 호주, 캐나다 등의 국가는 넓은 국토에 의료자원은 부족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고, 기술개발과 임상에서의 활용을 차근차근 추진해 왔다.

반면 한국에서는 의료서비스 공급 측면보다는 헬스케어 기업 육성과 새로운 시장 창출이라는 산업적 측면에서 원격의료 도입 필요성이 적극 제기됐다. 도입 타당성이 부족한 데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의료계의 반발을 불러왔고, 사회적 논란만 야기했다. 

복지부는 오는 5월 중 일본의 원격의료 추진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담당 공무원과 전문가가 일본 현지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부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이 왜 필요했는지, 임상적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위해 어떤 절차를 거쳤는지, 그리고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왔으면 싶다. 특히 일본 정부가 원격의료 도입 과정에서 어떤 식의 정책결정 과정과 구조를 갖췄는지 배우고 오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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