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격 / 페터 비에리 지음 /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이번 주의 Book소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총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입니다. 국민을 대변하는 선량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행태나 면면이 참 다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품격’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제가 드라마 <신사의 품격>을 너무 열심히 보았던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품격(品格)을 ‘사람의 품성과 인격’이라고 풀이하고 있어, 의문을 더하게 만듭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성질이 성격이고, 품성이라고 한다면 성격에 지적이며 도덕적인 요소를 추가한 개념이 인격이므로 품성은 결국 인격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결국 ‘격(格)’이라는 한 글자로 압축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삶의 격’을 갖추는 방법이라고 풀어도 될 듯한데, 마침 ‘삶의 격’을 논한 책이 있어 소개하려는 것입니다. 독일 철학자 페터 비에리가 쓴 <삶의 격>입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런던과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철학, 고전언어학, 인도학, 영어학을 공부하고 철학적 심리학, 인식론 그리고 윤리학 등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독일 마부르크대학교에서 철학사를 강의했고, 1993년부터는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언어철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는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Book소리에서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직 전체를 위하여 한 사람의 생명을 버려야 할 것인가? 무고한 생명을 죽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의사는 그를 살려야 할 것인가, 아니면 방치해서 죽음을 맞도록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악인의 생명을 구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태양의 후예>에서도 다루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의사는 손을 내밀까 말까 고민하는데 오히려 군인은 살려내라고 권하는 장면이 참 역설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삶의 형태로서의 존엄성’이 무엇인지 고민해왔다고 합니다. 우리 역시 존엄성이란 아주 중요한 것이며 절대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존엄이란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집단적 사고에 빠져 있는 이웃도 있습니다. 존엄을 인간의 특성으로 규정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저자는 인간이 삶이 살아가는 특정한 방법, 즉 사고와 경험, 행위의 틀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합니다. 기본적인 방법론으로는, ‘자신의 경험을 매번 이해하고 인과관계에 관해 스스로 묻고, 존엄성에 대한 경험에 담긴 직관적 내용을 끝까지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저자는 존엄한 삶의 형태를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여 생각합니다. 첫 번째는 내가 타인에게 어떤 취급을 받느냐 하는 것, 두 번째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 세 번째는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지켜진 존엄, 손상된 존엄, 잃어버린 존엄이라는 일상적인 경험 안에는 세 가지 차원의 관점이 뒤얽혀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분리해내기가 수월치 않은 점도 있으나 개념적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서로 다른 경험으로 분리해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인간 삶을 전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하여 존엄한 삶을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며, 다만 개념을 명료하게 하려는 자신의 시도에 책 읽는 이들이 동참해주기를 희망한다고 합니다.

인간의 특성이라는 관점보다는 삶의 형태로서의 존엄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이 있다고 본 삶의 요소로 여덟 가지를 골랐습니다. 독립성, 만남, 사적 은밀함, 진정성, 자아존중, 도덕적 진실성, 사물의 경중에 대한 인식, 유한함을 수용하기 등입니다. 하나하나가 결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영화 등 다양한 소재를 버무려 주제논의를 풍성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덟 가지의 주제를 모두 짚어볼 수는 없을 것 같아서, 제 마음대로 고른 몇 가지 주제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주제는 중요하기 마련이라서 빠트리면 섭섭할 것 같습니다. ‘독립성으로서의 존엄성’입니다. 살아가면서 다양한 관계에 얽혀들기 마련입니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주도하고 싶어 합니다. 삼자가 보기에는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을 사는 사람 역시 자신의 관점에서는 스스로 주도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삶에서 주체가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주체가 된다는 것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의 중심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일에는 드러난 혹은 숨겨진 동기가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주체적인 인간은 이러한 것들을 피동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의심을 통하여 파악하고, 앎을 통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내가 아닌 타인이 정해놓은 목적을 달성시켜주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개인의 자유의 범위에 관한 내용이 있어 요약해봅니다. “국가 권력이 우리 삶에 간섭한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다 반존엄적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의회에서 통과되는 법은 대부분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허용이나 금지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 우리가 이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러한 법들이 전체적으로 우리의 존엄성을 지켜주려는 목적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굴종시키거나 독재 권력을 쥐려는 목적이 아니라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사회적 이익을 창출하려는 의도인 것이다.(44-45쪽)” 이처럼 저자는 타인과 그들의 개입을 존중하는 일이 반드시 주체로서의 자신의 존엄을 해치는 일은 아니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의료현장에서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는 딜레마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여 읽는 이 나름대로의 해답을 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종교적  혹은 사회적 요인에 따라 의료서비스를 거부하는 환자와 보호자를 만나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의료진의 시각만으로, 혹은 환자나 보호자의 시각에 끌려서 내리는 의사결정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두 번째 주제는 ‘만남으로서의 존엄성’입니다. 만남은 곧 타인과의 관계가 열리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관계란 두 개의 주체가 부딪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디에선가 접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만남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존엄한 삶의 형태의 두 가지, 즉 ‘타인이 나를’, 그리고 ‘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 역시 주체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의 일방적인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접근이 될 것입니다. 상대를 인정함으로써 상대의 존엄을 존중해주면서 교감하는 영역을 넓혀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하여 친해진다고 해도 지켜야 할 거리는 지키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어서 논의하는 ‘사적 은밀함을 존중하는 존엄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닌 타인이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즉,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 뼘에 불과할 수도 있고, 아니면 스스로를 고립시킬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할 수도 있습니다. 타인이 그 억지로 이 공간을 침범하거나 우리 스스로가 잘못된 명분으로 그 공간을 개방할 경우에 존엄성은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의료인의 경우 치료과정에서 환자의 사적공간에 들어서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지, 즉 환자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최근 이성의 의사-환자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것을 인식의 차이라고 쉽게 생각할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환자의 사적공간은 흔히 개인적 결함과 관련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 결함을 가진 환자와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는 의료인들은 환자의 사적공간을 지켜주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내용을 삼자에게 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네 번째 주제 ‘자아존중으로서의 존엄성’으로 건너갑니다. 주체로서의 인간은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 삶의 격을 지키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존엄한 삶의 형태에 대한 세 번째 차원에서의 접근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자아상은 내가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보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당연히 현재는 물론 미래의 자신의 모습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주체로서의 인간은 자신을 평가할 줄 알아야 하며 자신의 행위와 감정이 존중받아 마땅한 것인지 아니면 잘못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자아는 때로 자기애(自己愛)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아상이 성립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공정한 관찰자는 이성, 원칙, 양심, 가슴 속 동거인, 내부 인간, 우리 행동의 위대한 심판자이자 결정권자이다.(러셀 로버츠 지음,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46쪽, 세계사, 2015년)”라고 한 애덤 스미스의 ‘공정한 관찰자’가 가장 이상적인 자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섯 번째 주제는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존엄성’입니다. 사물의 경중을 인식한다는 것은 주체로서의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인식하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자신이 지켜야 할 존엄성의 출발인 셈입니다. 흔히, 당면했을 때는 죽을 것만 같던 문제도 시간이 흐르면 별거 아니더라고 생각하게 된 경험이 하나쯤은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중요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과 겉으로 보기에는 심각해보이지만 곧 지나갈 중요성을 지닌 것의 차이, 즉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사물의 경중을 인식하는 일은 균형과 조화에 대한 감각을 길러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구절이 있습니다. 흔히 ‘매일 매일을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매일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산다면 이어지는 수많은 날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여러 가지 일들을 기반으로 하는 연속적인 인생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자신의 인생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삶의 마지막 순간에 서서 자신이 밟아온 삶을 되짚어 보라고 권합니다. 즉, 상상 속에서 생의 마지막까지 가보고 그 종말의 순간에 서서 지금까지 자신이 사물의 무게를 올바르게 쟀는지 물어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또한  가능할까요? 누구나 경험해보지 않은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고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의 장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죽음 이야기가 나온 것은 마지막 주제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존엄성’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노화나 질병은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를 인간으로서의 삶이 서서히 소멸해가는 과정의 하나라고 본다면 거부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는 것 자체가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죽을 수 있도록 놓아주는 것이야말로 죽음을 존엄하게 맞는 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일이 존엄을 지키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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