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애덤 스미스 원작 / 러셀 로버츠 지음 / 이현주 옮김 / 세계사 펴냄, 2015년

[라포르시안] 귀에 익은 듯 하면서도 어딘가 다른 느낌이 나는 노래를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전에 발표된 노래를 개작하거나 편곡하여 만든 노래로 원곡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나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책읽기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고전을 읽다보면 생경한 단어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 걸림돌이 되어 쉽게 몰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현대적 어휘로 번역해서 책 읽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합니다. 물론 번역하는 과정에서 원저자의 의도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도 합니다. 인용하고 있는 사례를 현대적 사례로 바꾸고 원저자의 생각을 최대한 유추하여 해석한 저자의 생각을 담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저자의 생각을 직접 물어볼 수 없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재해석하고 있는 저자의 생각에 따라 원저자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에 소개하는 러셀 로버츠의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포털에서 애덤 스미스(1723-1790)를 검색해보면 대부분 <국부론>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고, <도덕감정론>은 제목만 언급되거나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대단한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1776년에 발표되어 국부론이라고 생략해서 부르는 그의 저서 <국부(國富)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는 최초의 경제학 저서로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한 것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명한 명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란 모든 경제의 주체가 각자의 이해에 따라 경제체제를 이끄는 힘을 표현한 것으로 기본적으로는 경쟁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습니다.(다음 백과사전, 스미스)

경제학 저서로 알려지고 있는 국부론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자였던 것으로 오해를 받아온 것 같습니다. 1737년 글래스고대학을 졸업한 그는 도덕철학을 공부했고, 1751년 글래스고대학에서 논리학과 도덕철학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국부론은 경제철학에 관한 책인 것입니다. 오늘의 화제가 되는 <도덕감정론, Theory of Moral Sentiments >은 1757년에 발표한 저서로 ‘행복하고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명제를 다루었습니다. 러셀 로버츠에 따르면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행복하고 좋은 삶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도덕감정론>은 여섯 차례에 걸쳐 개정판이 나왔고, 애덤 스미스가 사망한 다음 1790년에 마지막 개정판이 나왔는데, 마지막 개정판에서는 상당히 많은 내용이 고쳐졌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도덕감정론이 다룬 ‘행복’이란 명제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숙성되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러셀 로버츠는 짐작합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의 저자 러셀 로버츠는 경제학을 전공하였고, <이콘토크>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경제학 지식을 쉽게 전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한 저자로서는 국부론은 처음부터 흥미진진하였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되었다는데, 도덕감정론의 경우 처음 읽기 시작해서는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3분의 1에 이르렀을 때서야 비로소 이 책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문장과 표현 또한 18세기 책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다소 건조하다.(23쪽)”라는 점이 걸림돌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로 앞서 말씀드렸던 고전이 가진 매력과 한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그 한계 때문에 로버츠는 번역이 아닌 재해석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아닐까 추측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소개된 번역본이 700쪽이 넘을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대작인 도덕감정론을 읽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바쁜 시간을 쪼개 원본을 전부 읽을 엄두를 못 내는 독자들을 위해, 그의 통찰력이 빛나는 훌륭한 원본 문장들을 이 책에서 소개(24쪽)”하기로 한 것 같습니다.

Book소리에서는 이미 근대프랑스문학을 전공한 앙투앙 콩파뇽교수가 <몽테뉴 수상록>을 재해석한 <인생의 맛>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도덕경> 등과 같은 동양의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 것처럼 서양에서도 고전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전은 재해석 작업이 그리 활발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방민호작가가 <심청전>을 재해석한 <연인 심청>을 냈을 때 많이 반가웠던 이유입니다. 심청전과 같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의 경우는 재해석한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의 새로운 시각을 금세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대하는 고전의 경우는 원작에 대한 호기심이 일기 마련입니다. <인생의 맛>을 읽고 나서 <몽테뉴 수상록>을 읽기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아직도 읽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을 읽고 나서 도덕감정론 역시 읽어보게 될 것 같습니다. 도덕감정론을 읽다보면 “인생의 의미와 도덕, 그리고 사람들의 행동방식은 18세기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18세기 독자들의 절찬을 받은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이 250년이 지난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은 모두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제1장 ‘어떻게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는가’에서는 작가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읽고, 재해석하는 작품을 쓰게 되었는가를 설명합니다. 이어서 제2장에서부터 제9장까지는 도덕감정론에서 저자가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뽑아서 애덤 스미스가 인용한 상황을 현대적 상황으로 바꾸고, 그에 대하여 설명하는 방식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10장 ‘현재의 우리를 위한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조언’에서는 저자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애덤 스미스를 인터뷰하는 형식을 빌어 궁금한 점을 유추해보고 있습니다. 저자의 궁금증은 “(국부론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위대한 여정에 큰 도움을 준 당신이 어떻게 <도덕감정론> 같은 책을 쓸 수 있었습니까?(282쪽)”하는 것이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소득의 많은 부분을 남들이 모르게 자선 사업에 기부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로 그것 자체가 목적인 물질적인 야심을 매우 경멸했다고 합니다. 국부론에서는 이타주의나 친절, 동정심, 평정심, 사랑스러움을 다룬 내용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질적 야심이 타인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을 도덕감정론>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린 지주들이 주민들에게 땅을 똑 같이 나눠준 것처럼, 생필품도 똑같이 분배한다. 이런 식으로 지주들은 무의식 중에, 부지불식 중에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고 인류가 살아갈 수단을 제공해준다.(283쪽)”라는 구절에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언급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분배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물론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즈음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온 세상을 편하게(平天下)하려면 스스로의 몸을 닦아야(修身) 하는 법입니다. 그만큼 스스로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겠지요.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선 스스로의 깜냥을 아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의 저자는 ‘나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통하여 스스로를 알아볼 것을 권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할지라도, 기본 바탕에는 이와 반대되는 선한 본성도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사람의 운명과 처지에도 관심을 갖는다. 또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기도 한다.(37쪽)” 이율배반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기적인 인간이 이타적인 면을 가질 수 있는 것은‘공정한 관찰자’라는 존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공정한 관찰자는 이성, 원칙, 양심, 가슴 속 동거인, 내부 인간, 우리 행동의 위대한 심판자이자 결정권자이다.(46쪽)”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공정한 관찰자는 이기적인 결정을 내리려할 때마다 강하게 견제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존재는 물론 개개인마다 스스로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다를 수 있는데, 이는 스스로를 어떻게 단련해 가는가에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

스스로를 알아보았으면, 다음 순서로는 행복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내가 인생에서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공정한 관찰자가 제 역할을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를 기만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의 욕망에 압도당하게 되면 공정한 관찰자의 외침을 외면하는 대신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길을 찾게 됩니다. 자아도취이자 자기기만입니다.

다음 단계인 제5장에서는 잘되는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배우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사람들이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재미있는 고사를 인용하여 비유적으로 설명합니다. 손에 딱 잡히는 결론은 없습니다만 답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은 내용입니다. 이어서 제6장에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면 된다.(167쪽)’라는 어느 정도 손에 잡히는 방법이 제시됩니다. 사랑받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부자가 되고 유명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명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두 번째 방법, 즉 지혜와 미덕의 길을 선택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리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더 훌륭한 방법으로 미덕을 갖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미덕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대하여 신중하고 정의롭고 선행을 베푸는 삶이라고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여기에서 신중함은 자기 자신을 돌보고, 정의로움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선행은 다른 사람을 선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애덤 스미스는 개개인이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설명한데 이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는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장점으로 신뢰를 꼽았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러셀 로버츠는 “자신의 믿음이 악용될 거란 두려움이 없다면, 다시 말해 타인을 전적으로 믿게 된다면, 모두의 인생은 더 없이 아름다워질 것이다. (…)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신뢰 역시 무수히 많고 자잘한 사람 관계들이 모여 만들어진다(251쪽)”라고 했습니다.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공정한 관찰자가 제 역할을 할 때 이는 스스로에게 되먹임이 될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까지 파급되어 선순환의 고리를 강화하면서 그 사회는 신뢰가 쌓여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공정한 관찰자의 역할을 체제의 틀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꿈꾸는 몽상가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권력을 쥔 사람들 가운데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듯 시스템에 갇힌 사람들은 흔히 구성원들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스스로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별 인간들은 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약하기 때문에 작기 때문에 더 훌륭한 삶을 살 수 있고, 이런 삶들이 모여 더 훌륭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소박하면서도 큰 꿈을 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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