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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준의 라뽀칼럼] 방사능 괴담과 방사능 정치
▲ 홍영준(한국원자력의학원 임상연구부장)

대기권을 맴돌던 우주탐사선 하나가 폭발했다. 불행하게도 그 비행체는 다량의 방사능 물질을 함유하고 있었고 폭발의 잔재들은 고스란히 미국 동부 어느 해안가로 내려앉았다. 얼마 후 펜실베니아의 한 시골에서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묘소를 찾아가던 두 남매가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오빠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살인범은 다름 아닌 무덤에서 되살아난 시체들. 어이없게도 방사능 낙진의 해괴한 작용이 죽은 자들을 깨어나게 한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스토리가 바로 좀비 영화의 효시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1968년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란 영화의 시작 부분이다. 

시체들을 다시 살려 좀비를 생산한 것 말고도 방사능이란 희한한 에너지는 그간 고질라, 닌자 거북이, 헐크 등과 같은 변종 괴물들을 숱하게 만들어냈다. 어디 그뿐인가. 핵전쟁, 즉 강력한 방사능의 분출로 인해 그동안 이 지구가 도대체 몇 번이나 망했던가. 혹성탈출, 매드맥스에서 터미네이터에 이르기까지 걸핏하면 지구는 한 순간 잿더미로 변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모두가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었지만 우리는 그 덕분에 알게 모르게 방사능, 핵, 혹은 원자력의 무지막지한 위력을 간접 체험하였고, 그것은 지금도 사람들의 무의식 어딘가에 상당한 공포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주택가에서 평균치보다 무려 20배가 넘는 방사능이 검출되었다고 하여 한바탕 소동이 일었고 그 여파가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사람들은 <차일드 세이브>라는 인터넷 카페의 주부회원들이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인터넷의 한 요리 사이트에 모여 들던 주부들이 이웃나라 원전사고의 후유증이 우리 아이들 건강에까지 악영향을 줄지도 모르겠다는 염려에 곧바로 이런 카페를 만든 것이다. 이들은 100만원이 넘는 방사능 측정기를 구입하여 자녀들의 등하굣길을 직접 체크해보는 억척활동을 벌이다가 마침내 노원구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방사능이 높게 측정됨을 감지하기에 이르렀다. 시작은 단순했지만 사태는 곧 정부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열리고, 서울시장이 개입하는 등 순식간에 일파만파로 확대되어 버렸다.

우리 몸은 개인에 따라 어떤 특별한 음식이나 약물을 섭취했을 때, 혹은 곤충에 물렸을 때 면역반응이 일어나 특정 항체가 만들어지는데 처음엔 그 증상이 대수롭지 않다. 하지만 그런 일을 또 겪게 되면 이미 만들어진 항체의 작용으로 화학물질이 분비되면서 격렬한 전신 반응이 일어나 쇼크 같은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기도 하는데 이를 ‘아나필락시스’라 일컫는다. 평소 언론이나 영화 등으로 방사능의 공포에 이미 감작된 대중들이 이번 월계동 사건처럼 내 생활터전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자극에 다시 한 번 노출되면 걷잡을 수 없는 소위 ‘방사능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유발된다는 것을 이번 일에서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그렇게 사람들이 패닉에 빠져 잠시 이성이 마비되는 지점에서 방사능 괴담은 탄생한다.

 <차일드 세이브> 카페는 금세 유명해져서 카페지기가 시사평론가 정관용 씨가 진행하는 CBS FM의 <시사자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에 이른다. 왜 우리 아이들의 안전에 관한 일을 평범한 주부들이 직접 나서는 지경에 까지 이르게 하느냐, 정부는 그동안 무얼 하고 있었느냐 하는 지적과 성토는 당국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 경악을 금치 못할 내용마저 아무렇지도 않게 전파를 탔다.

『  정관용> 그런데 아스팔트 도로에 왜 방사능이 검출됩니까?

카페지기> 제가 듣기로는 원자력의학원이라는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그 건물을 해체하면서 방사능 물질이 있는 것을 콘크리트에 섞어서 아스팔트에 깔았던 모양이에요.

정관용> 그러니까 추정컨대는 원자력의학원 건물조각, 그 해체된 건물조각을 섞어서 콘크리트를 뿌렸다? 』

카페지기는 얼토당토아니한 내용을 하필 왜 내가 근무하는 한국원자력의학원 이름을 콕 집어가며 말했을까. 아니 그보다 사회자 정관용 씨는 전문가들도 말하기 곤란한 방사능 검출의 이유를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반인에게 대뜸 물어보았으며, 비록 추정이란 단서를 붙였지만 원자력의학원 이름을 다시금 확인해 주었을까. 안 그래도 우리 기관에서 과거 무슨 공사를 하면 방사능 누출된다며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공사 중단하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곤 했던 적이 있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문제로 온 나라가 한창 시끄러웠을 때였다. 그때 누군가에 의해 원자력의학원 땅을 파면 방사능이 뿜어져 나온다는 괴담이 만들어 진 것이다. 이번 CBS 인터뷰는 우리 기관 건물을 누군가 분해하여 아스팔트 재료로 유통시키고 있다는 속편 괴담을 만들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여기서 다시 후쿠시마 원전사태의 후폭풍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3월 일본 대지진 이후 그곳을 취재하러 다녀왔던 주요 방송사 기자들은 거의 모두 한국원자력의학원 방사선비상진료센터에 와서 방사선피폭 관련 검사를 받았다. 외부오염도에 대한 물리적 측정과 함께 백혈구 수치 같은 피검사가 수행되었다. 이때 아직은 연구단계인 생물학적 피폭 방사선량 측정 검사, 즉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을 함께 시행한 게 화근이었다. 이것은 1000개의 세포를 세어 이상염색체가 있는 세포가 그 중 몇 개인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그 개수에 따라 방사선 피폭량의 추정치를 제시한다.

통상 인체에서 유래한 검체를 이용하여 분석을 하는 경우 판정을 위해 정상 참고치 혹은 컷오프 수치를 정하게 된다. 우리 기관이 정한 불안정형 염색체 이상 분석의 컷오프는 5개까지였다. 즉 5개 정도 비정상 염색체는 정상인들에게서도 보일 수 있는 수준이라는 뜻이고 실제로 참고치 설정에 참여한 내부 직원들 중에서도 그 정도 수치를 보인 매우 건강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전체 피검자 중 KBS PD 한 분이 1000개 중 7개 세포에서 이상을 보여 방사선 피폭 의심자로 분류되었다. 물론 이 분이 후쿠시마에서 방사선에 노출되었는지, 평소 본인의 지병으로 인해 병원에서 자주 찍었다는 CT의 영향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여기까지의 과학적 사실이 갑자기 KBS 노사문제와 얽히면서 변형되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안전을 소홀히 한 회사의 책임을 따져 묻는 노조관계자들은 다른 기관 전문가의 의견임을 근거로 이상염색체 컷오프 수치를 검사수행 당사자인 우리 기관이 제시한 5개에서 3개로 낮춰 잡았고 따라서 이상 소견을 보인 기자의 숫자는 졸지에 몇 명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처음과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 검사 데이터가 판정기준이 임의로 바뀌는 바람에 어느 날 인터넷 매체를 통해 느닷없이 ‘일본취재 KBS 방사능피폭 의심자 또 발견, 충격’이란 헤드라인을 달고 재가공 된 배경이다.

인체의 아나필락시스 반응처럼 방사능, 핵, 또는 원자력 같은 단어들은 우리 사회에 언제라도 쇼크와 같은 폭발적 반응을 불러올 개연성이 있다. 누가 아는가. 실제로 한번 혼란이 초래되면 그 와중에 방사능 때문에 시체들이 살아나 광화문에 걸어 다니고, 돌연변이 괴수들이 한강에 출현했다는 헐리웃식 괴담마저 사방에 떠돌는지. 여기에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서 이야기한 사례를 염두에 두면서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는 누군가 의도적이건 무지에 의해서건 과학적 사실들 가운데 슬그머니 끼워 넣는 거짓 혹은 오류에 민감해지자는 것이다. 원자력이 양날의 검인 것은 사실이나 원자력의학원은 예전에 해체된 적도 없고 앞마당에서 방사능이 뿜어 나오지도 않는다. 또한 아무리 전문가들에 대한 불신풍조가 만연하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원자력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야 할 사안을 마치 사마귀 유치원 선생님께 묻는 것 같은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역시 돌아볼 일이다.

둘째는 방사능의 인체영향과 같은 의학적, 과학적 문제에까지 징그럽게 달라붙는 정치적 이슈들을 냉정하게 분리하여 바라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은 방사능 피폭 가능성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그건 허용기준치 이하로서,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만을 내세우며 별 것 아니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 당국의 책임도 크다. 별 문제 아니라면서 월계동 아스팔트는 왜 갈아엎는가. 하지만 염색체 검사의 참고치 변경 같은 문제를 KBS 노동조합식의 논리로 접근하는 것 역시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과학은 분명 정치로 타협할 수 없는 분야이기에 그렇다.

홍영준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석, 박사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UCSD 암센터 초빙연구원현 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현 한국원자력의학원 임상연구부장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현 대한진단검사의학회 R&D 위원장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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