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노벨상 목표로 연구개발 정책 추진하면서 기초의학 붕괴는 방치

[라포르시안]  일본에서 벌써 세 번째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중국에서도 첫 수상자가 나왔다.

지난 5일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과대학 노벨위원회가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발표하자 한국 과학계는 부러움과 함께 깊은 탄식에 빠졌다.

1901년 노벨생리의학상이 제정된 이후 올해까지 210명의 수상자가 배출됐다. 안타깝게도 한국인 수상자는 나오지 못했고, 앞으로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업적과 면면을 보면 한국 과학계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3명의 수상자는 기생충 감염 연구와 혁신적인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기생충 감염과 말라리아 치료제 연구. 가뜩이나 기초의학 연구 인프라가 취약한 한국에서는 거의 넘볼 수 없는 분야다.

 

" 기초의학 발전은커녕 쇠퇴 막는게 더 급해" 노벨생리의학상은 고사하고 한국의 기초의학은 암흑기다. 임상의학과 생명과학의 뿌리이자 관련 원천기술 확보의 터전이지만 임상의학과 생명과학에 치이고 지원도 거의 없어 존재감마저 희미할 지경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초의학을 전공하는 의사출신 연구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기초의학협의회에서 올해 발간한 '기초의학백서'에 따르면 병리학과 예방의학을 포함하더라도 의사(MD) 비율은 정교수가 69.5%, 부교수가 33.6% 및 조교수가 21.1%로 점차 젊은 교수 충원 시 MD 수가 감소하는 추세다.

이런 경향은 최근의 병원 경영 악화와 맞물리면서 병리학과 예방의학에 비해 타 기초의학교실의 신규 임용이 더욱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의학계는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조만간 기초의학계에서 의사출신이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가톨릭대 의대 이덕주 교수(생리학교실, 기초의학협의회 학술이사)는 올해 4월 발간된 '의료정책포럼'에 기고한 '기초의학의 인재고갈, 그 현실은?'이란 글을 통해 "최근 들어 기초교수의 임용이 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며 "앞으로 15년 이후부터는 전체적인 인력이 감소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미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역피라미드형 연령분포는 10년 후에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암울한 전망을 제시했다.

이교수는 "기초의학분야에 지원하는 기초의학 전공의 수는 매년 전국적으로 10명 내외라는 점을 고려하면 기초의학의 발전은커녕 쇠퇴를 막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인력수급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기초의학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것은 이 분야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너무 미미하기 때문이다.

1987년 분자생물학자이자 면역학자인 도네가와 스스무 교수를 시작으로 2012년 도쿄(東京)대학 야마나카 신야 교수, 2015년 키타사토(北里)대학 오무라 사토시 명예교수까지 3명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2012년 영국 캠브리지대 존 거든 교수와 함께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수상 소감을 통해 "대지진과 불황에도 50억엔(약 711억원)의 지원을 받았다. 내가 아니라 일본이 노벨상을 탄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야마나카 교수는 2006년 쥐의 손상되지 않은 성숙세포를 미성숙한 줄기세포로 전환할 수 있는 '체세포 역분화줄기세포(iPS, 유도만능줄기세포)'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

야마나카 교수가 이 같은 연구성과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단단히 한 몫 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9년부터 30명의 연구자를 선정해 5년간 20억~50억엔의 연구비를 지원하고 있는데 야마나카 교수도 연구비 수혜자 중 한명이다. 

노벨수상자 배출을 목표로 한 정책 추진하는 정부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지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기초의학이란 학문의 본질에 충실한 게 아니라 '우리도 한 번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배출해보자'는 성과주의에 다름 아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보건복지부가 2011년 야심차게 시동을 건 ‘메디스타(Medi-star) 프로젝트’이다.

복지부는 2011년 미래 노벨생리의학상에 도전할 젊은 의생명과학자를 발굴·지원한다는 목표 아래 3년간 10명의 인재를 선정해 매년 1억원씩(1인당)을 연구비로 지원하는 ‘메디스타 프로젝트’을 시작했다. 

 

세상에, 노벨상 수상자 배출이 목표라니. 정책 그 자체부터 난센스였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한 노벨 생리ㆍ의학상 프로젝트'라는 정책 목표의 타당성을 따지는 건 차치하고, 메디스타 프로젝트가 실효성이 없을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이 많았다.

일단 지원 대상자 수도 너무 적고, 연구비 지원 수준이 과연 노벨생리의학상에 도전할 젊은 의생명과학자를 발굴한다는 거창한 목표에 부합하느냐 하는 점이다.

1인당 1억원의 연구비 지원금으로는 연구보조원을 채용하기에도 벅차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때문에 “실력과 잠재력을 갖춘 젊의 의과학자들에게 연구에 동기부여를 하고 성과를 내려면 지원 대상과 금액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복지부가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면서 외국인 환자 유치 및 의료시스템 수출 지원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취지로 책정한 관련 예산이 180억원이다. 올해 예산만 137억원이었다. 

이것과 비교하면 메디스타 프로젝트의 지원 규모는 눈물이 날 정도다. 노벨생리의학상에 도전할 젊은 의생명과학자를 발굴하고 지원한다니 터무니 없는 정책이다.

메디스타 프로젝트가 출범한 지 4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이 프로그램이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진 바 없다. 심지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지조차 모를 일이다. 

기생충 학자이자 칼럼니스트로 유명한 단국대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의 서민 교수는 '집 나간 책'(인물과사상사)이란 제목의 책에 수록한 '노벨생리의학상은 글렀다'란 글을 통해 "의학 연구 인프라도 없으면서 연구를 하도록 만드는 유인책도 별도 없는 나라. 다른 연구 분야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타는 의사가 향후 10년, 아니 20년 내에도 나올 것같지 않은 이유다"라고 했다.

그런 것 같다.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위한 정책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열악한 처우와 불안한 일자리에 몸서리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수많은 '비정규직 연구원'을 방치하는 국가에서 노벨생리의학상이라니…. 언감생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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