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뷰] 정진엽 후보자, 인사청문회 답변 스스로 되새겨봐야

 

[라포르시안]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지난 24일 열렸다.

정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각종 현안 및 의혹과 관련된 질의에 원론적인 답변과 두루뭉술한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나마 딱 한 가지 사안을 놓고는 소신을 지켰다. 바로 원격의료에 관한 생각이었다. 

정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원격의료는 공공의료를 수행하는 유용한 수단이며, 의료세계화에 대비해 필요하다"고나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목적으로 원격의료가 필요하다. 대도시 등 의료기관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서는 원격의료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도서 지역과 교도소, 원양어선 등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답변했다.

시민단체와 의료계가 우려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이 정진엽 후보자를 복지부장관에 임명하려는 의도가 "원격의료 기반의 의료산업화 및 영리화 정책을 밀어붙이려는 것"이라고 우려한 대목과 딱 맞아떨어진다.

그런데 원격의료가 공공의료를 수행하는 수단이며,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정 후보자의 말은 사실일까.

현재 복지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 모델이나 추진 방향을 따져보면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복지부는 현재 보건소와 의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시범사업은 고혈압·당뇨 등의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 중 재진환자를 대상으로 혈압과 혈당 등을 자가 측정해 주기적으로 의료기관에 전송하고, 의사가 이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하면서 PC나 스마트폰을 통해 원격 상담을 하는 방식이다.

의사-환자간 원격진료(진단·처방)보다는 원격모니터링(건강상태의 지속적인 관찰 및 상담 등)에 좀 더 가깝다.

정 후보자는 원격의료가 상용화되면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서지역 등의 의료접근성을 높이는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의도적인' 착각이다. 의사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 교묘하게 착각을 일으키는 답변을 한 것으로 의심된다.

현실적으로 섬이나 산간벽지 등 의료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에 필요한 건 만성질환 관리를 위한 원격모니터링 서비스가 아니다.

도서지역 주민들은 응급의료와 분만의료 등의 필수의료서비스 혜택이 절실하다.

지난 3월 전남 신안 가거도 인근 해상에서 해양경비안전본부(해경) 헬기가 조종사 등 4명을 태운 채 바다로 추락했다.<관련 기사: 만재도보다 먼 가거도…그 섬에 필요한건 원격의료 아닌 공공의료>

당시 해경헬기는 급성 충수염(맹장염)으로 긴급 이송이 필요한 7세 소아 환자가 발생했다는 가거도 보건지소의 요청을 받고 출동했다가 짙은 해무 등 악천후로 인해 사고를 당했다.

국토 최서남단에 위치한 흑산면 가거도는 목포에서 해상 220km 거리로, 배로 4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다.

가거도 보건지소에는 공중보건의사가 상주하고 있지만 응급수술을 필요로 하는 환자가 발생할 경우 검사장비와 수술인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육지의 큰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할 수밖에 없다.

가거도에 의사-환자간 원격의료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아마도 상황은 그대로였을 것이다.

 

현재 추진하는 원격의료 시스템은 만성질환자를 중심으로 한 원격모니터링 수준에 불과하고,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경우 원격지 의사가 할 수 있는 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응급수술이 필요한 외상환자나 분만환자 등이 발생했을 때 지금의 원격의료 시스템은 무용지물이다.

그런데 의료취약지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응급의료나 분만 등의 필수의료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의료시설이다.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공공의료 확충을 위한 목적으로 원격의료가 필요하다"는 정진엽 후보자의 말은 거짓말이다.

또한 '원격의료가 공공의료를 수행하는 수단'이라는 정 후보자의 주장도 거짓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경증이나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의 원격의료는 결국 시장의 논리에 따라 대도시 지역에서 원격모니터링 기반의 건강관리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원격의료를 공공의료 수단으로 여겼다면 외국처럼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제한적인 허용 방식을 택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원격의료 활성화를 추진한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의 국가 사례를 보면 공통적으로 의료취약지를 중심으로 공공병원 중심의 시스템 구축을 추진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11년 작성한 '국외 u-health 현황 및 정책적 시사점'이란 보고서를 보면 미국 등 외국에서는 원격의료 도입 과정에서 ▲의료취약지를 중심으로 원격의료가 불가피한 지역에서의 제한적인 시행 ▲전통적인 의료시스템과의 협력 ▲공공의료 중심의 추진 등을 추진하고 있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국방부 및 보훈처 등을 중심으로 원격의료기술 개발이 추진됐고, 텍사스를 비롯해 테네시, 알래스카, 몬타나, 노스캐롤라이나 등 인두 대비 면적이 넓고 의료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을 중심으로 원격의료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동네의원 중심의 원격의료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가뜩이나 '한 집 건너 병원'이라 불릴 만큼 의료기관 공급포화 상태에 의료서비스 접근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상태에서 무작정 원격의료를 활성화하면 오히려 의료전달체계가 더욱 왜곡되고, 경쟁에 밀린 의원급 의료기관이 폐업하는 상황이 속출해 의료접근성을 악화시킬 우려도 높다.

정 후보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원격의료가 공공의료를 수행하는 수단이 되기 위해서는 '의료취약지에서 공공병원 중심의 원격의료'를 추진해야 한다.

의사 출신이면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의료IT 구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정 후보자가 이런 속사정을 모를 리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격의료가 공공의료 수단'이라거나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데 원격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건 의료전문가로서 양심을 속이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국회의 인사청문에서 전문가로서 양심을 속이는 거짓해명을 하고, 국민의 건강와 복지를 책임지는 부처 수장직을 맡는다면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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