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2일 현재 국내 인증평가 의료기관 현판을 단 병원은 70곳이다.

의료기관 인증평가제도가 도입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상급종합병원 44개를 시작으로 현재 99개 의료기관이 인증을 신청, 70개 병원이 인증마크를 달았다.

병원계에서는 의료기관인증평가제를 두고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한 선순환 구조가 이뤄졌다는 긍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현실성이 떨어지고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올해 인증을 통과한 병원에서 인증평가를 총괄했던 실무자들은 일단 ‘환자안전’이라는 개념이 공고해졌다는 점에는 대부분 공감했다.

양산부산대병원 남상욱 교수(소아청소년과)는 “환자 이름 확인이나 손소독 등의 기준을 강화해 환자안전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라며 “특히 감염 예방을 위한 실천사항 준수도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인증제 평가 기준이 병원 현실과 동떨어져 ‘평가를 위한 평가’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양대구리병원 김종래 원무과장은 “조사위원들이 한정된 시간 내에 많은 것을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며 “그러다 보면 몇군데만 집중 조사가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직원들은 메뉴얼 암기 실력을 확인받게 된다. 형식적인 조사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과장은 “아웃소싱 업체의 직원한테도 인증기준을 묻거나 병원 직원은 누구나 의료사고가 났을 때 제세동기를 조작, 대응해야 하는 기준도 현실과 괴리가 있다”며 “특히 간호사를 포함한 병원 노동자의 인력 소요는 많은데 실질적인 보상은 따라가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인증제 획득 이후 지속성을 갖고 인증기준을 지키기 어려운 병원 경영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인제대 상계백병원 유영진 교수(혈액종양내과)는 “인증평가 받을 때는 잘 지키다가 원상복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종의 쇼를 하는 것”이라며 “실제로 손소독 횟수는 평가 이후 급격히 감소했다. 평가 기간 동안 일회용 타올을 쓰다가도 일부 병원들은 다시 수건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병원이 자율적으로 규정을 만들고, 그 병원의 여건에 따라 이행 수준을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병원 고흥범 기획팀장은 “중소병원 인증제 기준을 완화해 대형병원과 중소병원의 인증제를 가르는 방안 보다는 평가문항은 똑같더라도 평가를 받는 병원이 병상 수나 인력 등 병원 규모에 맞춰 기준 준수 여부를 평가할 수 있는 인증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의료기관인증평가원은 지난 1일 제2차 의료기관인증 조사기준 개정안을 발표했다. 인증원은 이전보다 병원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포괄적인 방향으로 기준을 개선했다.

또 호스피스 기관으로의 전원서비스 고려, 병원의 공공성과 지역사회 측면을 고려한 감염병 및 재난 대응책 마련 등을 기준에 추가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가 지난 8월 중순부터 한 달간 의료기관평가인증을 받은 국립대병원 4곳과 사립대병원 1곳에서 일하는 병원 노동자 1,6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평가인증을 위한 편법이 난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를 보면, '평가 인증 시에만 시행하고 종료 후 없어진 업무나 행위가 있다'고 답한 응답이 71%에 달했다.

평가인증을 잘 받기 위해 평소보다 외래 환자를 줄였다고 답한 비율도 61%에 이르렀고, 입원 환자를 줄였다는 비율도 53%로 파악됐다.

평가기간에만 환자에게 진료에 대한 설명을 하거나 평소에는 간병인이나 보호자에게 미루던 일을 간호사가 직접 하는 경우가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71%로 집계됐다.

이밖에 '거짓말을 하도록 지시받은 바 있다'(42.6%)거나 '환자 만족도 조사가 병원 지정 환자에게 이뤄졌다'(30.9%)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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