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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제중원을 서울대병원의 뿌리라고 주장하려면…
  •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 승인 2015.04.29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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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제중원'은 고종 22년인 1885년 개원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이다. 제중원이란 명칭은 '백성을 구제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로 개원 130주년을 맞았다. 그 역사를 놓고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이 수십 년째 '뿌리 논쟁'을 이어왔다. 양 병원은 서로 자기네가 '제중원 130년 역사'의 소유권자라며 다툼을 벌이고 있다. 뒤늦게 뿌리찾기에 나선 서울대병원의 기세가 대단하다. 제중원의 역사를 온전히 끌어안을 기세다. 제중원과 병원의 역사를 한묶음으로 엮어서 보여주는 사진전시회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꿈, 일상, 추억-서울대병원 130년을 담다'라고. 

뿌리 논쟁에서 서울대병원이 주장하는 바의 핵심은 제중원이 우리나라 국립병원의 모태라는 거다. 서울대병원은 고종과 조선 정부가 제중원을 설립하면서 유능한 의료인을 양성하고, 가난한 환자를 무료로 치료하라는 임무를 부여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제중원이 곧 우리나라 국립병원의 모태라는 논리다. '백성을 구제하는 집'이라는 의미처럼 제중원은 오늘날 국립병원으로 그 정신이 계승됐다는 게 서울대병원의 해석이다. 심지어 130년전 고종이 제중원을 설립한 뜻은 오늘날 국공립병원이 반드시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숙명적 과제'라고 말하는 비장함까지 드러냈다.

제중원의 적통을 잇는 적자가 누구이든 간에 서울대병원이 주장하는 바는 그럴듯하다. 국가중앙병원으로서 서울대병원이 갖는 위상과 역할을 고려하면 충분히 그런 주장을 펼 수도 있다. 유능한 의료인을 양성해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국립병원으로서 역할을 따지자면 말이다. 그러나 최근 수년 간 서울대병원의 행보를 보면 제중원의 뿌리 논쟁에서 주장한 것들이 무색할 지경이다.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국립병원? 지금의 서울대병원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드물다. 국내 최고 수준의 대학병원으로 인식할 뿐이다. 제중원의 역사적 전통을 잇는 국립병원이라는 주장은 공허하고, 병원 안에서만 맴돌다 사라질 뿐이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들어 정부의 의료영리화 정책 추진의 첨병 노릇을 해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영리자회사인 헬스커넥트를 설립해 부대사업을 꾀했고, 의료선진화라는 이름으로 해외진출에도 가장 적극적이다. 경영위기를 타개한다는 명분으로 진료수익 확대를 위한 의사성과급제도 가장 먼저 도입했다. 정규직이였던 청소노동자들을 용역으로 전환해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내모는 것도 모자라 식대와 세탁비까지 용역업체에 떠넘겼다는 비난도 받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병원내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성과급제)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성과급제 도입에 반발하며 지난 23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는 성과급제가 도입되면 직원들이 돈벌이 의료로 내몰리고, 공공병원으로써 기능은 더 약해질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의사성과급제를 도입한 이후부터 환자를 수익 추구의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심해졌다고 한다. 그러고도 모자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성과급제를 확대하면 진료공간이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공장처럼 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병원 측은 성과급제 도입 확대가 경영진의 의지가 아니라고 해명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에 따라 새로운 취업규칙을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정책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임금 및 인력, 예산이 동결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랬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확정한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방향'의 핵심은 성과와 연계한 보수체계의 확산과 인력운영의 효율성 제고이다. 공공기관에 대해서도 성과연봉제를 확대하고 업무 성과가 낮은 직원의 퇴출구를 마련하라는 요구다. 예산과 인사권을 움켜진 정부가 시키는 일인데 실행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공공병원과 의료공공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부의 방침이면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정부의 조치가 불합리하다면 당연히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대병원이 제중원 역사를 잇는 130년 국립병원이라고 자부한다면 최소한 그정도 역할은 해야하는 게 옳다. 그런데 정부의 방침에 마냥 휘둘리기만 한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병원으로서 의료에 대한 주체성도, 자부심도 찾아볼 수 없다.  '130년 역사'의 소유권을 주장할 자격이 있을까 싶다.   

제중원의 역사가 곧 자기네 병원의 역사라며, “오늘날 공공의료와 국공립병원 모태로서 제중원 설립정신을 기려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았나. 그런데 진료부서의 의료수익 증대와 진료지원 부서의 비용 절감에 목을 매고, 오일달러를 벌기 위해 중동의 부호국이 세운 공공병원의 위탁 운영권을 따낸 것을 홍보하는 서울대병원의 행보 어디에 제중원의 설립정신이 남아 있단 말인가. 진료실적에 따라 의사에게 성과급을 지급하고 직원들에게 성과급제를 강요하는 병원의 모습에서 제중원의 설립정신은 짐작조차 힘들다.  

이쯤되면 서울대병원이 제중원의 뿌리 논쟁을 벌이는 이유가 뭔지 의심이 든다. 제중원의 설립정신을 계승한다는 건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다. 정말로 원하는 건 130년이란 '역사적 타이틀'이 아닌지 모르겠다. 속내가 어떻든 간에 지금 서울대병원이 가는 방향은 그 병원만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서울대병원의 행보는 곧 국공립병원의 모델이 되고, 공공병원이 가야할 방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병원은 정부의 정책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녀선 안 된다.

서울대병원이 겪는 경영난이 어디 그 병원만의 문제인가. 적정진료는 언감생심인채 의사들이 최대한 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하고, 의료재료 비용을 절감해야만 경영이 가능한 상황은 대한민국 모든 의료기관이 겪는 문제다. 여기에서 어떻게 더 수익과 효율성을 제고해야 정상화가 된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건 정상화라 할 수 없다. 왜곡된 의료체계를 더욱 비정상적인 상태로 내몰 뿐이다.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에 따라 생산성·효율성 제고를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게 아니다. 공공병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대로 지원하고, 적정 의료인력으로 환자에게 적정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의료환경을 만들 것을 요구해야 한다. 서울대병원의 건투를 빈다. 

김상기 편집국 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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