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안타까운 일이지만 보건의료 관련 제도와 정책은 의료계의 의견수렴 없이 자주 바뀐다. 게다가 의료계의 의지와 상반된 방향으로 바뀔 때가 많다. 이런 변화 앞에서 많은 의사들이 좌절과 분노를 느낀다. 의사들만 그런 게 아니다. 환자와 시민사회 역시 마찬가지로 최근의 보건의료체계 변화를 바라보며 깊은 실망에 빠졌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국민의 건강과 생명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돈벌이 의료'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의료세계화'라는 희안한 구호마저 등장했다.

지금의 의료환경에 대한 불만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심지어 보건의료 정책을 결정하는 공무원의 입에서조차 의료환경의 문제점에 대한 거친 발언이 나오곤 한다. 자생적으로 태동하지 못한 의료공급체계와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한 건강보험제도가 지닌 한계와 문제점은 지난 수십년 간 끊임없이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 사회보험제도이면서 보장성이 너무 취약하고, 의료공급 구조의 불균형과 무질서는 그 자체로 국민건강에 위협적이다.  

불합리한 의료시스템 탓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진료현장의 갈등은 의사와 환자를 지치게 만든다. 게다가 환자들의 불만은 손쉽게 의사를 향한다. 이런 일로 자신이 '번 아웃'(Burnout) 상태라고 말하는 의사가 속출한다. 환자 진료로 신체적, 정신적 기력을 소진했으면 모를까. 진료하기도 전에, 혹은 진료 이후의 각종 규정과 비용 청구 문제로 부딪히다가 탈진 상태에 빠졌다.  

의료서비스 공급 방식은 관료주의와 행정편의주의 틀에 갇힌 지 오래다. '아픈 사람과 치료를 하는 사람'이라는 의사와 환자 관계의 본질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진단과 치료 결과에 따른 비용 지급 절차와 비용산정의 기준에 들어맞는지 여부만 따질 뿐이다. 의사들이 제아무리 의료전문주의를 완성하더라도 의료서비스 공급 과정에서 자율성을 회복하기는 힘들다. 엄밀히 따지면 의사의 직업적 자율과 임상적 독립성은 허상이나 마찬가지다. 진료비 확인제도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못해 발생한 비급여 영역의 진료비를 환자에게 감시하라고 부추긴다. 정부는 이걸 또 '환자 권리구제 제도'라고 홍보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의료 본질적 가치가 끼어들 틈이 없다.     

각설하고, 새로운 의사협회 회장을 뽑는 선거가 한창이다. 모두 5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이들이 제시한 공약의 공통된 기조는 잘못된 의료제도를 변화하고 개혁하자는 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누구를 뽑아도 의사들이 진료현장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누가 의협회장이 되더라도 지금의 의료환경이나 의료정책을 변화시키기 힘들다. 의협은 이익단체다. 그 단체의 수장에게 그렇게 큰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을 뿐더러 그럴 만한 힘도 없다.

의사들도 이런 현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의협회장이 되느냐는 중요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의협이 전체 의사사회를 대표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비록 일방적이긴 하지만 정부의 보건의료정책 수립과 결정 과정에서 카운트 파트너로 불리기도 한다. 의협은 또 의사사회와 시민사회를 잇는 연결고리 같은 곳이다. 의료윤리를 정립하고, 그에 반하는 행위를 한 의사에 대해서는 내부 자정기구로써 역할도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의협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의협은 개원의사부터 병원 봉직의사, 의과대학 교수, 수련병원 전공의, 공중보건의사 등을 모두 아우르는 단체다. 그런데 지금의 의협은 개원의사단체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많은 의사 회원들이 의협의 역할과 활동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거나 버렸다. 회장선거가 한창인데 누가 출마했는지 모르거나, 심지어 회장선거를 치러는 지 모르는 의사가 많다는 게 그 방증이다.    

지금까지 회장선거 결과를 보면 의협이 처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직선제로 치러진 의협 회장선거에서 회비납부 등 자격을 갖춘 유권자 수는 전체 회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 중에서도 40~50%만 투표에 참여했다. 매번 선거에서 총 투표수가 2만표 안팎이다. 회장에 당선된 후보의 득표수는 5~6000표에 불과했다. 10만명이 넘는 전체 의협 회원 중에서 겨우 5~6% 지지율이다. '11만 의사회원을 대표하는 의협'이란 표현이 무색하다.   

대표성이 결여된 협회장을 선출해 놓고 또 그 안에서 사분오열로 갈라진다. 정부든, 정치권이든, 시민사회든 그 속에서 나오는 불협화음같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리 없다. 의사사회가 집단적으로 추구하는 하나의 엄선된 가치가 없다. 그때그때 일이 터질 때마다 뒤늦은 탄식과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보건의료체계의 큰 흐름을 주도하지 못하는 탓에 매번 끌려다닌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다른 이익집단이 앞질러 내놓은 수에 밀리고, 뒤늦게 비명을 지르는 일이 잦다. 의료현안 문제에 대응하는 데 있어서 연속성과 일관성이 없다. 다 의사협회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의협의 미래를 장담하기 힘들다. 회비를 내는 회원 수가 계속 줄면서 의협의 재정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고 한다. 회비 납부율 감소로 적자가 누적돼 협회의 파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갈수록 존재감이 약해지고 역할이 축소되는 의협의 위상은 의사들이 처한 현실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의협 회장이 바뀐다고 크게 나아질 건 없다. 그렇지만 많은 의사회원의 의지가 반영된 인물이 회장에 당선되면 의협은 또 변할 수밖에 없다. 조직의 생리가 그렇다. 반면 회원들의 무관심 속에 '5% 지지율' 회장이 계속 등장한다면 변화는 요원하다. '의협이 하는 일이 뭔가? 의협은 왜 맨날 저런가?'에 대한 실망과 탄식만 무한 반복하게 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의지가 반영된 선택이야말로 큰 변화의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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