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주(인사이트나인코리아 대표이사)

[라포르시안] 우리나라는 전 국민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모든 요양기관의 건강보험에 대한 당연 지정을 의무화하고 있다. 국민은 이를 통해 전국 어느 의료기관에서도 건강보험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급여를 위해서는 의료기관에서 사용하는 치료재료·의료용 기계·기구 등에 대한 가격을 정한다. 치료 때 발생하는 비용은 환자 본인부담금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부담금으로 비율에 따라 나누고, 환자도 일정 부분 비용을 지불한다. 

만약 기존 급여 목록에 없는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의료기술이 개발됐을 때에는 해당 기술이 임상에서 효과가 있는지 ‘신의료기술평가’가 이뤄지며, 이는 사실상 급여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에 가깝다. 개발된 의료기기가 기존 기술과 차별성이 있고 기존 등재 목록에 따른 가격이 아닌 새로운 가격 책정을 희망하는 경우 신의료기술로 판정을 받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신청해 새로운 등재 목록을 통해 가격을 책정하게 된다.

이러한 신의료기술을 평가하는 기관인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은 2008년 설립됐다. 보건의료기술진흥법에 근간을 두고, 보건의료기술과 이를 이용해 생산한 제품의 경제성 분석 및 성과 분석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기관을 설립해 보건의료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의료산업 발전을 도모하려는 목적이었다. 그 배경에는 새로운 수술법이나 치료법이 나오는 데 환자 안전을 담보해야 하고, 임상적 유효성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검증하고자 하는 사회적 필요성이 있었다. 당시 이에 대한 반대는 없었고, 설립 목적에도 공감했다. 

하지만 새롭고 혁신적인 의료기술이 NECA 설립 이후 많아졌을 리 만무했다. 신의료기술 검토 사례가 그리 많지 않으면서 기관에 대한 업무 영역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의료기술뿐만 아니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받은 의료기기에 대한 시장 진입을 통제하는 절차로 바뀌게 된다. 즉 식약처에서 허가받은 제품은 급여 등재 목록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고, 기존 목록에 해당되지 않을 경우 신의료기술 평가를 받게 됐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신의료기술평가 검토 업무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신의료기술평가 심사 기준 및 지연이다. 의료기기산업계는 허가받은 의료기기가 왜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되는지 궁금했다. 한번 신청한 민원은 몇 년이 걸리는가 하면 시장 진입이 지연되는 경우도 발생했고, 엄청난 민원이 쇄도했다. 물론 시행착오를 거치며 꾸준한 제도 개선을 통해 의료기기업체가 설명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평가 일정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첫째, 식약처의 안전성·유효성 검토와 신의료기술 검토에 대한 차별성이 없다는 점이다. 둘째, 검토 기준인 근거 중심 문헌 비교가 해당 제품의 논문에 따라 결정되다 보니 자본력이 풍부한 외국 제품은 등재되고 상대적으로 재정 상태가 열악한 국내 제품은 평가의 최소 논문 기준조차 맞추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셋째, 인허가 이후 시장 진입에 대한 또 다른 장벽으로 시간을 지연시킨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허가보다 외국 허가를 획득하고 나서 한국 인허가를 받는 역선택 방법까지 나타났다.

의료기기산업계는 허가받은 의료기기가 왜 신의료기술평가에서 탈락되는지 궁금했다. 한번 신청한 민원은 몇 년이 걸리는가 하면 시장 진입이 지연되는 경우도 발생했고, 엄청난 민원이 쇄도했다

NECA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내 제품에 대한 임상 지원과 일정 부분 기준도 보정을 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신의료기술평가는 신규 업체와 스타트업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식약처에서도 이에 대한 제도상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통합심사나 원스톱 등 신의료기술평가 동시 검토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나 민원인 입장에서 체감되는 변화가 없고 제도 복잡성만 가중됐다. 이에 2017년 상대적으로 안전한 체외진단의료기기에 한해 ‘선진입·후평가’ 제도를 시행하고자 했으나 여러 논란으로 인해 매우 제한적으로 운영되다 그 사례가 거의 없어지게 됐다.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한 존재감은 새로운 의료기술이 개발됐을 때 이를 검토할 기관으로써 무분별한 치료법으로 인한 환자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필요성에 있다. 또한 전 국민건강보험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보장 제도 안에서 건강보험 기금에 대한 철저한 통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격 통제 기전으로 운영할 필요성이 있다.

하지만 의료기기산업계는 굳이 기관을 나눠 임상 검토를 할 필요가 있는지, 논문을 근거로 한 검토 방법이 초래하는 국내 제조사 역차별과 이미 국가 기관에 의해 안전성·유효성 검토를 마친 제품이 시장 진입을 못 하게 되는 결과 등에 대한 신의료기술평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신의료기술은 국내 제조사에 대한 역차별, 신기술에 대한 국내 환자의 도입 지연,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에 대한 부담을 야기해 기존 개선책으로는 구조적으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한 전면적인 정부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의료기기산업계가 주장해 온 것처럼 인허가 이후 시장 진입을 가능하게 하고 비급여에 따른 환자 부담을 줄이기 위한 가격 통제를 하며, 일정 기간 사용 후 근거를 만들어 급여 등재를 할 수 있는 대폭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정부의 전향적인 신의료기술평가 제도 개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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