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증상 노인 접종대상서 제외했다가 ‘불친절 민원’…행정처분까지 받아

[라포르시안]  환절기로 접어드는 10월이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보건소와 보건지소에서는 연례행사처럼 진풍경이 펼쳐진다.  보건소 앞은 이른 아침부터 독감백신 접종을 받기 위한 노인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독감접종을 하는 날이면 하루 평균 수백명에서 천명이 넘는 접종인원이 몰린다고 한다.  무료접종 대상인 65세 이상 노인들은 보건소의 백신 확보 물량이 소진돼 접종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며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대기행렬에 가세한다.  그러다보니 보건소나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공중보건의사들을 독감백신 접종 시즌이 두려울 지경이다.  

▲ 독감백신 접종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하루에 수백 명에서 천명이 넘는 인원의 접종을 혼자서 감당하는 것도 힘들지만 자칫 접종 대기가 길어져 민원이라도 제기되면 여간 골치아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에 수백 명이 넘는 인원을 접종해야 하는 탓에 접종 전 시진과 문진, 발열 검사 등을 꼼꼼하게 할 수도 없다. '예방접종 사전 예진표'를 대충 보고 서명하고 특별한 이상이 보이지 않으면 접종을 한다.

지난 9월 말부터 전국 각 지자체 보건소나 보건지소 등의 보건의료기관에서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경기도의 한 보건의료원에서 독감백신 접종과 관련한 민원이 제기돼 공보의가 행정처분을 받는 일이 생겼다.  해당 공보의는 행정처분이 부당하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공보의 혼자서 이틀간 천명 넘게 독감백신 접종“환절기라 감기증상 있다길래 접종대상에서 제외했더니…”

앞서 연천군보건의료원은 지난달 20일 독감백신 무료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무료접종 대상자가 워낙 많다보니 지역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공보의가 파견근무를 왔다. 인근 보건지소에 근무하던 K공보의도 20일과 27일 이틀간 연천군보건의료원에서 지원을 했다.

이틀동안 K공보의가 접종한 인원은 1,000명이 넘었다. 지난달 20일 하루에만 약 800명을 접종했고, 27일에도 200명이 넘는 인원을 접종했다고 한다.

K공보의는 접종 대기자를 예진하는 과정에서 감기증상이 있는 노인은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접종 대상에서 제외토록 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독감백신 접종을 받지 못한 지역민이 보건의료원 측에 불만 민원을 제기했다.

독감접종을 받지 못하고 돌아온 당일 연천군보건의료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만 불손한 독감예방 담당의사'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C씨는 이 글을 통해 "독감예방 주사 담당의사를 만나고나서 완전히 기분이 잡쳐 버렸다. '감기기운이 약간 있는데 괜찮을까요?'하고 묻자 '안 되요. 다음에 오세요'하고 이렇다할 설명도 없이 독감예방 신청서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저버렸다. 의사의 이런 오만 불손한 태도는 연약한 노인들의 아주 마음을 상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오만 불손한 의사를 처음 본다"고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다.

C씨의 불친절 민원이 제기된 이후 K공보의도 직접 보건의료원 홈페이지 게시판에 사과의 뜻을 전하는 글을 남겼다.

그는 해당 글을 통해 "당일 예방접종 첫날이라 아침부터 수백여명의 환자분이 예방접종을 위해 한꺼번에 내원하셨고, 일일이 한분 한분 정성껏 진찰하고 설명드렸어야 마땅하지만 시간에 쫒겨 충분히 설명하고 응대하지 못했다"며 "환자분에게 충분한 설명과 안내를 하지 못하고 불쾌감을 안겨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K공보의가 나름 불만 민원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연천군보건의료원은 확인절차를 거친 후 최근 K공보의에게 불성실 근무 및 불친절 민원을 이유로 주의와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 때문에 K공보의는 진료활동장려금 지급도 3개월간 중지된다. 

진료활동장려금은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에 따라 매월 80만원 한도 내에서 지급되는 것으로, 3개월치면 240만원에 달한다.

이번 일과 관련해 K공보의는 보건의료원의 처분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K공보의는 "내가 근무하는 보건지소에서도 일정에 따라 독감백신 접종을 했고, 연천군보건의료원의 접종 때 지원하기 위해 파견근무를 나간 것"이라며 "이틀동안 천명이 넘는 인원을 접종하면서 제대로 예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환절기라 감기에 걸린 노인분들이 많아 감기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접종 대상자에세 제외했다"고 말했다.  

그는 "C씨는 접종을 하기 전 감기증상이 있다고 본인이 말을 해 접종 대상자에서 제외하고 다음에 접종을 받으라고 했다"며 "그런데 이 일로 민원을 제기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연천군보건의료원에 항변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원의 행정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해 소청심사를 청구했다.

그는 "이번 행정처분에 대한 소청심사를 어제(27일) 접수했다"며 "이와 비슷한 일을 겪은 공보의가 많기 때문에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에서도 이번 일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반면 연천군보건의료원은 K공보의에게 내린 행정처분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보건의료원 보건행정팀 관계자는 "K공보의에게 내린 행정처분에는 문제가 없다. 소청심사를 제기했으니 그와 관련한 절차가 진행되면 그때 우리 기관의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K공보의가 감기증상을 보인 C씨를 독감접종 대상에서 뺀 것을 단순히 불친절 민원 유발로 판단할 수 없지 않냐고 묻자 이 관계자는 "그 사안만 갖고 행정처분을 내린 게 아니다. 현재로서는 이 문제에 대해 (기자에게)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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