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의학교육 질저하 예방 위해서 350명 규모 적당"
시민단체 "최소 1천명에서 최대 3천명 수준으로 대폭 확대해야"
4월 총선 다가오면서 지자체·정치권서 의대신설 유치 팔걷어

[라포르시안]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추진을 둘러싼 찬반 여론이 들끓고 있다. 특히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의대정원 확대가 지역사회와 정치권에서도 정치적 이슈로 급주상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란 우려도 높다. 

의대 증원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의료계와 협의를 이유로 확대 규모 결정과 발표 시기를 확정하지 못한 채 계속 미루는 분위기다. 문제는 전국 지자체에서 4월 총선을 앞두도 정치권과 손잡고 의대 증원과 연계한 의과대학 신설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북 포항시를 비롯해 전남, 경남 창원시 등은 앞서부터 의대신설 추진을 사활을 거고 있으며, 최근에는 수도권 지역에서도 의대 신설 추진에 많은 지자체가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와 발표 시기를 미룰수록 이 사안은 총선과 맞물려 정치쟁점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지역·필수의료 살리기라는 취지는 퇴색하고 정치권의 표몰이를 위한 '의대정원 나눠먹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의대 증원 결정과 발표를 신속하고 단호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은 작년 1월 9일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서 의대정원 증원 정책을 의료계와 상시 협의체를 가동해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를 계기로 대한의사협회와 ‘의료현안협의체’를 구성해 여기에서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적정 의사인력 확충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복지부와 교육부가 작년 10월 27일부터 11월 9일까지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의대 증원 수요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의대 증원이 가시화하는 듯했다. 당시 발표한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 의대 정원인 3,058명 대비 전체 의대에서 제시한 2025학년도 증원 수요는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에 달했다. 각 대학은 정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2030학년도까지 최소 2,738명에서 최대 3,953명을 추가 증원하기를 희망했다. 

수요조사 발표에 이어 정부는 11월 말까지 현장점검을 완료하고 최종 의대 증원 규모를 빠르면 12월 말, 늦어도 1월 초까지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점검이 12월 말에 끝나면서 의대 증원 규모 확정과 발표도 지연되고 있다.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관련해 작년 말까지 대학별 현장조사를 완료했지만 구체적인 정원 규모와 발표 시기는 정해진 바 없다"며 당장 2025년도 입시요강 발표까지 시간이 있기 때문에 급하게 결정할 이유가 없다며 여유를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대증원 추진과 그 규모를 둘러싼 여론은 논쟁이 점점 가열되고 있다. 

전국 의과대학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가 지난 9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2025학년도 입학정원에 반영할 수 있는 증원 규모는 40개 의과대학에서 2000년 감축했던 350명 수준이 적절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의대·의전원협은 "최근 불거진 필수의료, 지역의료의 위기는 지속적인 저수가정책,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의료전달체계, 기형적으로 확장된 실손보험 체계 등 장기간 축적된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하며 의사정원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40개 의대는 정부의 '필수의료 확충전략'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의대 증원 수요조사에 임했고, 정부 요구에 맞춰 최대 수용가능한 학생수를 제출한 바 있다"고 했다. 

의대정원 수요조사 결과를 근거로 증원 규모를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의대·의전원협은 "이 숫자는 참고사항일 뿐 논의의 출발이 되어서는 곤란하며, 총 증원 규모는 의학교육의 질저하를 예방하고 교육현장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2000년 감축했던 350명 수준 증원 규모에서) 향후 의료인력 수급양상과 필수의료 확충의 가시적인 성과를 지켜보며 추가적인 조정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지난 10일 열린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 간 새해 첫 의료현안협의체 회의에서 의대·의전원협이 발표한 공식 입장문 내용이 관심사로 다뤄졌다. 

이날 회의 관련한 백브리핑에서 복지부 관계자는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해 의학 교육의 질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의대·의전원협의회도 350명을 발표했다고 보는데, 현재는 세부적으로 논의해봐야 하는 사항이지 협의회 입장만 가지고 뭐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며 “350명이라는 숫자에 전혀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고 일축했다.

반면 의협 관계자는 "기존 수요조사 내용과 달리, 실제적으로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의대·의전원협에서 발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350명이라는 숫자가 절대적 기준은 되진 않겠지만, 지금 현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그런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노동계에서는 350명 규모의 의대 증원은 지역.필수의료 문제를 개선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1일 공식 입장을 내고 "적정한 의대 정원 확대 규모는 최소 1000명에서 3000명 수준으로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의대 정원 확대 규모 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의료계가 의대 정원 확대 규모를 최소화하기 위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며 "의대․의전원협회가 발표한 350명 규모는 의대 정원 확대 수요조사 결과에도 한참 모자란다"고 지적했다. 

입학정원 350명 증원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료계 요구로 감축한 351명을 복원하는 것으로 필수의료·지역의료 살리기 대책이 아닌 생색내기용 증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보건의료노조는 "350명으로는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고, 소아과 오픈런, 원정출산, 원정진료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과 불편을 해소할 수도 없고, 지역의료 붕괴와 불법의료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를 해결할 수도 없다"며 "350명 증원 규모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의대 정원을 최소 1000명~3000명 규모로 대폭 확대하는 것이야말로 국민들의 고통과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절박한 국정과제이고, 붕괴로 치닫는 필수·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라며 "정부는 더 이상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최소화하려는 의료계의 여론전에 휘둘려선 안 되며, 3월 의협 회장 선거를 앞두고 유리한 성과를 만들려는 의협 내 강경세력들의 협박에 굴복당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2020년 의사총파업 당시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 재논의 등을 촉구하며 가운을 벗고 있다. 
2020년 의사총파업 당시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 재논의 등을 촉구하며 가운을 벗고 있다. 

정부가 의사집단 눈치 보기를 그만두고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을 비롯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 췌장암환우회(행복하게살자),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폐섬유화환우회, 한국루게릭연맹회 등은 지난 11일 공동성명을 내고 "OECD 수준이 되려면 의대정원 3000명을 증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규모 발표 시점이 임박하자 규모 축소를 위해 자기부정도 서슴지 않고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한 의료계의 행태는 실망스럽다"며 "과연 이들이 국민의 생명을 다룰 의사 양성할 자격이 있는지, 의대교육을 맡겨도 좋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지역·필수의료 살리기 위한 의대정원 확대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정부를 향해 거듭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우리나라 의대 정원은 2000년 3,500명 수준에서 2007년 3,058명으로 감소해 의대 졸업자 수는 2010년부터 인구 10만 명당 8명 이하에서 정체됐다. 반면 OECD 국가의 의대 졸업자는 2018년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13.1명으로 격차가 발생한다"며 "2019년 기준 OECD 국가 평균과 우리나라 활동의사 수를 비교하면 약 7만4천 명이 부족하다. OECD 평균 수준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3000명을 즉시 증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대정원 확대만으로는 지역·필수의료에 필요한 의사 배치에 한계가 있으므로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 등 입학정원 증원 방식의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이들 단체는 "지역필수의료에 의무복무할 의사를 선발해 교육․양성하는 공공의과대학을 권역별로 신설하고, 국군·보훈·경찰·소방·교통재활·산재병원 및 법무부 교정시설의 의사 확보 등을 위해 특수목적의대 설치도 검토해야 한다"며 "최근 국회에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과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안(대안)'이 상임위를 통과했다. 21대 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는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방안과 함께 추진될 수 있도록 지체없이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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