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시안]  '헬스케어 3.0' 시대라고 한다. 천연두와 같은 감염병을 예방하고 확산을 막는 것에 치중한 1.0 시대를 지나 각종 질병을 치료함으로써 기대수명을 연장하는 게 2.0 시대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일상적인 질병의 예방∙관리를 통해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헬스케어 3.0 시대의 개념이다. 헬스케어 3.0 시대를 여는 가장 중요한 도구는 '디지털' 기반의 의료기술이다. IT와 의료기술의 융합이 헬스케어 3.0 시대를 구현하는 요체다.

지금까지 개발된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보면 헬스케어 3.0 시대가 머지 않았음을 짐작게 한다. 의사가 멀리 떨어진 환자를 원격진료하는 건 기본이고, 일상 생활 속에서 항시 생체신호를 감지하고 이를 통해 건강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구글은 옷처럼 몸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컴퓨팅인 '구글 글래스'를 개발해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미국의 일부 병원에서는 구글 글래스를 의료진에게 보급했다. 의사가 구글 글래스를 안경처럼 착용하면 바로 눈 앞에 환자의 진료기록을 불러와 보여주고, 멀리 떨어진 곳의 의사에게 자신이 수술하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것도 가능하다. 스마트폰은 개인의 생체신호를 측정∙저장하고 전송하는 헬스케어 도구로 진화하고 있다.

IT와 의료기술의 융합은 언제 어디서나 건강을 관리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유비쿼터스 헬스케어'를 예고한다. 머지 않았다고 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각종 디지털 헬스케어 장비가 상용화되고,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시대가 열릴 것이란 전망이 쏟아진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뒤쳐질 것이라며 재촉한다. 병원과 의사들은 조급해진다. 발빠른 일부 병원은 벌써 디지털 헬스케어 시스템 구축을 준비한다.

환자들에겐 관심 밖의 일이다. PACS(의료영상저장전송장치)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엑스레이 필름이 사라져도, EMR(전자의무기록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진료기록이 담긴 종이차트가 사라져도 그저 그런가 싶었다. 벌써 10여년 전부터 E-헬스케어니 U-헬스케어니 하고 떠들었지만 당장 몸이 아플 때면 어느 병원을 찾아가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헤맨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진료를 받으면서도 고통과 함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건 진료비 걱정이다. 디지털이 됐건 아날로그 헬스케어가 됐건 병을 낫게 하는 대가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기를 바랄 뿐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의 유비쿼터스 헬스케어가 구현되면 '누구나'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홍보한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비용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면 '디지털 헬스피아'와의 접속은 차단된다. 보건의료기술의 혁신은 의료비 상승을 초래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만 보더라도 고혈압과 당뇨병 환자가 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혈압계와 활동량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의 장비가 필요하다. 시범사업 때야 정부가 지원한다지만 그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된다면 개인 부담으로 구매하거나 대여해야 한다. 당연히 이용자의 비용 부담이 수반되기 때문에 시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이런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문제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지닌 시장성이 초래할 차별과 양극화다. 가장 먼저 원격의료 서비스 이용자와 비이용자가 발생한다. 디지털 의료소외계층의 등장이다. 원격의료 관련 기술이 더 발달하고, 관련 장비의 성능이 더욱 나아지면 비용부담은 더 커질 것이다. 기업과 시장의 속성이다. 그렇게 되면 스마트폰이 등장하던 초기 피처폰과 스마트폰 이용자가 혼재하던 것처럼 원격의료 이용자 간에도 서비스의 차별화가 생길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원격의료 기술이 등장할 것이고 이용자간 서비스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게 뻔하다. 시장은 그렇게 더 큰 니즈(Needs)와 구매력을 지닌 소비자를 흡수하며 성장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과 그 유효성에 무한한 신뢰를 보이는 사람과 집단은 IT와 의료의 융합, 나아가 통섭적 접근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해서 도래할 건강수명의 연장이라는 헬스케어 3.0 시대는 어떨까. 아마도 의료생태계에 환원주의가 만개할 가능성이 높다. 건강권과 의료접근권 보장이 개개인한테 책임이 주어지고, 공공의료를 기반으로 한 국가의 책임은 더 줄어든다. 건강수명 연장을 위한 보건의료 제도와 사회구조, 정치, 가치체계 등의 포괄적인 요인에 대한 고민은 0과1의 디지털 매트릭스 속으로 사라진다. 건강권과 의료접근권 보장이 개인의 책임으로 단순화될 지 모른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간과하는 점이 있다. 의료서비스 공급이 자유로운 시장원리에 맡겨져 있지 않다는 거다. 현행 건강보험제도는 거의 대부분 질병의 사후적 치료에 대해서만 보장한다. 질병 예방은 보장의 대상이 아니다. 원래 건강보험제도는 질병의 치료와 함께 예방에 대해서도 보장하도록 설계됐다. 질병의 예방과 건강증진에 대해 보장하는 것이 국민건강보험법의 핵심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급여 혜택은 질병의 치료에만 그친다.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고 관리하는 디지털 헬스케어가 구현되더라도 건강보험제도의 영역 밖이다. 비싼 비용부담이 따른다는 말이다. 인구 고령화와 급증하는 만성질환자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은 항상 위태위태하다. 질병의 예방과 관리 영역까지 보장성의 온기가 미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현재로선 디지털 의료기술이 제공하는 유비쿼터스 헬스케어는 SF영화 속 '엘리시움' 같은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얼마 전 영국의 20대 청년이 바람을 넣으면 튜부처럼 부풀어 오르는 휴대용 인큐베이터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관련 기사 바로가기> 그가 개발한 인큐베이터는 1회 충전으로 약 24시간 동안 이용할 수 있으며, 바람을 빼면 부피가 줄어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다. 이 인큐베이터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낮은 가격이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인큐베이터와 동일한 성능을 갖췄지만 제작비용은 40만원에 불과하다. 그 영국 청년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인큐베이터를 개발했을까. 그는 "난민캠프에서 미숙아의 높은 사망률에 다룬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나의 희망은 이 인큐베이터를 통해 생존한 아이를 만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발명품이 상용화되면 아프리카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신생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갖게 한다. 그가 무슨 생각에서 휴대용 인큐베이터를 개발하게 됐는지 짐작게 한다. 

반면 지금껏 이야기되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활용과 발전을 촉진해온 모티베이션(motivation)이 어디에 있는가 의심도 든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시장성이 가장 큰 자극제로 작용하는 것 같다. 미지의 의료시장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선보일 때마다 강조한 대목이 이를 반증한다. 상용화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용해서 얼마나 큰 시장이 열릴 것인가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원격의료 활성화를 주장하는 기업과 정부 관료들의 눈은 장밋빛 미래에 젖어 있다. 원격진료가 제도화되면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산간 오벽지 주민,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인가. 원격의료 서비스 이용에 따른 비용 부담과 IT 접근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디지털 헬스케어 자체를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관련 기술의 개발과 적용에 있어서 필요성이 분명하고, 의료가 갖는 공익적 성격을 감안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호주 등의 국가가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것은 광활한 국토에 무의촌 지역이 넓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국토도 크지 않고 의료기관이 과포화 상태다. 지금의 의료접근성 문제는 의료자원 배치의 불균형과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그리고 공공의료 부족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걸 시장성에 눈먼 디지털 헬스케어로 극복하겠다는 건 그럴 듯한 명분 속에 불순한 의도를 숨긴 것에 다름아니다.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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