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건강연구소] 국가폭력 체제에 대항하자

[라포르시안] 대통령이 거부한 노조법 개정안은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폐기됐다. 그 전날 열악한 노동환경에 실질적 책임이 있는 원청 한국서부발전은 대법원으로부터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를 받았다. 중대재해의 약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여당과 제1야당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추가로 2년 유예하는 것을 논의하려 한다. 

일련의 사건과 과정들을 따로 떼어 생각하기 어렵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이슈일 뿐 아니라 일정한 경향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국가 권력이 누구에게 이익을 집중하고, 누구에게 고통을 전가하는지 한 번 더 똑똑히 확인했다. 지금까지 모든 정부는 스스로 기득권으로서 그 이익을 위해 복무하지 않았던 적이 없지만, 지금처럼 몰염치하고 노골적인 행태는 드물었다. 

한편 국가 폭력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국가 폭력은 법과 제도를 통한 구조적 폭력을 비롯해 다양한 양태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물리적 폭력 이상을 가리킨다. 하지만 현 정권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법과 제도를 통한 폭력 뿐 아니라, 특정 집단을 비호하거나, 특정 집단을 압박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는 일도 자주 보인다.

일부 기득권층을 제외한 대다수 시민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국가 권력의 적극적 조치에 맞서, 부정의를 지적하고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현 정권을 비판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지금과 같이 국가 폭력이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 국가 폭력을 저지르게 만드는 구조를 함께 살펴야 한다.

현 정권을 두고 '신자유주의적 처벌 국가'로 규정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관련기사 바로가기).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속 자본의 신자유주의 운동에 조응해, 국가의 역할은 줄이고 시장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사회에서 생존이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특별한 계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언제 이 사회에서 '정상' 인간에서 벗어나게 될지 불안을 느끼고 있다. 그 불안과 고통이 드러나고,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라는 요구가 커지면, 국가 권력은 목소리 내는 사람들을 위험인물 혹은 집단으로 몰아가고 폭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통치 기술은 현재의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에 걸맞은 습관, 행동양식, 사고방식, 의사결정 패턴 등을 내면화한 정도에 따라 수월하게 작동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경제가 다른 가치에 비해 우선하고, 경쟁을 통한 자원 획득만이 정당하며, 각자가 스스로를 책임지는 게 당연한 사회를 떠올려 보자. 경제적 자원이 풍부한 사람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이를 사회 원리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만큼 우리는 국가 폭력에 무뎌지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 현실의 고통을 주변화된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국가의 프레이밍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게 된다.

요컨대, 현재 정권의 폭압적 행태는 권력을 가진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속성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구조적 압력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구조에서 다른 주체가 권력을 쥐더라도 체제적 경향 자체를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당장 눈앞의 부정의에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과제지만, 체제의 변혁까지 함께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체제 변혁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으로만 생각할 필요 없다.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다. 눈앞에 당면한 부정의에 관심 가지고, 분노하고 비판하는 것과 별개의 일도 아니다. 거기에 더해서 지금 벌어지는 일의 원인의 원인을 묻고 따져보고, 현재 질서에서 당연시되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해 보는 것, 비슷한 지향을 가진 사람들과 형성한 대항적 담론의 공간(대항적 공공권)에서 함께 배우고, 목소리 내고, 지배적 질서에 거슬러 보는 다양한 시도들 모두를 포함한다. 모두가 단일한 실천 목표를 위해 노력하다가 마침내 달성하여 어느 날 갑자기 '오늘부터 새로운 체제 1일' 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조직적 연대와 다양한 실천들이 만나, 더해지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가 기존의 질서를 서서히 대신하는 것이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정권 앞에서 우리의 시도들이 당장은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의 거칠어진 통치는 그만큼 대항의 잠재력을 축적한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연대하고 다양한 실천을 기획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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