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윤희(영화감독, 산업의학 전문의)

다큐를 찍으면서 여러 교수님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교수라는 타이틀은 같지만, 고용되어 있는 병원의 특성에 따라 다른 삶의 질, 노동의 질을 누리는 듯 보였다. 주로 대학병원에서 진료 실적에 대한 부담의 정도, 병원의 인센티브 체계가 얼마나 진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질문의 요지였는데, 그에 대한 대답은 다양했다. 개인 메일이나 단체 과장된 회의에서 직접적인 언급으로 진료 실적에 대한 압력을 받는 분들부터, 아주 교묘하게 제대로 된 인센티브 체계 하나만으로 간접적인 압박을 받는 분들까지 천차만별이었다. 

2000년대 초반, 필자가 한참 학생실습을 돌 때 봐왔던 교수님들의 모습에는 그런 경영 측의 입김이 뚜렷이 나타났던 기억이 없다. 학생이어서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센티브 체계가 자리 잡기 전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 당시 환자들이 긴 대기 시간에 불만을 표할 때 종종 교수님들이 “나도 놀지 않고 계속 일했다. 그래도 같은 월급 받고 일할 뿐이다.” 한숨 쉬며 환자에게 토로했던 기억이 있다. 일반화시킬 수야 없겠지만, 몇몇 대학병원들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병원들이 인센티브 체계를 도입한 현재에는 그때만큼 환자들에게 같은 피해자(빨리, 바삐 돌아가는 병원 공정 체계의 피해자)로서 동조를 얻지 못할 게다. “놀지 않고 일할수록, 수당이 붙습니다. 밀린 환자 보는 게 힘들어도 월급을 더 받으니 저도 할 말이 없네요.”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지 않나? 교수들을 “경영의 피해자”로 남겨두지 않고, 인센티브라는 당근을 통해 “경영 이득의 동참자”로 위치를 변경시킨 것은 과히 병원 경영의 혁신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이 인센티브를 십분 활용하여 월급에 수백을 더하는 단물에 젖은 교수들로부터, 인센티브에 무관하게, 혹은 반발하여 곧이곧대로 소신껏 진료하는 교수들까지, 경영의 압박에 대응하는 피고용인으로서의 태도들도 천차만별일 것이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의학을 포함한 현대과학은 전문 지식으로 사회의 정책 결정에 비전문가들이 어찌 반문하기 힘들 정도의 큰 입김을 낸다. 국가의 자격증 발급으로 그 입문의 제한을 확고하게 제도화시킨 의학이야말로 더더욱 그렇다. 한편, 다 알다시피, 의학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자본주의 체계의 발달과 함께 이루어졌다. 아울러 전문 지식을 지닌 의사와 과학자들은 사회 엘리트로서 상층 계급으로 자리 잡으며 태생적으로 상위층을 대변하게 되었다. 고인이 된 한 바보는 이제 권력이 국가에서 시장으로 옮겨졌다고 말했다. 그와 같이 천하무적 시장의 지배력이 전문 과학과 학문 영역까지 흡수하여 막강한 힘을 자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지배당했다기보다 애초부터 시장의 동참자였다고 정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의학(혹은 과학)의 태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행하는 이들의 스펙트럼은 천차만별이지만 말이다. 솔크 박사처럼 전무후무한 폴리오 백신을 만든 후 특허나 일말의 사적 이득을 주장하지 않은 의학자들부터, 국가 프로젝트로 얻은 연구 성과도 공공재로 남겨두지 않고 개인의 이득으로 취득하려는 의학자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있다. 솔크 박사의 행동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현 실태가 아쉽기만 하다. 스폰서를 받고 연구를 하고, 연구의 이득은 공공이 아닌 다시 시장의 권력으로 돌아간다. 큰 틀에서 태생부터 같이 한 시장의 힘에 좌우지 되는 의과학이라는 측면에서, 어찌 보면, 인센티브 제도를 통한 전문지식인의 포섭은 그저 큰 흐름의 작은 실행 방식일 뿐, 어마어마한 억압기제라고 보기도 힘들 것이다. 게다가 눈에 보이게 달콤한 동인으로 작용해 주고 있으니, 시장 권력의 애교로 보이기까지 한다. 10년 전과 다른 기제로 흘러가고 있는 병원 경영 방식은 향후 10년 또 어떤 모습으로 둔갑할지 우려가 된다. 더 크게는 태생적으로 시장에 종속되어 있는 과학의 한계가 막장까지 갔을 때 이 사회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게 될 것인가? 항상 그랬듯, 그 어떤 외압에도 소신껏 진실한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의 실천을 기대할 뿐이다. 인센티브와 경영의 속박, 그리고 시장의 권력 속에서 분명 사면초가인 교수들이다. 그렇지만, 분명 이들 중 솔크 박사의 뒤를 이을 또 다른 바보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

송윤희는? 2001년 독립영화워크숍 34기 수료2004년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학사2008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석사2009년 산업의학과 전문의2011년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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