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가우디다 / 김희곤 지음 / 오브제 펴냄, 2014년

[라포르시안]  벼르던 스페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베리아 반도는 오랜 세월을 두고 아랍문명과 유럽문명이 첨예하게 충돌하던 곳입니다. 두 문명이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남겨진 유적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여행을 떠나면서 이미 읽은 책 두 권을 더해서 모두 여덟 권의 책을 가방에 넣었습니다. 스페인에 관한 책은 최경화님의 <스페인 미술관 산책>과 김희곤 교수의 <스페인은 건축이다>와 <스페인은 가우디다>입니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는 역사, 건축은 물론 미술과 음악 그리고 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박식한 조형진 가이드를 만나는 행운을 얻어서 스페인, 모로코 그리고 포르투갈을 같이 여행하면서 앎의 지평을 광범위하게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여행은 준비하는 만큼 더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준비한 책입니다. 김희곤교수님의 <스페인은 가우디다>는 받아두고서도 여행을 준비하느라 읽을 시간을 내기 어려웠던 점도 있었고, 여행길에 읽는다면 더 실감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읽기를 미루어둔 것도 있습니다.

저자는 전작 <스페인은 건축이다>에 이어 <스페인은 가우디다>를 통하여 현대 스페인 건축에 우뚝 서 있는 가우디를 따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첫날 한 나절도 안되는 시간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돌아본 람블라스거리에 서 있는 가로등 그리고 성가족성당과 구엘공원이 가우디예술의 결과물이라고 한다면 이튿날 방문한 몬세라트수도원은 가우디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 곳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스페인은 가우디다>에서 가우디의 삶의 족적을 뒤쫓고 있습니다. 19세기 스페인 건축에 새로운 지평을 연 가우디가 21세기에도 여전히 기억되는 것은 그의 건축철학이 요즈음의 사조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우디 이전의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건축을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양식의 틀로 재단했다. 하지만 가우디는 홀로 보이는 대로, 보고 싶은 대로 자연과 유적과 전통을 사유하면서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건물을 지었다.(5쪽)”

가우디는 1852년 6월 25일 바르셀로나 서쪽 작은 도시 레우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대장간을 하던 친가와 외증조부가 목수일을 하던 외가 모두 수공업과 관련 있는 기술자 집안이었던 것은 그가 천부적인 공간감각을 이어받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가우디가 태어난 레우스 그리고 가까이 있는 타라고나는 로마시대에 100만의 인구가 살던 전진기지였다고 합니다. 이후에 이 지역을 잠시 점령한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가우디는 이곳에서 구축물 자체의 구조체를 강조하는 로마건축물과 빛과 조각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기하학의 비례와 장식효과를 강조하는 이슬람 건축물에 주목하고, 이로부터 가장 스페인적이고, 가장 카탈루냐적이며 가장 가우디적인 건축기술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행 두 번째 날 몬세라트를 찾으면서 저자의 다음 말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가우디 건축의 뿌리는 자연주의, 민족주의, 기독교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자연주의 사상은 로마, 이슬람, 중세로 이어지는 문화유산과 자연의 교감에서 얻은 것이다. 민족주의는 마드리드 중심의 지배체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카탈루냐 민족문화를 정착시켰으며, 그의 지역적인 기독교 사상은 몬세라트에 뿌리를 두고 있다.(25쪽)” 로마네스크 양식의 검은 성모상을 기념하기 위하여 12세기에 세워진 몬세라트수도원이 있는 몬세라트산은 영적인 기운이 서려있는 영산으로 카탈루냐 민중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도원 뒤로 우뚝 서있는 몬세라트산은 언뜻 보면 주상절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화강암인 주상절리가 각진 모습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퇴적암으로 되어 있는 이곳은 흙의 질에 따라 차별적으로 풍화되어 완만하면서도 기묘한 형상이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곰 한마리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는 듯하면서도  달리 보면, 역시 곰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누워서 하늘을 품으려 드는 모습이 읽히기도 합니다. 그런가하면 미국 콜로라도의 브라이스 캐년에 서있는 부두(boodoo)와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한발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은 몬세라트산과 가우디의 건축과의 관계까지도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가우디 건축은 몬세라트의 작은 환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늘로 솟아오르는 몬세라트의 육감적인 암석기둥은 성가족대성당의 첨탑으로 부활했고, 천사들의 얼굴을 두르고 있는 몬세라트의 암벽은 카사밀라의 외벽과 지붕으로 변주되었다. 구엘 성지의 지하제실의 원시적인 화강석 기둥은 거친 몬세라트의 암석에 기반을 두고 있다.(25쪽)” 저자의 이러한 설명은 “하늘 아래 독창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새로운 발견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가우디의 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르셀로나 엘 프라트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람블라스 거리(Las Ramblas)입니다. 김희곤교수는 “람블라스 거리를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바르셀로나의 낭만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며, 세상 끝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다.(78쪽)”라고 단언하였지만, 이곳에서 저자의 말대로 ‘도시의 모퉁이에서 정신적 위기를 내장처럼 드러내고 살아가는 도시의 영혼들이 다른 영혼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고뇌를 청소’하기에는 겨우 20여분 주어진 자유시간이 너무 짧았습니다. 게다가 람블라스 거리는 관광객의 소지품을 노리는 불청객으로 넘쳐나고 있다는 주영은 가이드의 경고 때문에 마주 오는 유럽 관광객들의 여유마저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얼떨결에 버스를 내리면서 미처 지도를 챙기지 못한 까닭에 람블라스 거리 끝에 있는 레이알 광장까지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곳에 서있다는 가우디의 초기작품인 가로등의 원형을 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 아직도 건축공사가 진행 중인 성가족 대성당 모습.

지금도 건축이 진행되고 있으며 완공일이 정해지지 않은 성가족 대성당을 짓는 일이 약관 31세의 가우디에게 넘겨진 것은 1891년 3월이라고 합니다. 이날 자신의 구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성 요셉 영성회 소속 회원들 앞에선 가우디의 손에는 달랑 한 장의 스케치가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 스케치에는 고작해야 버섯모양의 탑들이 하늘을 향하여 삐죽삐죽 솟아 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투박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스케치에는 기하학적 질서가 한눈에 드러나 있었고, 다음과 같이 확신에 찬 가우디의 설명은 요셉영성회 회원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십자형으로 다섯 개의 복도와 바실리카 양식의 큰 회랑 세 개를 만들 것입니다. 마요르카 거리에 면한 남쪽 정면에는 세 개의 정문을 통과하여 다섯 개의 회랑과 연결되는 다섯 개의 입구를 낼 것입니다. 그리고 동, 서측면의 입구에는 다섯 개의 회랑과 연결되는 세 개의 입구를 만들 것입니다. 북쪽 후원 주위에는 입구를 설치하지 않고 제단을 둘러싼 외벽은 지하제실의 외벽과 이어질 것입니다.(94쪽)” 현대 건축물이 방대한 양의 설계도를 기반으로 지어지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성가족 대성당처럼 엄청난 규모의 건축물을 변변한 설계도 없이 짓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다고 믿었을까 싶습니다.

성가족 대성당의 건축이 고난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전적으로 성금에 의존하였기 때문인데, 최근 들어서는 이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내는 입장료 수입만으로도 건축비를 충당할 수 있어 오히려 입장객을 제한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와 아내 역시 각각 25,000원 정도의 입장료를 냈으니 성가족대성당의 건립에 일조를 한 셈입니다. 자유여행객은 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하여 기다리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단체여행을 고려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김희곤교수님은 <스페인은 가우디다>의 앞부분에서 가우디가 성가족 대성당의 건축을 맡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끝부분에서 다시 성가족성당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우디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제목은 성가족 대성당의 건축이 여전히 진행 중인 점을 감안한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는 탄생의 파사드를 통해 성가족 대성당에 입장하여 성당 내부를 돌아보고, 수난의 파사드로 빠져나오게 되었습니다. 입구에서 전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애시당초 잘 못된 것이었습니다. 옥수수를 닮은 네 개의 첨탑이 우뚝 솟은 탄생의 파사드는 앞에 있는 공간을 최대한 물러서도 전체의 모습을 담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가우디 생전에 완성한 탄생의 파사드는 그의 예술세계만큼 복잡하게 표현되어 있어 길지 않은 시간에 모두 감상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주영은 가이드가 요약하는 설명으로 핵심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성가족 대성당의 건립이 세기를 건너오고 있음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는데, 오래 전에 올라간 부분의 화강석이 검게 변색된 것과는 달리 최근에 세워진 부분은 우윳빛 화강석으로 빛나고 있는 점을 비교해보는 것이 시간의 깊이를 감상하는 주요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김희곤교수님은 조언하기도 합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밖에서 보는 규모와는 달리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웅장한 내부 공간의 전체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김희곤교수님은 대성당의 내부를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거대한 빛의 숲은 상상 속의 에덴동산을 돌로 빚은 것이다.(279쪽)” 동,서,남 각 정문에 세워진 12사도를 상징하는 4개의 탑은 내부의 예배공간을 보호하고 있고, 십자가 회랑의 교차점에는 예수를 상징하는 중앙 첨탑이 4개의 첨탑의 호위를 받으면 교회의 중심을 상징하고 있다고 합니다. 성가족대성당을 구성하는 ‘영광의 파사드는 현실이자 부활을 상징하고, 탄생의 파사드는 과거를, 수난의 파사드는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광의 파사드에서 수난의 파사드로 이어지는 벽은 수많은 창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하여 들어오는 빛으로 대성당의 내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제단 앞에 걸린 화려한 천개 아래로 예수상이 매달려 있는데, 천개의 위에는 밀이 자라고 아래로는 포도넝쿨이 걸려 있습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빵과 포도주의 상징입니다. 서쪽 수난의 파사드로 대성당을 나서면 동쪽 탄생의 파사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와 성모, 천사, 12사제를 싣고 하늘로 떠나는 거대한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수난의 파사드 벽면의 조각은 가우디 사후에 조각가 수비라치가 조성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을 현대적 조각으로 빚어냈다는 것입니다.

성가족 대성당의 주출입구가 될 영광의 파사드는 베일에 가려 있었습니다. 출입문에는 다양한 언어가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한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가족 대성당은 가우디 사후 100주년이 되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가우디의 후예들이 열심히 공사를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가족 대성당을 보고서 구엘공원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카사바티에와 카사 밀라를 일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구엘공원은 1898년 미․서전쟁에서 패한 스페인이 좌절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 무렵에 착공한 건축물입니다. 당시 스페인 지성인들은 흩어 진 스페인 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문화와 역사를 다시 고찰하여 상처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하여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분위기는 [북소리]에서도 이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소개하면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자연을 찾아내어 창조주와 협력하는 것뿐이다(173쪽)’라고 주장하던 가우디의 앞서가는 친환경건축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집단거주단지를 조성할 때 높은 곳은 깍아 내고 낮은 곳은 돋우는 건축방식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지가 가지고 있는 약점을 그대로 살려낸 가우디의 구엘공원을 김희곤교수님은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뜻밖의 풍경을 품고 있는 구엘공원은 끊임없이 인간의 위치와 방향과 높이를 조정하며 시간 위로 흐르는 빛의 파편으로 자연을 조각하고 있다.(178쪽)” 구엘공원의 초입에 있는 카탈루냐 문장 속의 뱀머리나 도마뱀 모양의 퓨톤의 입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다음 여행지가 되는 알람브라 궁전에서 보는 환상적인 수리시스템을 연상케 합니다. 가우디는 생전에 바르셀로나에 9개, 그 밖의 지역에 3개 등 모두 12개의 건축물을 남겼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 건축물들 가운데 완성작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가우디가 활동할 무렵 스페인에는 정형화된 산업생산에 반발하는 ‘모데르니스모’라는 문화적 움직임이 나타났는데, 가우디의 작품들을 포함하는 모데르니스모 건축물들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고, 모데르니스모 루트라는 하루 일정의 관광코스도 있다고 합니다. 반나절 동안 가우디의 작품을 중심으로 돌아본 바르셀로나 이야기가 지나치게 늘어진 것 같습니다. 조만간 스페인 여행기를 통해서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