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의 미술과 1&2 / 랄프 이자우 지음 / 안상임 옮김 / 비룡소 펴냄, 2011년

[라포르시안]  판타지소설을 읽는 재미에 빠져있다 보니 계절이 바뀌고 있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올 여름에는 독일 환상문학을 이끄는 랄프 이자우의 작품을 몇 편 읽었습니다. [북소리]에서도 지난달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으로 한번 만나 본 적 있는 작가입니다. 그때 소개를 드렸습니다만, 미하엘 엔데가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랄프 이자우는 1992년 자신의 딸을 위하여 썼다는 <용 게르트루트 Der Drache Gertrud>로 데뷔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판타곤’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환상, 상상을 의미하는 판타지(Phantasie)와 다각형을 뜻하는 수학적 어미, -타곤(-tagon)을 조합한 단어입니다. 판타곤은 환상을 근간으로 하여 여러 문학 형태와 장르가 복합적으로 녹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거짓의 미술관>은 유명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예술작품의 도난사건과 살인을 다루는 스릴러소설로 그리스신화를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판타지적 요소는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다만 예술작품이 이야기의 주제를 풀어가는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독특하면서도 아주 매력적인 조합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대치상황을 곁들인 점도 이야기의 전개를 촘촘하면서도 매끄럽게 하는 맛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에서는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독일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처럼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읽을거리에 머물지 않습니다. <거짓의 미술관> 역시 인간복제라는 의학적 기술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장르소설의 리뷰가 어려운 점은 이야기 줄거리를 어느 정도까지 소개할 것인가 하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출판사에서 요약하여 소개하는 수준까지는 무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판사의 책소개에 나오는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이야기는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각상 <잠든 헤르마프로디테>가 침입자에 의하여 폭발, 파괴되면서 시작됩니다. 이어서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던 르네 마그리트의 「경솔한 수면자(The Reckless Sleeper)」가 도난당하고, 그다음엔 오스트리아 빈의 예술사 박물관의 루카스 크라나흐의 「에덴 낙원」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예술품이 사라진 현장에는 어김없이 르네 마그리트의「경솔한 수면자」에 그려진 물건들이 하나씩 놓여 있습니다. 거울, 붉은색 담요, 황금 사과 ……. 미술관들이 도난당한 작품들은 보험을 계약한 곳이 모두  ‘아트케어’ 라는 보험회사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스터리한 예술품 파괴, 도난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줄 주인공 알렉스 다니엘스는 꽤나 요란스럽게 등장합니다. 스물다섯 살된 과학기자 알렉스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유서깊은 칼리지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지적 설계 진흥상(Intelligent Design Encouragement Award)’, 약어로는 이데아 상을 받게 됩니다. 이 상은 ‘비평적 과학자 협회’의 열한 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수상자를 결정하게 되는데, 수상자는 지적 설계 사상을 선입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한 출간물의 저자들 중에서 선정합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생명체가 고등한 것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한다는 다윈의 사상이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 추종자들과는 반대로, ‘지적 설계론’ 옹호자들은 모든 생명의 복잡성 뒤에 존재하는 창조적 지성에 대한 증거를 찾고 있다.(거짓의 미술관 1권, 38쪽)”라고 합니다. 창조과학에서 지적설계론에 이르기까지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우리의 주인공 알렉스가 종교적 배경에서 지적설계론에 공감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수상직후에 루브르 미술관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됩니다.

또 다른 주인공은 아트케어의 보험수사관 다윈 매트 쇼우입니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하여 오스트리아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다윈은 인간복제에 관한 기사에 주목합니다. 기사내용은 이렇습니다. 2000년 12월 영국하원은 인공수정법을 개혁하여 ‘치료용 복제’를 합법화했다고 합니다. 황우석교수 사건으로 우리들에게도 친숙해진 바 있는 체세포를 이용하여 배아줄기세포를 얻는 방법입니다. 즉, 시험관에서 인간의 난자에서 세포핵을 제거하고 다른 사람의 일반 체세포의 핵을 이식한 다음 전기자극을 가하면 마치 수정난처럼 세포분열을 시작하여 세포덩어리를 만들게 되고, 여기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얻은 배아줄기세포를 목적에 맞는 특수세포로 발전하도록 하여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 줄기세포요법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배아청이 2004년 8월 뉴캐슬대학교 생명센터 연구팀에게 인간 배아의 복제를 허가했고, 다윈은 현대 단계에는 치료용복제가 일상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유전자 특허를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과 영국이 인간유전학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기 위하여 인간복제기술을 통하여 세포덩어리 단계를 넘어 완벽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을 허락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적설계론 옹호자인 알렉스와 진화론 신봉자는 아닌 다윈의 관계는 일종의 저자의 현학적 장치에 불과한 듯하지만, 사실 알렉스가 내세운 지적설계론이라는 장치는 이 사건의 바탕이 되고 있는 인간복제에 대한 저자의 경고가 구체적임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뜨거운 감자, 인간복제는 사건의 기둥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알렉스가 주장하는 현생인류를 이을 신인류가 다윈의 진화론이 아닌 과학자에 의하여 설계된 유전자조작으로 탄생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신인류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가정은 과학자들의 오만함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인간복제를 단순히 치료용으로 발전시킨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 <아일랜드>나 불완전한 기술로 인간의 유전자와 동물의 유전자를 섞어 만들어낸 키메라가 등장하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는 생각하기도 끔찍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짓의 미술관>에는 인간복제라는 기술로 탄생한 인간들의 모습을 새긴 조각작품을 모아둔 곳이기도 한데, 결국은 이들의 탄생을 주도한 인물과 함께 사라지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제노사이드>에서 신인류의 등장을 막으려는 미국정부의 음모는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열대 우림에 신종 생물 출현. 이 생물이 번식하게 될 경우, 미국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 멸망이라는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제노사이드, 11쪽)”는 내용을 담은 정보보고를 토대로 현생인류의 멸망을 우려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고인류인 네안데르탈인과 공존하였던 코로마뇽인의 삶을 추적한 <크로마뇽>을 읽으면 이해의 폭을 넓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의 미술관>에서 인간복제를 통하여 탄생하게 되는 신인류의 모델은 그리스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헤르마프로디테입니다.

▲ 루브르 박물관의 「잠자고 있는 헤마프로디테 (Sleeping Hermaphrodite)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헤르마프로디테는 남성과 여성의 외부적 특징은 물론 유전적 특징고 완벽하게 공유하고 있는 간성을 의미합니다. 헤르마프로디테가 현생인류를 이을 신인류가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미들섹스>에 등장하는 조라가 “우리가 다음번에 오게 될 바로 그 사람들이기 때문이야(거짓의 미술관 1권, 159쪽)”라는 말에서 얻은 것 같습니다.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 있는 세상이 갈등을 빚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생각한 어떤 과학자가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세상에서는 갈등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유전자조작과 인간복제를 통하여 똑 같은 모습을 한 인간을 대량으로 만들어낸 결과가 <거짓의 미술관>의 이야기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 과학자가 바로 예술작품 도난사건의 핵심이 되는 ‘경솔한 수면자’가 되는 것이고, 그 경솔한 수면자에게 책임을 묻기로 결심한 ‘두뇌’가 사건을 통하여 드러나는 복제인간들을 제거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경솔한 수면자와 대면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팬타곤이라고 부르는 저자의 작품의 특징을 <거짓의 미술관>에서 찾아보면 헤르마프로디테에 관한 뿌리를 찾아가는 신화학, 알렉스와 다윈의 첫만남을 장식하는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이론적 대립을 설명하는 진화생물학, 인간복제를 통하여 헤르마프로디테를 창조해낸 생물학, 이들을 창조해낸 ‘경솔한 수면자’를 시작으로 일곱 개의 예술작품의 의미를 연결하는 미학, 또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나타나는 픽토그램을 꿈의 상징으로 확대하는 프로이트 심리학 등이 있습니다.

<거짓의 미술관>에 등장하는 예술작품들을 따로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작품은 파리 루브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잠자고 있는 헤마프로디테 (Sleeping Hermaphrodite)」입니다. 기원전 160년 에트루리아 조각품인데, 이탈리아 바로크시대 조각가인 베르니니(Bernini, 1598~1680)가 대리석으로 만든 매트 위에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사라지는 작품은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르네 마그리트의 「경솔한 수면자」입니다. 랄프 이자우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의 상징물, 즉 수면자가 덮고 있는 거울, 붉은 이불, 황금사과, 비둘기, 양초, 리본, 모자가 범행의 대상이 될 작품을 예고하는 메시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일곱 상징물인가에 대하여 알렉스는 창세기를 인용하여 설명합니다. 여섯 날 동안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일곱째날 쉬었습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경솔한 수면자」가 이야기의 중심에 오는 이유입니다.

세 번째 사라지는 작품은 빈 예술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루카스 크라나흐의 「에덴 낙원」입니다.

네 번째 작품은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있는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파리스의 심판」입니다. 불화(不和)의 여신 에리스(Eris)가 던져놓고 간 황금 사과(불화의 사과:The Apple of Discord) 에 적혀있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To the Fairest)'라는 문구대로 황금사과의 주인을 찾는 장면을 담은 그림입니다. 파리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해준다는 아프로디테의 제안에 넘어가서 황금사과를 아테네에게 건네게 되고, 결국은 트로이전쟁의 빌미가 되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작품은 뮌헨의 알테 피나코테그가 소장하고 있는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디 코지모의 「프로메테우스 신화」입니다. 이 작품은 프로메테우스가 흙으로 만든 인간에게 불을 통해 생명을 주기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뇌’는 신의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의 행위가 기술 남용과 인류의 타락한 문화의 상징으로 이해하려 했을 것(거짓의 미술관 1권 420쪽)으로 알렉스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작품은 네덜란드 오테를로에 있는 호헤 벨루베 국립공원 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헨드릭 반 클레버의 「바벨탑 건설」입니다. 신의 명령을 따르며 땅에 흩어져 살지 않고, 사람들을 한 장소에 묶어 두려는 목적으로 건설하던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탑을 짓던 이들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하는 벌을 내리는 것으로 결국은 세상이 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되었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오만함의 상징인 인간복제를 부정하는 메시지인 셈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작품은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 「다비드」입니다. 마지막 미션으로 「다비드」를 선택한 이유를 알렉스는 이렇게 추정합니다. 오늘날 발전한 과학과 기술덕분에 우리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완벽함은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지만, 우리가 만든 것들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만큼이나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그 약점을 인정해야 우리는 이 행성 위에서 계속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뇌’의 마지막 미션은 「다비드」를 폭파하는 것으로 예상한 알렉스와 다윈 그리고 아트케어와 이탈리아 정부는 과연 「다비드」를 지켜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다윈이 발견한 「경솔한 수면자」에서 아직까지 의미를 두지 않았던 어두운 하늘, 똑바로 서있는 비석, 그리고 나무상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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