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준(한국원자력의학원 임상연구부장)

책이란 본래 다른 물건들처럼 여기저기 광고해서 파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신문에 실리는 것이라곤 오로지 일부 전문가들의 현학적인 서평뿐이었고,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기 위해선 도서관이나 서점을 직접 방문하여 다리품깨나 팔아야 했던 것이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엄청난 광고비를 들여 신문에 전면광고를 대대적으로 내고, 지하철에 온통 도배를 하는 것이 마치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기 위한 당연한 공식처럼 되어버렸다.

 

병원들이 이걸 따라가고 있다. 본디 의술이라는 것이 큰소리로 광고해서 손님들 불러 모으는 장사치의 영역이 아니었는데,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 하면서 병원 역시 까닥 잘못하면 망하는 지경까지 이르고 보니 ‘인술’ 운운하던 의료인의 지조와 체면은 다 내던지고 너도나도 선전에 몰두한다. 정부가 의료법과 같은 법적, 제도적 규제를 동원하여 꼴사나운 최악의 이전투구만은 가까스로 막고 있는 현실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상업광고에 제한이 있기에 병원들이 선호하는 홍보방식으로 TV 드라마 등에 시설을 제공하는 간접광고도 있지만 소속된 의사들이 건강정보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면 효과가 곱절로 커지는 터라 각 병원 홍보실은 자기 기관 의료진을 어찌하면 한 번이라도 더 언론에 노출시킬 수 있을까 전전긍긍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 바로 최근 유행하는, 의사들의 연구업적, 즉 학회 발표논문 등을 뉴스 형태로 살짝 소프트하게 가공하여 미디어에 내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 심상치 않은 거품이 끼기 시작한다.

 

한번 ‘세계적 연구업적’이라는 문구를 인터넷 뉴스검색창에 넣어보라. 일주일이 머다 하고 무수히 떠오르는 자료들 중 상당수가 의료계 관련 기사이다. 암이나 뇌질환 같은 각종 난치병들을 한방에 해결할 마법의 탄환들이 자랑스런 한국인 연구자들에 의해 세계 최초로 개발되었다는 소식이 줄을 잇는다. 기사만 보면 내일 당장에라도 우리나라에서 획기적 만병통치 신약이 탄생할 기세다. 하지만 모름지기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은 새로운 기술이 진료현장에 적용되기까지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들이 있다. 흔히 ‘연구실 벤치에서 환자 병상까지(from bench to bed)’로 표현되는 의학연구의 스펙트럼은 기초, 원천 연구에서 중개연구를 거쳐 전임상, 임상시험들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광범위하다. 여차하면 십 수 년을 훌쩍 넘기기가 다반사인 그 지루하고 성가신 여정을 그래도 하나씩 차근차근 밟아가야 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연구자들이 왜 꼭 언론사 마이크 앞에만 서면 하나같이 시간을 초월한 성급한 낙관론자로 돌변하는지 모르겠다.

 

각고의 노력 끝에 결실을 거둔 의과학 연구자들의 가슴 뿌듯한 업적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세분화될 대로 세분화된 의학 분야 중 특정 영역에서 이룬 대단히 전문적인 일단계의 성취가, 병원홍보를 매개로 공생하는 갑과 을의 상부상조 메카니즘을 거치면서 자칫 절박한 환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수도 있는 뻥튀기 과대광고로 둔갑하는 사례들이 적잖이 있기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전공분야인 진단검사의학 영역을 살펴보아도 ‘피 한 방울로 모든 암 진단’, ‘새로운 치매유전자 발견으로 치료제 개발 눈앞에’, ‘유전자 분석을 통한 난치성 질환의 합병증 예측, 예방시대 열려’ 등등 판에 박힌 패턴의 헤드라인이 고장난 축음기마냥 주기적으로 뉴스에 등장한다. 물론 관련 연구결과가 무슨 세계적인 학술지에 실렸다는 식의 보증수표가 뒤따르긴 하지만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거기에 의도가 꼭 순수하지만은 않은 과대포장의 군살이 덕지덕지 붙어있다는 것을.

 

인간사에서 라뽀를 맺는 데 필수요건은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의 기본은 바로 솔직함 아니겠는가. 교양의 상징과도 같았던 책들이 언젠가부터 치열한 마케팅의 대상 품목으로 변신하면서 신문광고뿐 아니라 책 맨 뒤표지조차 참으로 낯간지러운 자화자찬의 짧은 홍보문구들로 빼곡히 들어차게 되었다. 거기에 솔깃하여 책을 고른 뒤 실제로는 그에 한참 못 미치는 내용에 마음 상했던 경험들이 누구나 있으리라. 마찬가지다. 의료진들은 의학논문을 쓸 때 견지하는 냉철함과 학문적 솔직함을, 그 논문이 언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도 결코 잃지 말아야 한다. 개인적으로 좀 튀어 보이고 싶고, 병원에 환자도 좀 늘게 하고 싶은 유혹이 아무리 강렬하더라도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중에게 자기 업적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면서 침소봉대, 견강부회의 속임수를 쓰거나 혹은 그걸 방관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의 배임에 해당되지 않겠는가.

 

나는 전부터 1995년 강변가요제 금상곡인 육각수의 <흥보가 기가 막혀>란 노래가 이따금 <홍보가 기가 막혀>로 들리곤 했었다. 가수가 ‘흥부’를 ‘흥보’라 발음하니 헷갈릴 수밖에. 그런데 요즘 오히려 헷갈리던 바로 그 단어로 인하여 흘러간 그 노래가 떠오를 때가 부쩍 많아진다.


홍영준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석, 박사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UCSD 암센터 초빙연구원

현 원자력병원 진단검사의학과장

현 한국원자력의학원 임상연구부장

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

현 대한진단검사의학회 R&D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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