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안 브리핑]

[라포르시안]  성기(genitalia)는 생물학의 핫토픽이다. 지난 10년 동안 성기의 다양성과 신속한 진화과정은 생물학자들의 큰 관심사였다. 그 중에서 유명한 것으로는 타조, 닭, 나새류(sea slugs)의 페니스에 관한 것이 있고, 다양한 곤충들의 성기에 관한 내용들이 과학문헌의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런데 여성의 성기는 어떻게 된 걸까?

지난주 '미국공공과학도서관 생물학지(PLoS Biology)에 실린 논문은 `생물학에서 암수의 성기가 연구된 사례들`을 모아 정량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관심을 모았다. 저자는 성기의 진화에 관한 25년간의 연구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모든 생물학자들이 수컷의 성기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편향을 보였으며, 이 불균형은 시간이 흐를수록 - 개선되기는커녕 - 악화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편향은 `암컷의 성기는 진화사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뿌리 깊은 편견 때문이며, 이 같은 편견 때문에 생물학자들의 통찰력이 저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한다.

독일 훔볼트 대학교에서 성(性)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말린 아-킹 교수(진화생물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1989~2013년에 출간된 364편의 논문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364편의 논문들은 성기의 진화과정을 기술한 것이었는데, 연구진은 이 논문들을 성별 주제별로 분류해 보았다.

그 결과, 49%의 논문들이 수컷의 성기만을 다뤘고 44%는 암컷과 수컷의 성기를 동시에 다뤘다. 암컷의 성기만을 다룬 것은 겨우 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 검은색 선은 수컷의 생식기만을, 파란색 선은 암수 생식기를, 그리고 초록색 선은 암컷의 생식기만을 연구한 논문 수. 출처 : 말린 아-킹 교수 연구진이 'PLoS Biology'에 발표한 논문

더욱 기막힌 것은 남성 생물학자는 물론 여성 생물학자들 가운데서도 이상과 같은 불균형 현상이 동일한 비율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러한 연구경향은 단순한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2000년 이후 시간이 경과할수록 더욱 더 악화되어 온 것으로 밝혀졌다. 2004년에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한 논문이 한 번 발표된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말린 아-킹 교수 연구진은 `생물학적으로 유의한암컷 성기의 변이`를 다룬 연구를 여러 편 인용하며 `과학적으로 볼 때, 암컷의 성기는 수컷의 성기보다 덜 흥미롭다`는 개념을 반박했다. 참고로 연구진이 인용한 연구 중에는 소금쟁이의 일종인 Gerris gracilicornis와 바다꿩(Clangula hyemalis)에 관한 것이 있다. G. gracilicornis의 버자이너 입구 앞에는 방패(genital shield)가 하나 버티고 있는데, 이것은 수컷의 강압적 짝짓기(forced mating)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바다꿩(long-tailed duck)의 경우 강제적 짝짓기 정도에 비례해 수컷의 페니스가 길고 반시계방향으로 꼬여 있는 반면, 암컷의 버자이너는 시계방향으로 정교하게 꼬여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많은 연구들이 `암컷의 성기에는 광범위한 종내/종간 변이가 존재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컷의 성기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룬드 대학교의 요한 홀란드 교수(진화생물학)에 의하면 최소한 그가 연구하는 생물(나새류)의 경우 수컷의 성기가 외부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암컷의 성기보다 연구하기가 쉬운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더욱이 나새류의 페니스는 종(種)마다 특이하게 달라, 종을 분류하는 데 유용하다.

연구진도 홀란드 교수의 말을 일부 수긍한다. 예컨대 암컷의 성기가 외부에 노출되어 있는 거미의 경우, 연구결과가 많이 발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진 홀란드 교수의 의견에 100% 공감하지는 않는다. 최근 발달된 새 기술(예 고해상도 엑스선 분석법)을 이용하면 몸 속 깊숙이 숨어 있는 부드러운 기관이라도 연구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생물학 연구에 있어서 성적 편중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은 "진화론적 사고의 바탕에 깔려 있는, 성(性)의 역할에 대한 오랜 편견"이라고 한다. 즉, 진화생물학자들은 이제껏 `암컷의 역할은 수동적이며, 수컷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편견의 기원은 찰스 다윈의 '성선택 이론'(theory of sexual selection)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연구진에 따르면 성선택 이론은 암컷을 기본적으로 내숭쟁이(coy)로 가정하고 있다. 오늘날 다윈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암컷이 수컷을 선택할 만한 정신적 능력을 보유했는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연구진은 "물론 오늘날 암컷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편견은 많이 사라졌지만, 진화론자들은 여전히 수컷의 역할을 더 강조함으로써 암컷의 역할을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한 "생물학자들이 암컷의 성기를 바라보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 주된 요인은 `암수 관계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쪽은 수컷이며, 암컷의 행동에는 변동성이 부족하다`는 고정관념이다. 암컷의 성기에 대한 편견의 정도는 진화론 학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는 특정한 진화론적 시각이 생물학자들로 하여금 수컷의 성기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도록 이끌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생물학자들은 19세기식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하나의 성에 집중함으로써 복잡한 등식의 한쪽 측면만을 바라봤다. 그리하여 그들은 복잡한 공진화의 역학(co-evolutionary dynamics)을 오해하는 치명적 우(愚)를 범했다"고 말했다.

집게벌레(Euborellia plebeja) 수컷이 보유한 길다란 털모양의 페니스에 집착할 경우, 그것이 경쟁자의 정자를 제거하기에 효과적인 모양과 구조를 지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집게벌레의 암컷을 연구한 바에 따르면 "암컷의 정자 보관소는 (생각보다) 훨씬 더 길므로 암컷도 `여러 수컷들의 정자 중에서 어느 것이 선택될 것인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수컷의 페니스가 퍼내기(scooping), 낚아채기(hooking), 찌르기(plunging)에 적합한 구조를 지녔다고 해서 "짝짓기의 전과정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쪽은 수컷이며, 암컷의 성기는 그저 고정불변의 정자 그릇(invariant container)에 불과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큰 오산이라는 것이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과학에 있어서 性에 관한 이슈를 제기하는 비영리단체 '포르시아'(Portia)의 엘리자베스 폴리처 회장은 "생물학에서 사용되는 남성지향적 용어들(예: `암컷 찌르기`, `경쟁자의 정자`, `강압적 교미`, `강압적 짝짓기`)에는 성기의 기능과 성 역학(sexual dynamics)에 관한 오해가 내포되어 있다. 이는 비단 과학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남녀 간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태도와 고정관념을 강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암컷의 성기에 관한 편향을 깨려고 노력하는 연구기관 중 하나는 위스콘신-매디슨 대학교다. 이 대학은 지난 4월, 캐롤린 밴시클(인류학)을 첫 번째 페미니스트 생물학 포스닥(Wittig Postdoc in Feminist Biology)으로 지명, 생물학에 있어서 성에 관한 편향을 밝혀내고 반전시키는 연구를 맡겼다.

출처 : http://blogs.nature.com/news/2014/05/biased-biology-the-case-of-the-missing-vagina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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