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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가난한 이들의 죽음시민건강증진연구소 < 서리풀 논평 - 가난 때문에 죽지 않게>

[라포르시안]  이 글을 쓰는 시각까지 의사파업은 취소되지 않았다. 아는지 모르는지 ‘단호한’ 정부 당국은 의사들의 약을 올리는 데에만 몰두해 있다. 무엇을 ‘성공’으로 보든 파업이 성공하긴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정부도 ‘단호한’ 결과를 보기는 어려울 같다.

의사파업은 이번 주도 주제로 삼을 만한 문제지만, 이쯤 해 두자.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만큼, 아니 더 중요한 문제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서다. 가난한 이들의 연달은 죽음, 다른 말로는 ‘사회적 타살’을 기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수많은 메이저 언론에 비슷한 소리를 보탤 생각은 아니다. 다만 가난한 이들이 죽음으로 호소한 절박함을 그들이 독점하게 할 수 없다. 겹치고 되풀이하는 것이라 해도, 근본에서 다시 되새겨야 한다.

우선 급한 것이 많다.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더 이상 불행한 일이 없게 만들어야 한다. 말은 어떻게 가져다 붙여도 상관하지 않을 참이다. 특별조사든 긴급구호든 또는 서울형 부산형 제도든, 어떤 미봉책이라도(‘봉’할 수만 있다면) 시행이 급하다.

지방선거 출마용이라도 괜찮다. 책임을 소홀하게 했다는 어떤 부끄러움도 없이, 꼭꼭 숨어 있던 취약계층을 ‘발굴’한다는 황당한 궤변도 당장은 시비를 걸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면 참을 만하다.

시늉만 하다 슬그머니 그칠까 걱정이다. 그러니, 모두가 입 모아 이야기하는 것처럼, 제도를 고쳐야 한다. 부양의무자, 근로능력, 최저생계비 등이 줄줄이 걸려 있는, 참 허술한 기초생활보장제도부터 고치라. 이 정도면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참에 장기적인 빈곤 대책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꼭 그것만 아니다. 일자리, 자활, 자영업, 산재보험, 의료급여… 가난에 떨어지고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과 연관된 정책은 많다.

결국 당장 해야 할 일, 급하게 제도를 고치는 것, 장기 대책이 모두 필요하다는 뜻이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거나 급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다. 심층의 구조와 현상을 나누는 것도 덜 급하다.

애당초 그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당장의 고통을 줄이는 것과 구조를 바꾸는 일은, 이 경우 같이 갈 수밖에 없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다투기 이전에, 때론 무슨 일을 당장 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원칙대로 하자면 이쯤에서 결론은 난 셈이다. 이제 그렇게 되도록 애쓰면 된다. 그런데 마음이 개운치 않다. 불안이 더 크다. 다른 게 아니라, 이게 얼마나 갈까 싶어서다. 비슷한 사건과 비판, 형식적 대책, 다시 무관심을 주기적으로 반복할 것 같은 예감.

모두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중요한 문제들이 한 때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하더라도 일주일을 지속하기도 어렵다. 믿기지 않으면, 한번 되돌아보자. 각자의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그런 것이 없다면 뉴스에서 가까운 과거 기사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정부의 행동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호들갑에 가깝게 발표하고 약속하지만, 장담하건대 그 정도에서 더 나가기 어렵다. 흔한 이유이자 중요한 핑계가 있다. 제도와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법과 예산에 손을 대야 하는데, 그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에서는 반감기가 더 짧을 터. 그나마 6월의 지방선거 때문에 조금은 나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도 한 때뿐, 막상 선거가 가까워지면 압도적인 이슈에 묻힐 것이 뻔하다. 믿기 어렵다는 것이 생활의 지혜다.

결국 되돌아왔다. 시급한 일은 빨리 되게 하고, 시간이 필요한 과제는 계속 앞으로 진전되게 하는 것. 느리고 조금씩이라도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억울한 죽음,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죽임’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고, 잘 될 것 같지 않다.

이런 조건 가운데에 무엇을 해야 할까. 정부와 정치를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꼭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말을 쓰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이 일은 ‘이해관계’가 걸린 사람들이 나설 수밖에 없다.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은 물론 가난한 이들이다. 다른 이들의 관심이 떨어져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 주의하고 요구할 사람들이다. 당사자보다 더 한 이들이 있겠는가. 

그러나 문제가 있다. 가난한 이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관심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이유는 따질 것 없이 결과가 그렇다. 그러니 추상적, 간접적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 애써온(또는 새롭게 관심을 갖는) 여러 단체와 운동이 새롭게 힘을 만들고 모으는 것이 필요한 때다. 정부와 정치, 그리고 먼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그렇게 끌어들이는 수밖에 없다(정책과 정치를 실제 움직이기 위해서도 그렇다).

한 가지 더. 가난을 다루는 제도와 정책을 바꾸어 나가는 것은 또한 문화와 규범, 가치에 도전하는 것과 같이 가야 한다. 문화와 규범, 가치는 당연히 구조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구조에 틈을 낼 수 있는 또 다른 ‘실재’다.

<서리풀 논평>은 거의 두 해 전에 가난에 대한 주류 인식을 비판한 적이 있다(‘가난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어야’ 바로 가기). 핵심에 해당하는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인도적이고 정의에 부합하는 안전망의 원리는 비록 열 사람이 낭비를 한다 한들 꼭 필요한 한 사람을 놓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연구결과를 보면, 낭비한다고 몰아세우는 것은 의도가 의심스러운 근거 없는 주장에 가깝다. 심지어 낭비를 인정하는 경우라도 의료급여 수급자가 모두 책임질 일은 아니다.”

이른바 ‘복지 부정’을 다룬 것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복지의 ‘자격’을 따지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의 주장을 폈다(‘복지부정’이라는 이념 공세 바로 가기 ).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충분히 가난해야 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야 하며, 정말로 일을 못할 정도로 장애가 있어야 한다. 자격은 꼼꼼하게 평가해야 하고, 거기에 쓰는 돈은 아깝지 않다. (중략) 그러나 이런 조사는 결과적으로 대상자를 분리하여 딱지를 붙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위축과 ‘자기 축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가난을 보는 왜곡된 시선을 경계했다. 그러나 이 정도 논평에도 많은 ‘악플’이 달렸다. 개인이 못나고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이 완고한 인식. 책임은 각자의 것이라는 영미식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압도적 영향.

가난은 구조적이라는 것이 새로운 인식의 출발이다. 1995년에서 2010년 사이 하위소득자 90퍼센트(참 기묘한 말이다. 하위 90퍼센트라니!)의 실질 평균소득은 1,158만원에서 1,022만원으로 오히려 줄었다(<혁신하라 한국경제> 202쪽. 박창기 지음. 창비 펴냄). 이래도 가난이 개인의 탓이라면.

다른 눈으로 빈곤을 보지 않으면 어떤 제도 개선도 반쪽에 그칠 것이다. 한 가지만 예를 든다. 가난과 복지의 ‘자격’을 따지는 한, 선별과 구분은 피할 수 없다. 오랜 요구대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도 또 다른 구분의 잣대가 필요하다. 이러면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신분을 속여야 하는 일은 없어지지 않는다.

당장 큰 변화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가난과 관련된 문화, 규범, 가치는 어떤 제도와 정책에도 미시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모호하고 추상적이어도 새로운 시각을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또한 복지와 복지국가를 바라보는 눈이기도 하다.

역시 가난에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이 애써야 할 일이다. 가난한 이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일에 사회적 연대와 운동이 짊어져야 할 짐이 몹시 무겁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달리 미룰 데가 없는 일일진대. 각 사람이 가진 작은 힘이라도 보탤 것을 같이 약속하자.

본지에서는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서리풀 논평'을 매주 게재합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건강과 보건의료에서 최선, 최고의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연구공동체'를 비전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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