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보험위원회 부위원장)

[라포르시안] 최근 미국 보험청(Centers for Medicare & Medicaid Services·CMS)은 혁신 의료기술 개발을 촉진하는 동시에 환자의 건강 결과를 개선할 혁신적 신의료기술을 신속하게 도입하는 보험급여 혁신 제도를 발표했다. ‘신기술의 과도기적 보험급여’(Transitional Coverage for Emerging Technologies·TCET)로 알려진 해당 제도는 보험급여 검토와 안전성·유효성의 지속적인 확보를 위한 임상 근거 개발 접근방식에서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평가다.

특히 TCET 제도는 보험급여 의사결정을 내릴 때 ▲신기술에 대한 조기 예측이 가능하고 안전한 환자 접근성을 도모하며 ▲기술의 잠재적 혜택과 유해성을 조기에 평가해 보험급여에 대한 의료기술 개발자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임상 근거 격차가 존재하는 경우 근거 개발을 장려하는 등 여러 고려사항의 균형을 맞추도록 설계됐다.

사실 TCET 제도는 2020년 8월 트럼프 행정부에서 제안했으나 바이든 정부 출범과 함께 철회된 획기적 의료기기(breakthrough devices)의 미국 FDA 허가와 동시에 보험급여 결정을 위한 ‘혁신 기술의 메디케어 보험급여’(Medicare Coverage of Innovative Technology· MCIT)를 수정 보완한 것이다. 

당초 MCIT 제도는 새로운 치료법 및 검사·의료기술을 환자에게 더 빨리 제공하기 위한 목적에서 마련됐다. 특히 혁신적 의료기술에 대해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만들어 환자의 신기술 접근성 지연 및 부족을 야기시키는 기존 규제장벽을 허물기 위한 조치였다.

새로운 TCET 제도는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혁신 기술에 대한 더 빠른 접근성과 미국 FDA 승인과 동시에 미국 건강보험(메디케어)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획기적인 혁신 기술의 신속한 시장 진입을 촉진한다. 

신기술의 경우 보험급여 승인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다. 의료기술 개발자는 본인의 기술이 환자에게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 해당 기술이 보험급여가 되지 않았고 환자에 널리 사용될 수 없기 때문에 의료기술의 임상적 효과를 입증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TCET 제도는 미국 FDA가 지정한 획기적 의료기기에 대해 의료기술 개발자가 자발적으로 과도기적 보험급여를 신청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따라서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혁신적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동시에 효율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투명한 보험급여 검토 프로세스를 제공해 신기술의 환자 접근성 확보 측면에서 혁신적인 제도라 할 수 있다. 

TCET 제도는 또한 개발자의 미국 보험청과 FDA 제품 판매 승인 전부터 의사소통 및 협업 기회를 확보하고, 보험급여에 대한 임상 근거 격차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롭고 전례 없는 수준의 제도적 유연성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중요한 임상 근거 격차를 식별하면서 신기술의 잠재적 유해성과 혜택에 대한 사항을 관련 기관 간 협력함으로써 보험급여 의사결정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이밖에 의료기술 개발자는 ‘목적에 부합하는’(fit-for-purpose)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환자 치료에 요구되는 임상 근거 격차를 해결할 수 있다. 목적에 부합하는 연구는 연구 설계, 분석 계획 및 연구 데이터가 연구가 답하고자 하는 질문에 적합한 연구를 의미한다. 

TCET 제도는 개발자와 규제기관의 참여만이 아닌 의료전문가·환자그룹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도 새로운 임상 근거를 개발하는 과정에 참여하도록 요구한다. 이를 통해 실사용 데이터(Real-World Data·RWD)를 생성·이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환자 중심 케어(patient-oriented care)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된다.

TCET 제도는 우리나라가 현재 실시하고 있는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 평가제도’와 유사성을 보인다.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 평가제도는 관련 기관 간 원활한 의사소통을 견인하고 혁신적 기술의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한 규제 기준과 추가적인 임상 근거 창출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과도기적 조건부 보험급여 혹은 비급여 의사결정 등을 통해 유망한 신기술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지 않도록 돕는다.

한 가지 큰 차이점은 TCET 제도가 보험급여를 전제로 운영되는 반면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 평가제도의 경우 건강보험 급여 대상이지만 환자 부담이 높은 선별급여 또는 비급여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제도는 실질적으로 온전한 보험급여를 제공한다고 보기 어렵다. 헬스케어 분야는 인간의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제품 상용화와 관련된 규제가 매우 엄격할 뿐만 아니라 관련 이해당사자 또한 다양하다.

그러나 적시에 유망한 혁신적 의료기술의 환자 접근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환자에게 가해지는 위해성은 없을지라도 충분한 혜택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과 편익 간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제도 운영의 핵심이다. 

이 때문에 당면한 사안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의사결정을 위한 이해당사자 간 의견 조율과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쉽지 않고 복잡하게 얽힌 사안일수록 이해당사자 간 긴밀한 의사소통이 요구된다. 문제 해결을 위한 목표를 공유하고 공동의 노력이 이뤄졌을 때 제도 본연의 취지를 살려 그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특히 TCET 제도의 향후 진행 상황을 고찰해 나가면서 우리나라 제도의 강점과 개선사항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큰 틀에서 제도적 유사성은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악마는 디테일에 있기 마련이다. 환자 건강에 필수적인 보호 및 엄격한 임상 근거 기준을 유지하면서 신의료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TCET 제도와 혁신의료기기 통합심사 평가제도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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