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민(한성대학교 기계전자공학부 교수)

[라포르시안] 인공지능(AI)은 2015년 알파고의 등장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모든 산업 분야에서 AI를 활용하는 시대, 즉 4차 산업혁명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특히 산업 AI란 산업 환경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AI 기술을 통해 분석하고, 공정 관리·설비 보전 등의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산업 도메인의 전문 지식과 AI 기술 융합으로 이뤄져 있으며, 산업 현장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높은 정확성과 신뢰성이 요구된다.

AI의 등장과 산업 혁명은 기술과 산업 구조의 변화를 불러오고, 새로운 경제와 사회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에 기업과 정부는 AI 기술을 적극 받아들이고, 관련 인프라와 인력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AI 인재 양성, 연구개발, 데이터 댐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의료·헬스 데이터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민감도가 매우 높을 뿐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법과 함께 의료법에 따른 규제가 동시에 적용된다.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규제 문제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 2019년 대구의 ‘스마트 웰니스 규제자유특구’를 시작으로 강원 등지에서도 다양한 실증 사업을 수행하면서 의료·헬스 데이터 활용 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이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규제 이슈는 크게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안전한 데이터 보호 및 익명화 이슈다. 보건의료 데이터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데이터 보호 및 익명화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개인 식별 정보를 삭제하거나 대체 식별자를 사용해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하는데, 이를 통해 개인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다.

둘째, 엄격한 데이터 접근 규제 이슈다. 의료·헬스 데이터는 개인 건강에 대한 중요하고도 민감한 정보를 담고 있다. 따라서 데이터 접근 권한을 제한하고, 접근 권한을 가진 연구자나 조직은 신중하게 선택돼야 하며, 데이터 접근에 엄격한 절차와 규제가 요구된다. 이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합법적인 연구 목적에 한정해 사용할 수 있는가도 중요하다.

셋째, 투명성과 신뢰성 이슈다. 의료·헬스 데이터는 활용 과정과 기준을 명확히 공개해 해당 정보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 데이터 활용의 목적·방법·결과 등을 공개함으로써 다른 이해관계자의 감시와 평가를 받고, 이를 통해 데이터 활용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받을 수 있는가도 중요한 이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일까. 개정 개인정보 보호법 시행에 따른 후속 조치의 하나로써 2020년 9월 25일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 가이드라인’이 공개됐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가명 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에 이어 발표된 것으로 가명 정보 활용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나 법령에서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은 가명 처리 및 가명 정보 처리·결합 활용 등에 있어 보건의료 데이터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발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해당 가이드라인은 보건의료 데이터 활용에 있어 중첩되는 법률 간 관계에 대해 의미 있는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먼저 의료법과 개인정보 보호법의 관계에 있어 가명 처리해 환자 식별력이 없는 진료기록(정보)에 대해서는 의료법이 적용되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가명 처리를 거친 보건의료 데이터는 의료법이 아닌 개인정보 보호법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러한 보건의료 데이터 사용 규제 완화는 의료산업 전반의 혁신을 촉진하고 있으며 그간 사회에 만연해왔던 의료데이터 사용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크게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게다가 의료기관에서도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줘 데이터 산업을 활성화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여전히 ‘법률 개정’이 아닌 ‘가이드라인’이라는 한계로 인해 데이터 관련 문제가 제기될 수 있지만 데이터의 민감성을 고려하면 이는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머지않아 법률도 가이드라인과 연계돼 의료데이터 활용 공백이나 모호함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정부와 병원에서 보건의료 데이터에 대한 규제를 정비·개선하고 있지만 AI 등을 활용한 의료산업이 곧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의료분야는 데이터 활용에 관한 법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안전 보장을 위한 다양한 법률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법률은 시대 변화에 따른 규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률을 현실적인 상황에 맞게 수정·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기술 변화의 속도가 빠른 시대에는 예상치 못한 규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규제 문제는 산업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인에게 큰 어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실증 사업을 지원하고, 규제 해소를 통한 산업 육성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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