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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Book소리] “내 곁에서 그냥 살아주면 안 되나요?”미 비포 유(Me Before You) / 조조 모예스 지음 / 김선형 옮김 / 살림출판사 펴냄, 2013년

[라포르시안] 2009년 가족들의 요구로 진행된 치열한 법정공방 끝에,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할머니에게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조치가 이루어지기면서 연명치료의 중단은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파장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을 계기로 대부분의 의료인들은 과거 진료현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연명치료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법원이 김할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도록 하는 판단을 내린 것이 판례가 되어 연명치료를 중단을 결정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법적 뒷받침이 없다면 의료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연명치료의 중단을 법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진료현장에서 의사결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의료계의 문제제기가 지속되었고, 결국은 의학, 법학, 윤리학 등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들이 연명치료에 관한 제도의 틀을 마련하기 위하여 오랜 시간을 두고 고민을 거듭하였습니다. 그와 같은 노력의 성과로 지난 해 말에는 보라매사건이 일어난 지 16년 만에 ‘연명의료의 환자결정권 제도화를 위한 관련법안’의 초안이 마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환자의 결심을 의료진이 뒤집을 수 있는 길이 없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어, 보완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하여 전향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어울리는 소설작품을 읽었습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입니다. 영국에서는 허용이 되지 않은 연명치료의 중단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해보자는 작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 책입니다. 작가는 2008년 12월 10일 스카이 리얼 라이브즈 채널을 통해 방영된 다큐멘터리 ‘죽을 권리’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서울신문 2008년 12월 10일자 기사. “영국에서 안락사 장면 TV방영 논란”). 이 다큐멘터리는 우리에게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운동신경세포병으로 투병하던 전직 대학교수 그레이그 유어트가 2006년 9월 스위스의 취리히에 있는 안락사 지원병원 디그니타스를 방문하여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과정을 담았다고 합니다.

뉴스는 “그가 ‘온몸이 마비되고, 말할 수도 없고, 걸을 수도 없고, 눈조차 움직이지 못할 때 어떻게 당신의 고통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겠는가’라며 인생의 나머지를 ‘살아 있는 무덤’처럼 지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스위스행을 택했다”고 말했고, 남편이 죽음을 선택하는 현장에 참여한 아내는 “‘언젠가 당신을 만날 것’이라며 편안한 여행을 하기를 바란다고 기원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 <미 비포 유>로 돌아가서, 프롤로그에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고, 맹수들의 싸움터 같은 M&A의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던 젊은 사업가 윌 트레이너가 애인과의 달콤한 밤을 보내는 사이에 밀린 사업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급히 사무실로 나가던 길에 오코바이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빨리 택시를 잡아야 한다는 일념과 동료와 사업상의 문제를 의논하기 위하여 블랙베리에 정신이 팔린 윌과 쏟아지는 비에 시야를 빼앗긴 오토바이 운전자와의 불운이 겹치는 바람에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의 삶을 잿빛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야기는 2년 뒤로 훌쩍 뛰어 우리의 또 다른 주인공, 사랑스러운 루이자 클라크가 운명적으로 윌 트레이너와 만나게 되기까지를 짧게 설명합니다. 그리고서는 무려 500여 쪽이 넘어가도록 루이자와 윌 사이에 벌어지는 달콤 살벌한 로맨스 스토리를 깨알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는 순간은 이랬습니다. “우리가 방안에 들어가자, 휠체어를 탄 남자가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 밑에서 올려다보았다. 그 눈길이 내 시선과 마주쳤고, 잠시 무서운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피마저 얼어붙게 만들 듯 소름끼치는 신음소리가 났다. 그는 입가를 씰룩거리더니 한 번 더 이 세상 소리 같지 않은 비명을 질렀다. (…) 아 하나님, 나는 생각했다. 저 이 일 못 해요. 못 하겠어요. 꿀꺽, 세게 침을 삼켰다. 남자는 아직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뭐라도 하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저, 저는 루라고 해요.’ 어울리지 않게 부들부들 떨리는 내 목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손을 내밀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잡지도 못한다는 생각이 나서 그냥 힘없이 흔들기만 했다. ‘루이자를 줄인 애칭이죠.’ 그러자 놀랍게도 그의 얼굴이 밝아지더니 머리도 어깨 위에 반듯이 자리를 잡았다.(45~46쪽)” 운명의 실타래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녀를 하나로 엮는 순간입니다. 사고로부터 두 사람이 만나는 2년의 시간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조금씩 섞어 설명합니다만, 대체적으로 회복가능성이 떨어지는 불치의 병을 앓게 되는 환자가 겪는 심리적 변화를 고스란히 겪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죽음을 맞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연구한 퀴블러 로스박사도 69세에 생긴 뇌졸중으로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면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적이 있다고 하는데, 그녀 역시 자신의 환자들처럼 분노와 용서와 화해과정을 경험하였고, 종국에는 삶을 이해하게 되면서 “난 진정한 삶을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인생수업, 이레 펴냄, 2006년)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의 자살시도 끝에 결국에는 유예기간을 둔 다음에 안락사를 받아드리기로 가족들과 합의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아, 윌은 자신의 미래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할만한 것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질병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희망이라는 긍정적인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제롬 그루프먼박사와는 달리 윌을 치료한 의료진이 그에게 삶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제롬 그루프먼 지음, 희망의 힘, 넥서스 펴냄, 2005년)

참고로 윌이 교통사로로 목 부위의 척수에 심각한 외상을 입고 사지마비에 빠졌고, 사고 이후로 1년 정도 받은 재활치료로 경과에 진전이 있었지만, 이후에 별 차도가 없자 치료를 포기하고 현상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던 모양입니다. 비슷한 상황으로, 저도 잘 알고 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신경과교수님은 디스크파열에 의한 척수외상으로 온 전신마비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부상이 추가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다루도록 요청하여 응급수술을 받았고, 이후 재활치료에 전념한 결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환자진료에 복귀했다는 점입니다.(전범석 지음, 나는 서있다. 예담, 2009년) 전교수님의 재활과정은 그야말로 눈물과 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수기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치료에 참여한 의료진과 환자 스스로의 간절한 소망이 하나가 된 결과일 것입니다.

윌의 어머니 카밀라 트레이너가 면담을 통하여 루이자를 간병인으로 선택한 것은 단순한 간병을 넘어 윌의 결심을 번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루이자에게 윌의 간병을 부탁하면서 윌과 가족들 간에 6개월 뒤에 안락사 시술을 받기로 합의한 바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바람에 루이자가 혼란에 빠지기도 하지만, 6개월은 루이자와 윌 사이에 환자와 간병인 관계를 뛰어 넘는 감정이 생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내가 맡은 일은 사실상 자살을 못하게 감시하는 일이라고, 처음부터 말해주셨다면 공평했을 텐데요.(170쪽)”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루이자에게 “그 애가 뭔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려면 이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요. 그 애가 계획했던 삶은 아니더라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이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는 카밀라의 답변에서 가족들의 답답한 심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국 루이자는 사지마비환자를 간병하는 단순한 일에서 죽음을 꿈꾸는 한 젊은 남성에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일로 목표를 수정하기에 이릅니다.

루이자가 파악한 윌은 사고로 희망이라고는 한 조각도 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이후 세워놓은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남자였는데, 윌이 파악한 루이자 역시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려고 애쓰는 여자였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많은 배려를 하게 됩니다. 루이자는 윌이 비록 남에게 의지해야 하는 삶이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담아주려는 노력을 시작하고, 그 희망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즉 윌을 사랑하게 된 자신을 깨닫고 자신의 사랑이 윌에게 희망이 되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한편 윌은 루이자가 마음속에 꽁꽁 숨겨둔 상처를 우연히 발견하면서 자신의 울타리에 숨어 웅크리고 있는 그녀가 넓은 세상으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를 수 있도록 자신이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윌은 루이자에게 “인생은 한 번밖에 못하는 거요. 한번의 삶을 최대한 충만하게 보내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요.(277쪽)”라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윌 역시도 자신의 삶에서 희망이라고 할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요?

루이자는 인터넷을 통하여 사지마비로 투병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돌보는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처음 윌을 맡았을 때부터 시작했더라면 효율적인 대응방안을 찾아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지마비로 고통받는 환자 가운데 완전 기분이 축축 처진다는 이유로 <잠수종과 나비>를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하더라고 적은 것을 보고서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잠수종과 나비>는 갑자기 찾아온 잠김증후군으로 외부세계와 단절된 장-도가 처음 그저 ‘죽고 싶다’는 생각에 매몰되어 지내다가 눈깜박임을 통하여 외부와 소통할 수 있게 되면서 오랜 훈련을 통하여 사고를 당하기 전에 기획하고 있던 책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 영화를 통하여 윌이 힘든 삶에서도 희망을 둘만한 무엇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루이자는 삶에 대한 기대를 접은 이후로 거의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 윌을 집밖으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고, 나아가서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가서 스카이다이빙과 번지점프, 그리고 승마와 수영까지도 시도하려는 거창한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출발을 앞두고 윌이 갑작스럽게 폐렴을 앓는 바람에 모든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폐렴을 치료하고 나서는 모리셔스 제도의 리조트에 가서 다양한 실외활동을 경험하고 종국에는 둘이서 같은 침대에서 잠들기에 이르게 됩니다. 이날 루이자는 윌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온갖 일들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게 보통 흔하게들 하는 사랑 얘기가 아니라는 건 알아요. 심지어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있어서는 안될 이유들도 숱하게 많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내가 당신을 사랑해요. (…) 당신이 아무리 지독하게 못되게 굴어도, 나 당신과 함께 있으면 행복해요. 당신은 자신이 초라하게 쭈그러들었다고 느낄지 몰라도, 난 세상 그 누구보다 그런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요.(470~471쪽)”

하지만 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 역시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되고, 자신이 겪어온 과정을 그대로 밟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통보받은 환자들이 겪게 되는 부정, 분노, 타협, 절망, 수용의 다섯 단계의 심리적 과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이 겪는 상실의 경험과정에서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건너뛰는 단계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 지음, 상실수업, 이레 펴냄, 2007년). 윌은 자신의 죽음으로 가족들이 받을 고통의 크기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새롭게 시작된 루이자의 사랑이 윌의 결심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내 곁에서 그냥 살아주면 안되나요?”라는 루이자의 간절한 소망에 대한 윌의 답변은 무엇이었을까요?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라포르시안  webmaster@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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