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민(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회장)

[라포르시안] 지난 3월 대구에서 10대 청소년이 ‘응급실 뺑뺑이’ 끝에 사망한 사건 관련해 환자가 처음 도착했던 대구파티마병원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료계의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해당 전공의는 이번 사건 관련해 경찰 조사 대상 가운데 유일하게 환자를 대면진료하고 전원 조치했던 의사였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반발이 크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와 의료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로 발생한 사건의 책임을 전공의 개인에게 물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필수 의협회장은 오늘(29일) 대구를 방문해 해당 전공의와 대구 파티마병원장, 응급의학과장 등을 만난 후 대구북부경찰서장과 면담에서 의료계의 입장을 전하고 해당 전공의의 구명에 나설 계획이다. 

응급의학과에서는 이번 사건의 여파가 상당히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에 따르면 이미 환자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은 수련을 포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라포르시안은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 이형민 회장으로부터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사건의 본질적 문제와 응급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해법을 들어봤다.

- 대구파티마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돼 기소 심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입장에서 당시 해당 전공의의 판단을 어떻게 보는가.

= 어젯밤 응급실에서 근무하면서 치료할 수 없다고 한 환자 수가 대여섯 명 정도 된다. 대구 응급실 전공의 사건의 논리대로라면 나 역시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응급실 안에서의 의료행위는 항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의 일 자체가 그렇다. 응급실은 응급한 상황의 환자들이 와서 치료를 받는 공간이기 때문에 모두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결과만 놓고 치료한 의사, 또는 결정한 의사의 잘잘못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 응급의학과 의사는 응급환자에게 그 순간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을 판단해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들인데, 그 행위가 어떻게 경찰 조사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나.

응급의학과 의사는 환자를 위해 하루에도 수백 번의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수백 번의 판단이 모두 다 맞을 수는 없다. 많은 고민 끝에 맞다고 판단해서 환자에게 설명을 했어도 틀릴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범죄가 될 수는 없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의료의 본질에 충실한 행위에 대해 결과만 놓고 수사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구파티마병원 전공의도 마찬가지로, 응급실 의사로서 판단하고 결정을 내렸을 때 그는 당연히 해야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당연히 해야만 했던 일 때문에 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는다면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전부 일을 그만둬야 한다.

- 아무리 환자를 위한 판단과 의료행위를 했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는 진료 과정 및 내용에 책임을 물을 수 있지 않나.

= 당연하다. 어느 누구도 의료 과정에서 손해를 봐선 안 된다. 그래서 자동차 사고 책임보험처럼 필수의료행위에 대해 책임보험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책임보험은 불가피하게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생긴 것으로, 보험료에 비해 책임지는 범위가 상당히 넓다. 공적 자금이 들어가서 가능한 것이다. 필수의료 사고도 동일하게 바라봐야 된다. 선진국들은 이미 의료 사고에 대한 보험들이 일반화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의료사고 배상 보험이 있지만 책임보험 개념이 아니라 민간보험이다. 개인적으로는 해당 보험에 가입할 수도 없고, 보험료를 한달에 500만원씩 납부해야 한다면 불가능하다. 이를 책임보험 성격으로 정부에서 담당해야 한다. 

- 이번 사건으로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클 것 같다. 

= 대구파티마병원 전공의는 해당 환자를 처음 본 사람이다. 그 전공의에게 응급환자를 제대로 안 봤다는 이유로 수사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은 앞으로 환자를 보지 말라는 이야기다. 결과가 안 좋다는 이유로 응급실 의사를 처벌하면 앞으로 어떤 의사가 환자를 보겠나. 실제로 대구파티마병원 전공의가 피의자로 전환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현재 응급의학과 커뮤니티에서는 ‘환자를 안 보는 게 정답이다’, ‘치료가 안 될 것 같은 환자는 아예 응급실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더 큰 문제는 이 사건으로 많은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이 수련을 포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이 최일선에서 가장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고, 실제로 그만 두려는 움직임이 상당수 확인되고 있다.

응급의학과의사회는 최근 몇 년 동안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의 중도 포기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전국 수련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 TO는 164명이다. 한 해에 응급의학과 수련을 받다가 그만두는 전공의 수는 약 3~4명, 많을 때는 5~6명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2~3년 사이에는 한 해에 약 15~20명의 전공의들이 응급의학과를 포기하고 있다. 

- 응급실의 역할은 응급환자를 보는 것인데 왜 응급환자를 보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나.

= 예를 들어, 배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을 갔는데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수술이 급한 상황에서 배후진료가 안 되는 작은 병원은 ‘ 이곳에선 여건 상 수술이 안 되니 큰 병원을 가라’고 하면 환자나 보호자들은 처음부터 큰 병원을 보내지 왜 접수를 받고 진료를 했냐고 따진다. 환자를 받지 않으면 받지 않았다고 욕을 한다. 이런 문제는 응급실의 역할이 응급조치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최초 응급조치를 하고 최종 진료까지 인계하는 것이 응급실의 역할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응급실에서 응급조치부터 최종 진료까지 모든 것을 다 해결을 해주기를 바란다. 결국 응급치료 후 최종 진료가 안 되는 상황이 생기면 수사 대상이 된다. 환자를 최초로 만난 의사는 피의자가 되는 것이고, 결국 의사 입장에서 이를 막기 위해선 환자를 피할 수밖에 없게 된다. <관련 기사: 응급실 폭력이 ‘멍청한 행동’인 진짜 이유>

- 응급실 이용자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인가. 반복되는 응급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라면.

= 응급실의 가장 큰 문제는 과밀화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응급실과 관련한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과밀화 해결을 위해선 응급실 이용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농담처럼 ‘응급실은 의료 편의점이다’라고 이야기한다. 편의점에 과자나 음료수를 사러 가듯이 응급실을 방문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응급이든 중증이든, 심지어 경증이라도 누구나 본인이 원하면 전국 모든 병원의 응급실에서 진료를 요구할 수 있다. 응급실 과밀화를 해결하려면 이같이 잘못된 의료 이용문화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누가 바꿔야 하겠나. 결국 정부의 책임이다. 응급실 이용 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과밀화 해결을 위한 첫 단추일 것이다. <관련 기사: 응급실 의료자원만으로 중증응급환자를 살릴 순 없다>

응급실 과밀화 해결을 위한 또 한가지 방법은 일차의료의 강화다. 경증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지만 과연 모든 경증환자가 응급실을 원해서 갈까. 그렇지 않다. 본인이 경증인 것도 알고 일차 의료기관이나 작은 병원을 갈 의지가 있는 환자도 많다. 하지만 갈 수 있는 곳이 없어서 응급실을 찾는 경증환자도 부지기수다. 응급실 과밀화 해결을 위해선 이용 문화 개선과 함께 이런 환자들을 볼 수 있는 일차의료 활성화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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