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택(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

[라포르시안] 지난 3월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더는 소아진료를 보면서 병원을 운영할 수 없는 의료환경’이라며 폐과를 선언하며, 회원들의 일반진료 역량을 키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1일 개최한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제1회 학술대회’도 그 일환이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사전등록 719명, 현장 참석인원 570명을 기록하는 등 소청과 전문의들의 관심이 쏠렸으며, ‘소아청소년 진료’가 아닌 보툴리눔 톡신, 비만, 당뇨병, 하지정맥류, 성인 천식 등에 대한 강의가 진행됐다. 

이 때문에 '탈 소청과' 현상이 심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소청과의사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면서도 소아청소년 진료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은 지난 21일 의협회관 프레스센터에서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임현택 회장을 만나 소청과가 처한 현실적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봤다.

- 최근 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개최한 ‘소아청소년과 탈출을 위한 제1차 학술대회’가 소청과 전문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학술대회는 3월 29일 대한소아청소년과 폐과 선언 이후에 회원들이 소청과 아닌 다른 일들을 하면서 살아 갈 수 있도록 실행 과정의 연장 선상에서 이뤄진 학술대회였다. 자리가 모자라서 보조 의자를 놔야 될 정도로 회원들의 호응과 관심이 쏠릴지 몰랐다. 

건강보험이 통합된지 30년간 소청과 수입의 대부분인 진찰료가 물가 대비 오히려 깎였고, 지난 14년간 국가필수예방접종 시행비도 역시 깎여왔다. 그런 상태에서 저출산 상황까지 겹치다보니 다른 나라와는 달리 오직 환자 수를 무한정 많이 봐서 몇 십년 간 겨우 소청과를 유지해 왔던 상황이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진 것이다. 외국처럼 하루에 20명의 아이들만 진료하고도 소청과가 유지됐다면 진로 전환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30년간 월급이 깎이고 10년 전보다 수입이 28%가 줄었다면 어떤 직장인이 그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겠는가.

많은 국민이 걱정하는 것도 알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나를 먼저 알아보고 인사하며, 소청과 문제에 공감하는 국민도 있다. 내년 학술대회에는 성인 진료가 아닌 소아청소년 진료에 중점을 두는 학술대회를 열고 싶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더 이상 소아청소년과를 유지하지 못한다. 정치권이나 정부부처나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을 치료하고 살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 소청과 폐과 선언 이후 3개월 가량 지났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 이미 폐과와 다름없는 상태였던 만큼 폐과 선언에 대해 너무 잘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회원들에 따르면 폐과 선언 이후 소청과에 온 환자 보호자들도 '아이 잘 봐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많이 한다. 소청과를 그만 두지 말고 오래 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많다고 한다. 나 역시 많은 분으로부터 소청과 문제가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며, 상황이 빨리 개선되면 좋겠다는 말을 수없이 많이 듣고 있다.

- 열악한 소아의료체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커졌지만, 막상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없다는 지적이 있다.

=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청의 대책이 더딘 게 사실이다. 이달 초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긴급 만남을 요청을 했고, 그 자리에서 박 차관은 소청과의 어려운 사정에 대해 ‘적극 나서겠다’, ‘다섯 번이든 여섯 번이든 분명한 해결책을 내놓으려고 한다’라고 했다. 그 자리에는 의료현안협의체 보건복지부 측 단장인 이형훈 보건의료정책관도 있었다. 박민수 차관은 내가 말한 사안을 일일이 받아적고 보건의료정책관에게 검토를 지시하는 성의를 보였다.

30년 간 소청과 의사들은 참을 만큼 참았고, 이제 공은 복지부 쪽에 넘어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앞으로 동네 소청과부터 희귀질환과 중증질환을 다루는 대학병원까지 소청과 의료인프라 구축 여부는 전적으로 복지부와 질병청, 기재부 등 정부의 손에 달려 있다.

- 최근 국민의힘에서 소청과 문제 해결을 위한 테스크포스를 열었고,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청과의사회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인가.

= 국민의힘 테스크포스는 내가 여당에 요청해서 만들어졌다. 동네 소아청소년과부터 2차병원 소청과, 대학병원, 상급종합병원에 이르기까지 이미 무너져서 희생자들이 나오고 있는 유소아청소년 의료 인프라를 조속히 정상화하고, 근본 틀부터 철저히 바꿔 앞으로 백년이상 갈 튼튼한 건물을 짓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단순히 소청과뿐만 아니라 소청과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아외과, 소아심장흉부외과, 소아신경외과, 소아안과, 소아정형외과, 소아이비인후과, 소아비뇨의학과, 소아재활의학과, 소아마취과등 연관 진료과들의 의료 인프라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의대생부터 전공의, 개원의, 봉직의, 전임의, 교수 등과 폭넓은 교류를 통해 현장의 문제를 잘 알기 때문에 이 테스크포스에서 분명히 작동 가능한 여러 해결책을 제안할 생각이다.

- 소청과 전공 기피가 심화되고 있다. 전공의 지원율을 올리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면.

= 올해 소청과 전공의 4년차 187명이 나가고 33명이 지원했다. 추가 인원까지 52명이 지원했는데 벌써부터 중도 사직자 수가 상당하다고 들었다. 내년에는 4년차 전공의 147명이 나간다. 대학병원에 남아있는 1, 2년차 전공의는 손에 꼽을 정도가 될 것이다. 왜 소청과를 지원하지 않냐고 물어보면 미래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지금도 현직에 있는 소청과 전문의 3,338명 중 약 20%에 달하는 667명의 소청과 전문의들이 아이들을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을 진료하고 있다. 

소청과 의사는 아이들의 목숨을 다루는 전쟁터의 한복판에 있는데,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사망이나 뇌성마비 같은 중대장애를 남길 가능성이 있다. 최선을 다해 의료행위를 해도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로 면책 특례가 없다면 어느 전공의가 소청과에 지원하겠나. 또, 소청과는 모든 진료과 중에 압도적으로 수입이 꼴찌를 차지하고 있다. 10년 전에 비해 유일하게 수입이 28% 줄었다. 인턴만 마친 일반의보다 수입이 적은 소청과를 전공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현재로선 소청과에 대한 투자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다. 소청과 전문의 반이상이 동네 소청과에 근무하면서 환자 대부분을 감당해 대학병원에 의료수요가 넘치지 않게 해주고, 중환자와 희귀병환자를 빨리 진단해 대학병원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의뢰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동네 소청과를 비롯해 대학병원 전공의, 전임의, 교수 등 모두에게 소송 위험은 적으면서 합당한 댓가가 충분히 지급되면 소청과를 전공해도 미래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 의협 집행부가 소청과 살리기에 어떤 역할을 해주길 바라나.

= 지난 3월 대한개원의협의회에서 의료현안협의체 위원으로 나를 추천했다. 그러나 의협은 복지부와의 의료현안협의체에 나를 부르지 않고 있다. 이필수 회장 취임 전, 의협 이상운 보험부회장은 나를 만나 이필수 회장이 소청과 문제를 적극 해결하려고 한다고 말한 바 있지만 취임 후 1년이 넘도록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제서야 내가 이미 복지부 고위 관계자와 이야기를 마친 사안에 끼어들어 마치 자신들이 나서서 달성된 것처럼 이야기하고 다녔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필수 회장을 포함해 의협 집행부가 소청과를 포함한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의료계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리라는 기대가 전혀 없다.

- 의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선 리더뿐만 아니라 일반 회원들의 관심도 중요할 것 같다.

= 의사들은 현장에서 환자를 위해 많은 고생을 하는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건강보험공단, 복지부 등은 의사를 도둑으로 몰아 환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한다. 환자와 의사 간 신뢰는 병을 낫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의사들은 일방적으로 매도 당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여러 활동을 하다보니 어느덧 4번째 임기까지 왔다. 세상은 바꾸려고 노력한 만큼 바뀌더라는 경험을 의사회원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지난 2000년과 2020년 투쟁에서 실망하고 자포자기하는 의사들을 많이 봤다. 그러나 의사들이 우리나라에서 보다 존중받을 수 있고, 환자 치료를 위해 신뢰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의료계 이슈에 관심을 갖고 힘을 더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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