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노조, 2023년 정기 실태조사 결과 공개
간호직에서 의사인력 부족 따른 업무부담 심각한 수준
간호사 74% "최근 3개월 간 이직 고려했다"

[라포르시안] 의사인력 부족으로 발생하는 업무 공백을 의사가 아닌 다른 직종에 떠넘기는 불법의료행위가 의료현장에서 만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의 아이디(ID)·비밀번호 공유를 통해 의사가 아닌 간호사 등이 직접 처방전을 대리 발급하거나 의사를 대신해 시술과 드레싱 행위를 하는 사례가 이뤄지고 있다.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 이하 보건의료노조)는 5월 12일 국제간호사의 날을 맞아 의료현장 간호사들의 근무조건과 노동환경 실태를 발표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매년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근무조건과 노동환경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해 실태조사를 실시해왔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조사에 참여한 4만8,321명 중에서 자신의 직종을 표기한 4만7,563명의 유효 응답 중 간호사 3만1,672명(66.5%)을 대상으로 한 주요 결과를 분석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78.6%가 의료기관 내 의사가 부족하다는 인식을 보였다. 직군별로는 간호직에서 의사가 부족하다는 인식이 82.6%(매우 부족 28.4%, 다소 부족 54.2%)로 특히 높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사무행정직(74.0%), 기능직/운영지원직(74.0%), 간호조무직(71.9%) 순이었다. 

의사인력 부족에 따른 문제점으로 병원·기관 운영에 있어 진료 대기시간이 길어진다는 응답이 73.5%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기존 의사 업무 과중(65.8%), 대면 진료시간이 짧음(63.2%), 진료에 대한 의사 설명 부족(61.3%) 순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여러 명의 환자 동시 진료(47.3%), 높은 연봉에도 의사 채용 못함(45.5%), 시술 및 수술의 어려움(44.0%), 환자 거절 혹은 전원 조치 발생(40.7%), 의사 비위에도 징계 못함(38.6%) 등이 뒤를 이었다. 

표 출처: 보건의료노조 2023년 정기 실태조사.
표 출처: 보건의료노조 2023년 정기 실태조사.

의사인력 부족으로 인한 자신의 업무상 문제점 발생에 대해서는 간호직에서 특히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간호직에서 의사 부족으로 인한 자신의 업무상의 문제점으로 '의사 대신 항의와 불만을 듣는다'는 응답이 68.1%로 가장 많았고, '담당의사와 연락이 잘 되지 않거나 늦음'이라는 응답이 63.3%를 차지했다. 

이어 '의사 업무를 대신하느라 내 업무가 늘어나는 일이 자주 있음'이라는 응답이 48.1%, '의사 대신 시술/드레싱을 한다'가 44.9%, '의사를 대신해 처방한다'가 43.5% 순으로 나타났다. 

'의사의 직장내 갑질이 있어도 의사부족으로 대응하기 어려워 참아야 한다'(41.1%)거나 ''의료사고의 위험을 자주 느낀다'(30.6)는 응답도 있었다. 

표 출처: 보건의료노조 2023년 정기 실태조사.
표 출처: 보건의료노조 2023년 정기 실태조사.

병원특성별로 의사 부족으로 인한 자신의 업무상 문제점을 보면 ‘의사 대신 항의와 불만을 듣는다’는 응답이 모든 병원에서 공통적으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국립대병원과 사립대병원은 '담당의사와 연락이 안 된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운데, 국립대병원에서는 의사 대신 처방, 업무 과중 등의 응답률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지방의료원의 경우 수술·시술 동의서 작성과 특히 고용불안감에 대한 응답이, 민간중소병원에서는 수술·시술 동의서 및 의무기록 대신 작성 문제에 대한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한편 이번 실태 조사에서 ‘최근 3개월 간 이직을 고려해 보았다’는 간호사의 응답은 74.1%였다. 이중 ‘구체적으로 이직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응답 비율이 무려 24.1%에 달했다. 

특히 중숙련‧고숙련으로 진입하기 전인 4~5년차 간호사에서 '이직을 고려해 보았다'는 응답 비율이 80% 이상이었다. 간호업무를 함께 맡고 있는 간호조무직의 경우에도 이직을 고려한 비율은 52.1%로 절반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이직 고려하는 비율이 높은 원인으로는 열악한 근무조건과 낮은 임금이 지목됐다. 간호직의 경우 43.2%, 간호조무직의 경우 36.5%가 ‘열악한 근무조건과 노동강도’를 이직 고려 사유의 1순위로 꼽았고, 간호직의 29.4%, 간호조무직의 30.3%가 ‘낮은 임금수준’을 그 다음의 이직 고려 사유로 꼽았다.

직장생활 만족도 조사에서도 간호사의 부정비율은 임금수준(64.2%), 인력수준(73.3%), 인사승진(55.1%), 업무량‧노동강도(59.8%)로 불만족의 비율이 높았다. 인력 수준에서 가장 만족도가 낮았으며, 임금수준과 업무량‧노동강도가 뒤를 이어 낮은 만족도를 보였다. 

특히 ‘일과 생활의 균형’과 ‘업무량‧노동강도’에서 간호사를 제외한 타 직군의 경우 각 34.1%, 50.7%의 부정 비율을 보인 반면, 간호사는 각각 52.1%, 64.3%의 부정 비율을 보였다. 

야간노동과 함께 불규칙한 교대근무 환경에 놓여 있는 3교대 근무자는 인력, 임금, 일과 생활의 균형, 업무량‧노동강도 등 주요 지표에서 타 근무형태에 비해 모두 불만족도가 높았고, 특히 일과 생활의 균형에서 더욱 불만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번 조사에서 약 1/4에 해당하는 현장 간호사가 조금의 계기라도 발생한다면 당장에라도 병원을 사직할 수 있다는 것은 한마디로 의료현장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은 긴장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정부가 지난 4월 25일 발표한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은 단지 생색내기 선언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정부는 현장에서 답을 찾는 태도로 우리 보건의료노조와 적극적인 정책협의를 통해 간호사 노동조건 개선을 통한 의료서비스 질 향상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