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근(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12월 15일 엄동설한 속에서도 전국에서 2만 여명의 의사들이 모여 정부의 원격진료와 영리병원 추진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대한의사협회는 영리병원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하였고,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이 연대사를 통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공동 행보를 보이면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결과적으로 이 집회는 철도노조 파업으로 달궈진 ‘민영화’ 이슈에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철도민영화와 의료민영화를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시키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박근혜 정부 의료민영화 정책의 실체는? 

지난 12월 13일, 정부가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새롭게 떠오른 의료민영화 논점은 두 가지로 모아진다. 투자활성화 대책의 의료 관련 정책 추진 계획이 의료민영화에 해당하는가의 여부와 현재 정부의 발표대로 정책이 추진될 경우 가까운 시일 내에 의료비 폭등이 발생할 것인가이다. 먼저 이들 쟁점부터 짚어보자. 영리법인 의료기관과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을 가르는 핵심은 자본시장으로부터의 자본조달과 투자자에게 투자 수익의 배당이 가능한가에 달려있다.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은 금융권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돈을 법인 장부에 부채로 달아놓고 의료사업이나 허용된 부대사업을 할 수 있을지언정 주식이나 채권을 통한 자본조달, 투자자 수익배당, 주식 가치 상승을 통한 자산관리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비영리법인인 의료법인이 영리자법인의 설립을 통해 영리법인과 똑같이 자본조달과 투자자 수익배당을 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부대사업으로 환자진료를 금지한다고 밝혔지만 의료의 특성상 의료자법인이 의료기기, 재료, 인력 등을 다루게 되면 그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영리법인 의료기관과 비슷해질 것이며, 영리자법인을 소유한 의료법인의 영리활동은 보다 촉진되고 장려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대표적인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인 의료법인을 실질적으로 영리법인화하는 조치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양성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료민영화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발표는 의료 정책적, 제도적 측면에서 전면적인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과는 일정한 차이가 이다. 첫째,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 후 우려되었던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신증설로 인한 의료시장 내 경쟁 과열과 영리 행위 확산에 상당한 제약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청와대와 경제부처에서 기대하는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 효과는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의미이다. 둘째, 비영리법인의 자법인으로서 영리법인을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영리법인 허용과 다름없지만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 후 가장 우려했던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위헌소송을 행사할 법적 권한을 갖지 못한다는 점도 차이점이다. 

따라서 영리법인 의료기관 설립을 전면적으로 허용할 때처럼 의료시장의 영리화가 전면화 되거나 국민건강보험제도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는 조치라고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대표적인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인 의료법인을 실질적으로 영리법인화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만으로도 의료시장의 영리화를 촉진하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나아가 향후 학교법인, 특수법인, 재단법인, 사회복지법인 등 다른 비영리법인 의료기관으로 그 허용범위가 확대되면서 비영리법인 의료기관과 영리법인 의료기관 간에 실질적인 차별이 없어지는 때가 되면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에 대한 요구와 주장에 힘이 실릴 것이란 우려는 거두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은 지난 10년간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로 대표되는 의료민영화 논란 속에서 형성된 국민적 우려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공약한 박근혜 정부의 입장을 고려한 속에서 우선적으로 시행 가능한 의료민영화 추진 방안의 최대치가 제시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이번 정부 발표를 보면서 건강보험 제도를 운용하는 보건복지부의 고뇌가 담긴 묘수라는 생각과 함께 꼼수라는 비판도 면하기 어렵겠다는 게 솔직한 관전평이다. 

▲ 지난 15일 여의도에서 전국의사궐기대회가 열렸다.

대한의사협회가 조직적으로 들고 일어선 이유 

이번 사안에서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반대한다며 대규모 집회까지 하고 나선 의사들의 입장과 그 배경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만 해도 대한의사협회는 영리법인 의료기관에 찬성하는 기류가 강했다. 그러던 의사협회가 영리법인 의료기관 반대를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왜일까?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재원을 조달하고 국민의 의료이용을 용이하게 하면서도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를 갖추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이 정한 의료비 범위 내에서만 진료비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제하면서, 환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여 의료기관들 간에 경쟁을 촉발시켜 의료기관들이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도모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우리나라는 의료기관 간에 환자유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 의료기관 설립에 관한 규제 일체를 폐지한 상태이다. 다만, 법적으로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허용하지 않는 제한을 두고 있는데, 상법상 회사인 영리법인 의료기관에게 국민건강보험제도와 같은 상품의 가격, 생산량, 품질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이 위헌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의사들의 전문적인 판단과 의견을 기준으로 의료기관 간의 협력적인 환자 진료체계를 구축하기 보다는, 환자유치 경쟁을 우선시하는 제도가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등 의료인력과 의료시설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 당국으로서는 모든 의료기관을 건강보험제도 안에 묶어 둘 필요가 있었고, 의사들이나 병원들도 인력과 시설의 공급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그럭저럭 운영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료인력의 공급이 점차 늘어나면서, 보다 구체적으로는 1990년대 중반을 경과하면서, 의료기관 간 서비스 질 경쟁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면서부터 의료공급체계의 문제점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첫째, 대형병원 쏠림현상으로 대표되는 의료기관의 양극화 현상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기관끼리 서로 환자유치 경쟁을 벌이는 관계이기 때문에 의료기관 간에 환자 의뢰를 기피하는 경향을 띌 수밖에 없다. 진료의뢰서 요구에 언짢은 표정을 짓는 의사를 경험한 일은 누구나 한두 번쯤 겪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중증 환자일수록 병원을 옮겨 다니지 않고 한 병원에서 다양한 질환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지명도 높은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일반화되었다. 아산병원과 삼성병원의 진출이 이러한 경향을 더욱 촉진시키기도 하였다. 소위 병원계에 big4니 big5니 하는 말이 정형화된 이유가,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이 나타나는 커다란 원인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대형병원일수록 경쟁력 있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인력 규모를 운용하고 유지할 수 있는 진료 수입의 확보가 가능하기 때문에 환자유치 경쟁에서 대형병원일수록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렇다보니 의료기관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둘째, 현재의 의료수가 수준에 대한 의료기관들의 불만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환자유치 경쟁이 의료기관의 양적 확대와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와중에 의료기관의 원가 부담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며, 건강보험 진료비만으로는 운영비의 충당이 어렵거니와 경쟁력 향상을 위한 여유 자금을 마련하기는 더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동네 의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경쟁이 격화될수록 환자 수는 줄어들고, 의료수가가 낮다 보니 의료기관의 수입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이치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점차 심화되면서 의사의 수입 감소는 물론이거니와 의료기관의 정상적인 운영을 어렵게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동네 병의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이왕이면 큰 데로 가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동네 병의원들은 환자들을 잡기 위해 내부 인테리어와 고가장비 구비에 보다 많은 돈을 들이다 보니 의료기관의 운영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약품을 매개로 한 리베이트와 같은 부수적 보상 메커니즘이라도 있었지만, 의약분업 실시와 제약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리베이트 근절 조치들이 제도화되면서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더불어 의료계의 의료수가 인상 요구가 사회적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막히면서, 결국에는 단순히 의료수가의 인상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단일 보험자 체계인 현행 국민건강보험체계를 흔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의료계 내에서 힘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사들의 요구와 맞물린 것이 의료민영화 추진 흐름이었다. 영리법인 의료기관을 허용하게 되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폐지를 꾀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기반으로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경쟁체제 속에서 의사들의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의료수가 현실화를 통해서 양질의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조건을 확보하고, 의사들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으리란 기대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서 미국식 의료제도가 보편화되는 것을 바라는 이들도 많지 않거니와 의료관광으로 대표되는 해외환자 유치의 실체가 알려지고, 의료민영화 추진 흐름이 하나씩 하나씩 구체화되는 과정 속에서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가 의사들의 전문가적 지위와 경제적 보상 수준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으리란 인식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박근혜 정부에서 창조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재벌 대기업 산하 계열회사와 대형병원에 유리하고 동네 병의원에게 불리한 원격진료를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대한의사협회가 영리병원 반대를 적극적으로 들고 나오게 된 것이다. 

의사들의 지향: 우(右)파도, 좌(左)파도 아닌 의(醫)파 

그렇다고 의사들이 진보 좌파 진영에 호의적인 건 결코 아니다. ‘무상의료’로 대표되는 정치적 노선과 정책은 환자와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 경감만을 다룰 뿐 의료공급시스템의 개혁을 통해서 의료인들이 환자진료에 충실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데는 소홀해온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기존의 국민건강보험체계와 함께 형성되어진 민간중심의 공급 구조와 경쟁 메커니즘을 활용해서 무상의료를 명분으로 의료기관을 더욱 옥죌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게 보다 정확한 이야기일 것이다. 의사들, 병의원들은 기득권 세력이고 돈을 많이 버는 집단이라고 압박해오면 속절없이 당하기 십상이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최근에 노환규 의사협회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에서 ‘의사들은 우(右)파도, 좌(左)파도 아닌 의(醫)파다. 국민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의파’라는 글귀를 접한 적이 있다. 이 대목만큼 의사들이 처한 현 상황과 요구의 지점을 잘 대변해주는 것도 없지 싶었다. 이제 의사들은 우파도 좌파도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입장을 공식화하면서, 의사들 스스로 국민 건강을 명분으로 의사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노력과 함께 자신들의 요구를 대변해줄 정치세력을 찾아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그동안 의료민영화를 추진해 온 세력은 의료계 일부와 손잡고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를 명분으로 집권 정치세력과 관료들을 설득하면서 제도화를 끊임없이 모색해왔다. 의료민영화 반대파들을 ‘좌파’로 낙인찍고 정책 협의와 논의가 불필요한 괴담 유포 세력으로 취급하면서 정책 논의를 독점해 온 것이다. 그 와중에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의사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해결에 나서거나 요구를 수용해준 게 무엇이냐는 불만이 의료계 내부에 적지 않게 쌓여 있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와 다를 게 뭐냐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청와대의 정책 행보에 반기를 든 의사협회 지도부를 놓고 이미 청와대에서는 ‘좌파’라 부른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래서는 합리적 논의와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 

의사가 전문지식과 기술을 토대로 환자진료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문제는 민주당을 포함한 정치적 왼편의 입장과 행보이다. 필자의 식견으로는, 소위 복지국가라 불리는 나라의 좌파들은 의사들이 전문적인 지식, 기술, 경험을 토대로 환자진료에 매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데 노력해 왔다. 민간의료기관 보다 공공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의료공급체계를 짜고, 의료기관 간에 경쟁보다는 경제 논리와 이윤추구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환자를 진료하고 필요한 진료를 수준에 따라 단계화하여 의료 이용의 적정화와 효율화를 도모하는 데 앞장섰다고 알고 있다. 우리는 의료 공급이 절대 부족한 조건에서 짧은 시간에 전국민의료보장제도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의료 공급의 양적 확충과 질적 수준을 확보하는 데 매진하다 보니, 오늘과 같이 의료기관들이 무한경쟁 상황에 내몰리고, 수입 확대를 위해서 비급여 진료로 내몰리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의료비 걱정 없이 사는 것, 의사들이 보다 내말에 귀 기울이고 잘 치료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참 어려운 일이다. 요즘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 말을 너무 자신 있게 했다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 건강보험에 투입할 재원만 확보한다고 국민들 걱정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갖는 관심 이상으로 의료공급체계의 변화에도 주목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의료민영화 반대 주장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구호만으로는 보수 세력을 압도하기 어렵거니와 변화를 견인하기도 어렵다. 

대한의사협회는 이익집단으로서 실리적 행보를 천명했다. 의사협회가 반대하고 나서니 의료민영화는 무산되겠거니 좋아하면서 수수방관할 일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역사를 보자. 기본적으로 보건의료는 진보 좌파의 정치적 성장을 가능하게 해준 기름진 텃밭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진보 좌파들은 그 기름진 텃밭을 두고서 우파가 그 밭에다 심어 놓은 ‘의료민영화’의 싹을 잘라내는 데만 지난 10년의 세월을 허비한 꼴이다. 선거 사이사이마다 의료민영화 반대에 몰두하다가 선거 때면 무상의료 슬로건을 반복하기만 할 것인지? 아니면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의료개혁의 주도권을 잡고 집권세력으로 나아갈 것인지? 냉정하게 돌아볼 때가 되었다.


[알립니다] 이 글은 앞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http://state.welfare21.net)에 게재됐습니다. 본지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로부터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전문을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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