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산업화란 말이 참 버겁고 난해하다. 도무지 추구하는 바를 이해하기 어렵고, 어떻게 산업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해외환자를 유치하고, 원격의료와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의료시스템을 수출하는게 이 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이다. 궁극적으로 노리는 바는 의료서비스 영역에 민간자본의 숨결을 불어넣겠다는 게 아닐까 강한 의심이 든다.

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을 놓고 의료계와 시민사회는 '의료민영화'를 우려한다. 사실 이런 우려가 적절한가 싶다. 이미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오래 전에 민영화됐다. 서비스의 공급 주체가 누구인가 따지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린 이미 철저하게 민영화된 의료체계 속에 놓여 있다. 현재 국내 의료기관 중 약 95%가 민간 자본으로 설립·운영되는 민간병원이다. 공공병원은 고작 5~6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민영화를 우려한다는 건 부질없다. 의료민영화의 상징적인 국가로 꼽히는 미국의 공공병원 비율이 2009년 기준으로 약 27%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료비 중에서 정부의 공적재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취약하다. 2012년 기준으로 건강보험과 국고지원 등 공적재원 지출이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6%로 OECD 34개국 중 31위다. 공적재원 중에서 건강보험 재원을 빼고나면 의료영역에서 국가의 역할은 극히 미미하다. 민간 중심의 공급체계 속에서 건강보험제도란 사회보장제도의 틀만 입혀놓고 국가가 무임승차한 꼴이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과 그로 인한 '재난적 의료비'는 국가의 소극적인 역할에서 비롯됐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정부가 의료산업화를 추진하겠다는 건 너무 뻔뻔하다. 무임승차로도 부족해 민간이 구축한 공적의료보장 체계의 판 자체를 깨겠다는 거다. 그나마 지금까지 건강보험제도를 기반으로 민간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가 공공재로써 역할을 수행해 왔다. 건강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낮은 의료수가에도 불구하고 의료보장의 최일선에서 그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그마저도 자본과 시장의 손에 넘겨주자는 저급한 의도가 엿보인다. 공공의료 확충 대신 영리병원 이나 원격의료 허용, 해외환자 유치 등의 정책이 바로 그런 신호다.

정부는 의료서비스 분야의 규제가 너무 심해 새로운 경쟁자의 시장진입 문턱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의사집단 등 기득권층의 독과점 체제로 시장경쟁이 무뎌졌다고 지적한다. 국내 의료산업 발전이 더디고 저장성을 하게 된 원인이 지나친 규제와 이익집단의 반발 때문이라고 탓한다. 그걸 풀겠다는 것이 바로 의료산업화 정책이다.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원격의료를 활성화시키고, 의사면허자와 비영리법인게만 허용된 병원 설립을 비의료인에게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참 황당하고 어이없는 인식이다. 국내 의료공급 시스템에 그런 규제 울타리를 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정부였다는 점을 망각한 셈이다.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의료서비스 수요가 폭증하자 정부는 공공병원을 확충하기보다 민간에 의존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정부가 한 일이라곤 고작 민간병원을 설립하는 데 일부 자금을 지원하거나 해외 차관을 알선하는 것이었다. 또한 민간 의료공급자들에게 반대급부로 경쟁자들의 시장진입 장벽이라는 울타리를 쳐 줬다. 보건복지 예산을 확대하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민간 중심의 의료체제가 공고하게 구축됐다.

정부가 의료산업화란 이름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은 신기루에 불과하다. 의료산업화의 개념 자체가 불분명하다. 단지 거대 기업자본의 진입을 허용하고 시장의 손에 의료공급 체계를 완전히 내맡기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의료산업화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부의 전망은 터무니없다. 지금도 의료현장에서는 일자리 수요가 넘친다. 그러나 저수가로 인해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지 못한 채 만성적인 의료인력 부족을 겪고 있다. 간호사 인력은 늘 부족하고, 대형병원은 전문의 인력을 확충하는 대신 값싼 노동력의 전공의에게 의존한다.

의료산업화는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의료산업화가 아니라 보건의료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확대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의료기관이 적정 의료인력을 갖추고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뒤늦게나마 무임승차 행위를 반성하는 올바른 자세다. 지금과 같은 의료산업화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결국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오는 15일로 예정된 전국의사대회가 그 시발점이 될 것이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