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규(식약처 의료기기심사부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장)

강영규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장
강영규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장

「규칙이나 규정에 의하여 일정한 한도를 정하거나 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게 막음」

국어사전에서 살펴본 ‘규제’의 정의다. 규제는 ‘금지와 처벌’이 아닌 일정 수준 이상을 정하고 그 기준을 벗어나지 말아야한다는 ‘제한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 해석이 가능한 이유가 규제를 뜻하는 영어 ‘Regulation’에서 찾을 수 있다. 

의료기기업체 인허가 담당부서를 RA(Regulatory Affair)로 부르는데, 즉 규정을 다루는 부서라는 뜻이다. 동사 Regulate는 ‘일정하게 조절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규제는 산업분야에서 ‘손톱 밑 가시’로 여겨지며 혁파 또는 개선 대상으로 인식돼왔다. 반면 대표적인 규제산업으로 불리는 의료기기업계에서는 역설적으로 규제 신설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사물인터넷(IoT) 등 융·복합 기술을 적용한 의료기기 개발업체는 제품 상용화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신속한 시장진입을 견인하는 ‘촉진제’로서의 규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러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 규제기관 내 독립적인 전담조직을 만들어 디지털 헬스 의료기기(이하 디지털 헬스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개발에 나선 이유다.

한국 역시 늦은 감은 있지만 최근 디지털 헬스기기 허가심사 전담조직이 꾸려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내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가 올해 2월 28일 정식 직제로 신설된 것.

강영규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장은 첨단의료기기과 연구관 시절 세계 최초 수식어가 붙은 ‘AI 및 빅데이터가 적용된 의료기기’ ‘3D 프린터를 이용해 제조되는 맞춤형 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개발을 주도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헬스기기TF팀’을 이끌며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 신설을 이끈 장본인이다.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는 지난 2월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내 정식 직제로 신설됐다.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는 지난 2월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의료기기심사부 내 정식 직제로 신설됐다.

 "비대면 진료 관련 의료기기 안전관리 가이드라인 마련 중" 

강 과장은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는 의료기기심사부 내 심혈영상기기·정형재활기기·구강소화기기 등 특정 품목명이 붙은 과 명칭과 차이가 있다”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AI, 가상(VR)·증강현실(VR), 디지털 치료기기 등 디지털 헬스기기의 허가심사 업무와 함께 이들 제품의 신속한 제품화를 위한 ‘규제 지원’을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규제 지원의 목적은 질병을 예방·진단·치료·모니터링 하는데 쓰이는 디지털 헬스기기 특성을 반영해 합리적인 규제를 수립하고 개발자와 의료기기업체에 허가심사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신속한 제품화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는 신설된 지 2개월이 안 됐지만 급격한 기술혁신과 제품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oftware as Medical Device·SaMD)의 품목분류, 사용적합성, 임상시험, 사이버 보안 등 선제적인 규제 수립과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해 잰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먼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시적 허용으로 활성화된 ‘비대면 진료’에 사용되는 의료기기 안전관리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

강영규 과장은 “포스트 코로나시대를 대비해 비대면 진료에 사용되는 의료기기 안전기준을 재정비하는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개정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비대면 진료는 환자의 데이터 송·수신이 이뤄지기 때문에 앞으로도 개인정보 보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것으로 전망돼 엄격한 사이버 보안 등 안전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는 또한 AI, 빅데이터, 가상·증강현실, 디지털 치료 등이 적용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에 대한 사용적합성(usability) 적용 규격과 함께 ▲품목분류 기준 ▲임상시험자료 대상 여부를 위한 동등성 판단 기준 ▲사용목적·작용원리 등 제품 주요항목 변경 시 허가(변경) 범위·방법 등 허가심사 가이드라인 제·개정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강 과장은 “과거 의료기기 품목 및 품목별 등급에 관한 규정에 의해 소프트웨어가 들어가 있는 품목은 13개에 불과했지만 2020년 기준 90개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만큼 품목신설·관리 등 품목분류 기준을 정립하고, 임상시험 또한 자료 제출이 필요하거나 혹은 일반적인 기능·성능자료로 대체 가능한 제품 기준을 명확히 수립하고 절차 또한 간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이러한 규제 적용은 ‘의료기기 허가심사에 관한 고시’ 개정이 이뤄져야 가능하기 때문에 허가심사 가이드라인과 고시 개정 작업을 동시에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질환별 디지털 치료기기 임상시험 가이드라인 마련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는 의약품·의료기기를 보완 또는 대체함으로써 치료제 개발이 어렵거나 미충족 의료 수요를 해결하고 데이터 기반 환자 맞춤 의료를 제공해 디지털 헬스케어를 실현하는 세부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는 ‘디지털 치료기기’(Digital Therapeutics·DTx)의 신속한 제품화 지원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불면증과 알코올·니코틴 중독 장애에 이어 올해 공황장애·우울증 치료를 위한 디지털 치료기기 안전성·성능 평가 및 임상시험계획서 작성 안내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강 과장은 “2020년 8월 디지털 치료기기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발간했고, 현재 디지털 치료기기 10개 제품이 임상시험에 진입했다”며 “앞으로도 질환별 디지털 치료기기 임상시험 가이드라인을 순차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디지털 치료기기 대부분이 지난해 중·후반에 임상시험계획승인을 받았지만 코로나19 영향 때문에 환자 모집에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올해 말에는 국내 첫 허가를 받은 디지털 치료기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현재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 인력은 강영규 과장을 포함해 정규직 5명과 주로 심사관으로 일하는 공무직 4명 등 총 9명이다. 새롭게 개발되는 디지털 헬스기기의 인허가부터 사후관리까지 제품 안전성과 유효성을 심사·검증하는 선제적 또는 후향적 규제 업무를 담당하기에는 부족한 인력이다.

강영규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장은 “새로운 형태의 의료기기에 적합한 임상시험·허가심사 등 합리적인 규제 적용과 의료기기업체들의 신속한 제품화를 위한 규제 지원을 위해서는 인력이 더 필요하다”며 “다만 인력 확충은 행정안전부 등 부처 협의와 예산 확보가 이뤄져야하는 만큼 중장기적으로 준비하되 기존 심사인력들의 전문심사 역량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디지털 헬스기기는 융·복합 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분야로 규제기관 입장에서도 힘든 점이 많다. 물론 의료기기업체들은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디지털헬스규제지원과는 의료기기산업계와 긴밀한 소통을 통해 인허가 과정에서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신속한 제품화를 위한 규제 지원에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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