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의료계 등 사회적 합의·환자 안전 담보 선결과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바이오헬스분야 5대 공약으로 신의료기술 ‘선(先) 사용·후(後) 평가’ 전환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바이오헬스분야 5대 공약으로 신의료기술 ‘선(先) 사용·후(後) 평가’ 전환을 발표했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라포르시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22일 바이오헬스 분야 5대 공약으로 신의료기술 ‘선(先) 사용·후(後) 평가’ 전환을 발표했다.

신의료기술 선 사용·후 평가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 절차에 의해 안전성이 확보된 의료기기를 허가 후 건강보험 등재 절차로 조기에 시장 진입이 가능토록 하고, 사후 신의료기술평가를 하는 것으로 그간 의료기기 업계가 제기한 규제 완화 제도개선 중 하나다.

실제로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앞서 ‘의료기기 선(先) 시장 진입-후(後) 신의료기술평가’를 건의한 정책제안서를 각 당 대선 캠프에 전달했다. 현행 의료기기 시장진입 절차는 ▶의료기기 허가(식약처) ▶신의료기술평가(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건강보험 요양급여 등재(건강보험심사평가원)로 진행된다.

즉, 신개발 의료기기가 국내에서 도입·사용되기 위해서는 해당 의료기기를 활용한 의료기술에 대한 NECA의 신의료기술평가 절차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NECA는 이를 위해 국내 도입되지 않은 새로운 의료기기를 활용한 기술 안전성·유효성을 문헌적 근거를 평가하기 위해 ‘체계적 문헌고찰’ 방법론을 통해 해당 의료기기를 사용해 수행한 임상연구를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이후 안전성·유효성 평가 결과에 따라 3단계 권고 등급(신의료기술·연구단계기술·조기기술)으로 나눠 발표하는데 이때 ‘신의료기술’ 단계로 평가된 의료기술에 대해서만 의료현장 진입이 허용된다.

문제는 새로운 의료기술은 개발 직후 임상 근거 축적까지 비용 및 시간적 제약이 존재해 식약처가 의료기기 허가절차에 따라 안전성·유효성을 입증한 제품이라도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할만한 충분한 임상근거를 축적하지 못해 시장진입이 불가능한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특히 비용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대규모 임상연구 진행이 어려운 국내 의료기기 제조사는 다국적 의료기기 수입업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약 23%의 의료기술만이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해 국산 의료기기 발전에도 큰 제약이 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는 정책제안서를 통해 2019년 4월 보건복지부가 인체 유해성이 낮은 체외진단검사 의료기기만 제한적으로 도입한 ‘선 시장진입-후 신의료기술평가’ 시범사업을 신의료기술평가 대상인 의료기기로 확대 적용하는 ‘단기 및 중장기 개편안’을 건의했다.

단기 개편안은 식약처 허가로 안전성이 확보된 의료기기의 경우 허가 후 건강보험 등재 절차로 진입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 도입 후 3~5년 뒤 신의료기술평가를 하자는 방안이다.

나아가 중장기 개편안은 신의료기술평가 시기를 시장진입 이후로 전환하고 식약처 등 관계기관이나 요양기관·치료재료업체의 필요 또는 요청 시 선별적·예외적으로 사후 평가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신개발 의료기기·신의료기술 시장진입 절차를 ▶의료기기 허가 ▶건강보험 요양급여 등재 ▶급여 여부 및 수가 결정 ▶시장진입 ▶신의료기술평가 ▶급여 여부 및 수가 조정으로 개편하자는 것이 골자다.

의료기기 업계는 ‘의료기기 선 시장 진입-후 신의료기술평가’가 안전성이 확보된 신개발 의료기기·신의료기술의 신속한 시장진입을 견인해 환자 접근성과 국민의 의료 선택권 확대에 일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합의 및 부처 역할·제도 정비 선행돼야

신의료기술 ‘선(先) 사용·후(後) 평가’ 전환은 여야 유력 대선후보 모두 바이오헬스산업 육성과 규제완화를 공약으로 내건 만큼 향후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전례를 볼 때 그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료기기 선(先) 진입-후(後) 신의료기술 평가 전환이 본격 논의된 시점은 약 4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7월 19일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관계부처 합동 ‘의료기기 산업 분야 규제혁신 방안’ 발표 행사장에서 의료기기 산업의 낡은 관행과 제도 및 불필요한 규제 혁파를 강조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부처는 신의료기술평가 등 의료기기 인허가 규제 전면 개편을 골자로 한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발표 내용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이 같은 해 6월 25일 청와대 사회정책실에 제출한 ‘신의료기술평가 제도개선 제안서’를 대부분 수용했다는 점에서 업계로부터 환영받았다.

업계가 제안한 제도개선은 식약처에서 허가를 획득한 안전성이 확보된 신개발 의료기기는 조기 시장 진입이 가능토록 하고, 이후 신의료기술평가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를 수용해 안전성 우려가 적은 의료기기(의료기술)에 대해 ‘선 진입·후 평가’ 적용을 발표해 기존 사전규제 방식에서 포괄적 네거티브, 즉 ‘사전허용·사후규제’ 방식 전환을 공식화했다. 또 체외진단검사 분야 신의료기술평가는 사후평가로 전환하고 체외진단기기 시장진입 소요 기간을 기존 390일에서 80일 이내로 대폭 단축키로 했다.

특히 인공지능(AI)·3D 프린팅·수술로봇 등을 활용한 혁신·첨단 의료기술은 최소한의 안전성이 확보되면 우선 시장진입을 허용한 후 임상현장에서 3~5년간 사용해 축적된 풍부한 임상근거를 바탕으로 재평가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제도개선은 안전성·유효성이 명확히 검증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사전 평가 없이 바로 임상 현장에 적용할 경우 ‘환자 안전’이 우려된다는 일부 시민·환자단체 반대에 직면해 난관에 봉착하며 이후 별다른 진전 없이 사실상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향후 신의료기술 ‘선(先) 진입·후(後) 평가’ 시행을 위해서는 의료기기 업계의 노력과 함께 관련 부처의 역할 재정립과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우선 업계는 시민단체·보건의료노조·의료계와의 긴밀한 소통을 기반으로 선 진입·후 평가 시행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고, 특히 환자 안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대안 마련이 요구된다.

또 의료기기 안전성(식약처)과 유효성 평가(NECA)로 이원화돼있는 역할과 절차를 단일 부처로 통합함으로써 안전성 평가 과정에서 선(先)사용을 위한 유효성까지 동시 평가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안전성을 담보해야 한다.

더불어 사후평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범위를 정해 퇴출 시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절차 수립이 필요하다. 특히 선사용에 따른 의료기기 부작용 발생 시 환자 보상을 위한 ‘책임보험’과 같은 대비책을 제도화하는 동시에 비급여 양산을 방지할 수 있는 가격 통제 기전을 마련해 건강보험 재정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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