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안 브리핑] 범용 인플루엔자 백신 개발 어디까지 왔나?

 "해가 바뀔 때마다 인플루엔자 예방백신을 새로 접종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치명적인 범유행성 전염병(pandemics)의 위협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지금껏 이러한 소망들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새로운 면역학 연구의 장(章)이 열리면서, 조만간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인플루엔자 백신은 인체 내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의 생성을 자극하는데, 이 항체들은 적혈구응집소(hemagglutinin)라는 바이러스 표면의 단백질에 결합하여 감염을 억제하게 된다.

그러나 적혈구응집소는 너무 빨리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하나의 돌연변이체(variant)에 결합하는 항체는 다른 돌연변이체에 대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따라서 백신 생산업체들은 매년 주사약의 성분을 재구성(reformulation)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만일 새로운 동물 인플루엔자(조류 또는 돼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종간장벽을 넘어 인간에게 침투할 경우, 기존의 면역력은 무용지물이 되어 범유행성 전염병을 초래할 수 있다.

범유행성 전염병의 진행을 막으려면 새로운 백신을 개발해야 하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질병의 파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은 인간의 체내에서 한 가지 가능한 해결책을 발견했으니, 그것은 광범위 중화항체(bNAbs: broadly neutralizing antibodies)라고 불리는 신무기다.

bNAbs는 (전부는 아닐지라도)거의 모든 적혈구응집소를 중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HIV 연구분야에서 발견된 bNAbs와 마찬가지로(Science 13 September 2013) 인플루엔자 연구분야에서 발견된 bNAbs는 "단 한 번의 주사로 모든 바이러스를 무찌르는 백신을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도발적인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2008년 네덜란드의 한 바이오 업체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bNAbs가 실제로 존재하며,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메커니즘을 통해 작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험실 및 동물 연구를 통해 bNAb는 H5N1 및 H1N1 바이러스를 모두 중화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여기서 H는 적혈구응집소를 의미한다. H5N1과 H1N1은 둘 다 변화무쌍하고 위험한 바이러스로, 각각 `조류독감`과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을 일으킨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인 항체들이 적혈구응집소의 머리 부분(고도로 가변적인 부분)에 결합하는 것과는 달리, bNAb는 적혈구응집소의 줄기 부분(고도로 보존된 부분)에 결합한다고 한다.

이에 과학자들은 "머리 없는 적혈구응집소를 이용하여 백신을 만들면, bNAb를 자극하여 17개의 상이한 H 아형(subtype)을 중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지만, 줄기만을 보유한 백신을 만든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힘든 과제였다.

"항원의 머리를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극히 어려운 작업이다. 단순히 머리만을 제거할 경우, 머리 없는 적혈구응집소는 저절로 부서지고 만다"고 스위스 Bellinzona 소재 생물의학연구소의 안토니오 란자베키아 박사(면역학)는 말했다.

그가 이끄는 연구진은 2011년 8월 12일 Science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항원의 줄기에 결합하여 모든 H 亞型을 중화시키는 항체를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마운트 시나이 의대의 피터 팔레스 박사(바이러스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Journal of Virology 6월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기존의 문제점을 회피하는 창의적인 방법을 내놓았다.

그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고농도의 bNAb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얼마간의 항체를 만들어 면역학적 기억(immunologic memory)을 형성할 수는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에게서 발견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 줄기와 다른 동물에게서 발견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 머리를 결합하여 키메라 적혈구응집소(chimeric hemagglutinin)를 만들면, 기억반응(memory response)을 자극하는 강력한 백신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설정했다.

마우스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키메라 백신은 근연관계가 없는 다양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을 물리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미 국립 알러지/감염질환연구소(NIAID)의 연구진은 마우스와 페럿을 이용한 동물실험에서, 팔레스 박사와 다른 경로를 통해 인상적인 결과를 얻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bNAbs는 늦게 형성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적혈구응집소가 바이러스의 표면에 운집(雲集)하고 있는 관계로, 줄기 부분이 은폐되어 면역계에 잘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게리 네이블 박사(바이러스학)가 이끄는 연구진은, NIAID의 연구진이 Nature 7월 4일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적혈구응집소와 페리틴(ferritin: 철 저장 단백질)을 융합시켜 자가조립되는 인공 나노입자(artificial, self-assembling nanoparticle)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이 나노입자에는 적혈구응집소가 비정상적인 각도로 박혀 있어 그 줄기가 외부로 노출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 나노입자를 백신으로 이용하면, 강력한 bNAb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이제 백신 생산업체인 사노피(Sanofi)로 자리를 옮겨 최고과학책임자(CSO: chief scientific officer) 직을 맡고 있는 네이블 박사는 조만간 단 한 방에 계절성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이 끝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인체의 면역반응을 원하는 대로 자극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처 : http://www.sciencemag.org/content/341/6151/1171.sh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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