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공모전 끝내 놓고 뒤늦게 명칭변경 유보…"충분한 검토없이 추진"
"효과도 없는 일 대체 왜 하나" 제약업계서도 회의적 반응

한국제약협회가 의욕을 갖고 추진한 '제네릭 의약품 우리말 명칭 공모' 결과 발표가 갑작스럽게 미뤄진 가운데 제약업계에서조차 제네릭 명칭 변경이 아무런 의미없는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제약협회는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6일까지 제네릭 의약품 우리말 명칭 공모전을 진행했다.

협회에 따르면 이번 공모는 제네릭 의약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국민들에게 올바로 정보를 알리기위한 취지에서 비롯됐다.

명칭 공모에는 총 963명이 참여해 1,885건의 새 명칭을 응모했다. 협회는 중복 명칭을 제외한 1,251건을 선정해 예비심사를 거친 후 대한의사협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제약 전문지 관계자 등 모두 9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을 통해 본심사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협회는 지난 11일 열린 이사회 및 이사장단을 통해 명칭을 최종 결정한 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이사장단 회의에서  제네릭 의약품 명칭 공모전 결과 발표를 유보키로 결정했다.

이사장단은 “제네릭은 세계 공동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용어인만큼 우리나라 부처와 언론에서도 이 용어를 상용하는 것 가장 바람직하는 입장을 재확인했다”며 “이 같은 기조 하에서 아직 제네릭 용어가 생소한 국민의 이해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어떤 명칭이 원뜻에 적합하고 익숙하게 사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좀 더 고민해서 정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 지난 11일 제약협회 이사회 및 이사장단 결정사항 중 일부

명칭 변경 영향 등 충분한 검토 부족해명칭 공모전을 시작하기 전에 신중히 검토했어야 할 사항을 뒤늦게 고려한 셈이다. 제네릭 의약품 명칭 공모가 충분한 사전검토 없이 이뤄졌다는 비난을 면키 힘들 것으로 보인다.실제로 제네릭 의약품이라는 명칭은 제약업계 뿐만 아니라 의료계, 정부 행정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관련 기관 및 단체들과의 사전 논의와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다.

공모를 통해 명칭을 변경하더라도 관련 기관이나 단체 등에서 이를 사용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본지가 확인한 결과, 제약협회는 공모에 앞서 의료계는 물론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관련 기관 및 단체에 제네릭 의약품 명칭 변경에 대해 사전 의견조회를 하지 않았다. 

식약처 의약품정책과 관계자는 “제네릭 의약품 우리말 명칭 공모와 관련해 제약협회의 의견조회는 없었다”며 “제네릭 의약품을 다른 용어로 바꾸기 위해서는 기관과의 논의가 필수이지만 아직까지도 이와 관련해 연락받은 건 없다”고 말했다.

심평원 관계자도 “공모 이전에 제네릭 의약품 명칭변경에 대한 의견조회는 없었다”며 “제네릭 의약품 명칭을 변경하고 상용화 하려면 관련 부처와 합의가 필요한데 제약협회 차원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협회가 제네릭 의약품 명칭을 변경하더라도 보건의료 관련 기관에서 이를 사용할 수 있을지 여부도 미지수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오리지날 의약품’이나 ‘제네릭 의약품’ 등의 용어는 법적 근거에 따른 공식명칭이 아니다.

복지부가 고시한 ‘약제의 결정 및 조정 기준’에 따르면 오리지널 의약품은 약제급여목록표에 최초로 해당 투여경로ㆍ성분ㆍ함량ㆍ제형으로 등재된 제품을 의미하는 ‘최초등재제품’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제네릭 의약품은 약제급여목록표상의 투여경로ㆍ성분ㆍ함량ㆍ제형이 동일한 제품을 의미하는 ‘동일제제’가 공식 명칭이다.

실제로 복지부, 심평원 등은 공문에 오리지널 의약품 대신 '최초등재제품', 제네릭 의약품 대신 '동일제제'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약협회가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협의 없이 제네릭 의약품 명칭을 바꿀 경우 오히려 혼란만 초래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높다.심평원 약재평가부 관계자는 “동일재재는 고시에 명시된 용어이기 때문에 공문 등 서류상 그렇게 쓸 수밖에 없고 다른 용어를 쓰는 것은 혼란만 더 야기한다”며 “고시를 개정하는 기관이 공모에 참여하면 공모 결과물을 정책에 공식 반영하기 수월하기 때문에 제약협회가 기관와 함께 공모를 진행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는 제약협회도 일부 인정했다.

협회 관계자는 “제네릭 의약품 명칭을 바꾼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행정기관에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있다”며 “변경된 명칭을 행정용으로 쓰려면 복지부나 식약청, 심평원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같이 검토가 돼야 하는데 공모 이전에 고민이 충분치 않았다”고 털어놨다.

제약업계서도 명칭 변경에 부정적…"의미없는 일로 호들갑"제약협, 기존엔 제네릭 용어 사용 적극 권장제약협회 회원사인 국내 제약사 관계자들 제네릭 의약품 명칭 변경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협회가 효과도 불분명한 제네릭 명칭 변경을 추진하면서 되레 혼란만 초래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내 K제약사 관계자는 “제네릭 의약품이라는 용어가 사회적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데 명칭을 변경해 굳이 혼란을 줄 필요는 없다”며 “협회가 제네릭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려는 것 같지만 실은 무의미하게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제네릭 의약품 용어 사용에 대한 협회의 갈지자 행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협회는 지난 2001년 ‘카피약’이나 ‘복제약’이라는 용어는 제조업체의 창의성과 기술력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모방 분위기를 풍긴다며 제네릭을 사용할 것을 권장한 바 있다.

당시 협회는 “카피약이라는 용어를 대체하기 위해 홍보위원회와 홍보전문위원회에서 수 차례 검토했다”며 “대체용어로 일반약이 마땅하지만 이는 우리나라 의약품 분류체계인 전문약과 일반약의 분류상 용어와 혼돈할 우려가 있어 제네릭으로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사용을 적극 권장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04년에도 협회는 카피약이라는 용어는 제네릭 의약품을 모조품으로 비하해 의약품 품질 불신을 초래할 수 있는 부적절한 용어로 규정하고 제네릭 용어 사용을 적극 권장했었다.

이에 대해 B제약사 관계자는 “협회가 예전에는 의약품에 대한 불신을 없애기 위해 제네릭 용어 사용을 권장하더니 이제는 반대로 제네릭이 잘못된 인식을 준다는 이유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며 “협회의 주장은 앞뒤가 안 맞는다. 10년이 지나면 또 다시 제네릭 용어를 사용하라고 권장하지 않을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제네릭 의약품이 갖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Y제약사 관계자는 “제네릭 의약품 자체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용어 변경은 의미가 없다”며 “제네릭에 대한 인식 제고는 약효 증명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명칭을 바꾼다고 제네릭 의약품이 가지고 있는 한계적 인식이 불식되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오리지널 의약품은 임상시험을 거쳐 출시되지만 제네릭 의약품은 생물학적 동등성만 입증하면 된다”며 “바로 이 점이 제네릭 의약품이 가지고 있는 혜택이자 한계다. 이런 이유로 제네릭 의약품에 대해 무언가를 더 요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의료계에서도 제네릭 의약품 명칭 공모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의협 송형곤 대변인은 “제약협회가 제네릭 의약품 우리말 명칭 공모에 심사위원으로 초청해 가봤더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며 “공모된 명칭 중 (오리지널과 효능이 동등하다는 의미를 담은) ‘똑같은약’, ‘버금약’ 등을 보니 제약협회가 무슨 의도로 공모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송 대변인은 “여러 선진국에서 하고 있는 방법을 통해 제네릭 의약품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생물학적 동등성 및 약효의 동등성을 입증한다면 그렇게 가도 된다”며 “하지만 그게 보장이 안 된 상태에서 성급하게 제네릭 명칭 변경에 접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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