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성균관대의대 강북삼성병원 신경과 교수)

[라포르시안] 치매를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치매의 원인질환만 70여가지에 달한다. 가장 대표적인 치매 원인질환이 알츠하이머병으로, 전체 치매 환자 절반 이상에서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3년 ‘타크린’이라는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도네페질, 리바스티그민, 갈란타민, 메만틴 등 여러 치료제가 개발됐다. 그러나 이들 약물의 효과는 치매 진행을 막거나 치료해 주는 게 아니라 증상을 조금 늦춰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아직까지 알츠하이머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용범 성균관대의대 강북삼성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치료제 개발이 계속 실패하면서 치매 치료도 고혈압 치료 패턴과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약물치료는 치매 환자의 인지기능 악화를 대략 1년가량 지연시키는 효과가 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고령자에게는 의미가 남다를 수 있다. 여기에 생활습관 관리를 병행하면 인지기능 저하를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를 만나 임상 현장에서의 치매 치료 현황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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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매는 어떤 질환인가.

"치매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어 용어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알츠하이머 치매, 혈관성 치매, 루이소체 치매와 같이 질환명에 들어가는 '치매'는 중증도와 무관하게 단순한 병명으로 사용한다. 반면 '경도인지장애를 지나 치매로 넘어간다'라고 표현할 때의 치매에는 중증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 

- 치매 종류별 환자 분포는.

"사실 치매의 원인 질환은 매우 많지만, 알츠하이머형 치매, 혈관성 치매, 루이소체 치매 3가지가 가장 흔하다. 전체 치매 환자의 약 80~90%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알츠하이머형 치매 환자 비중이 약 60~70%로 가장 많다. 각 유형의 치매는 단독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혈관성 치매를 동반한 알츠하이머형 치매, 알츠하이머형 치매를 동반한 루이소체 치매 등 조합 자체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고혈압, 당뇨, 음주, 흡연 등의 관리가 되지 않고 심장질환, 종양 등의 치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전에는 평균 수명도 약 70세 정도로 짧고, 혈관 질환이 조기에 발병한 영향으로 혈관성 치매가 가장 많았다. 하지만 혈압약 복용과 성인병 관리가 중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강해지고 평균 수명이 늘면서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혈관성 치매를 발병률을 추월했다. 앞으로도  혈관성 치매의 비중은 더 낮아지고, 알츠하이머형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80대 중반인 노인 인구 가운데 적게는 1/3, 많게는 절반 정도에서 이미 치매가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다. 증상이 완전히 발현되지는 않았더라도 치매가 진행 중인 경우가 많다."

- 치매의 임상적 단계는 어떻게 나뉘는가.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임상적 단계는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초기, 중기, 후기를 나누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굳이 구분 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초기 치매와 말기 치매의 차이는 극명하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중기인지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치매 선별검사 중 간이정신상태검사(Mini-Mental Status Examination, MMSE)라는 도구가 있다. 이를 통해 치매 의심 환자에게 총 30개의 질문을 하고, 점수 결과에 따라 간단히 20점 이상은 초기, 10~20점은 중기, 10점 이하는 말기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환자의 연령, 교육 수준 등에 따라 결과가 매우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구분이 정확하지 않다. 실제로 젊은 나이에 치매가 발생하는 초로기 치매는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라도 10점대의 낮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드물다. 반면 80~90대 노인은 조금만 진행돼도 10점대의 점수를 보인다. 따라서 치매 초기 단계는 치매 증상이 처음 나타난 시기로부터 1~2년으로 보지만, 중기와 말기 등의 단계는 개인 차이가 커 따로 구분하기 힘들다. 이 외에도 스스로 일상생활이 가능한지를 점수화한 치매임상평가척도(Clinical Dementia Rating, CDR)가 있다. CDR 점수가 0.5일 때 최경도, 1일 때 경도, 2일 때 중등도, 3일 때 중증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 치매를 극복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는 현재 상황에서 치료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치매 치료제 신약 개발이 어렵기 때문에, 현재 시판 중인 치료제를 이용한 약물치료와 비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약물치료가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시판 중인 치매 치료제를 통한 약물치료는 병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효과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이는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치매 약물 복용은 기억에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을 활성화해 기억, 집중력 등을 향상하는 것이다. 그 효과로 기억력이 일부 개선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약물치료를 중단하면 기억력은 다시 약물 복용 이전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착시효과'라고 말하기도 한다. 치매 약물치료는 인지기능 악화를 대략 1년 정도 늦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가 대개 70~80대에 발병한다. 고령 환자들에게 인지기능 악화를 1년 늦추는 것은 꽤 큰 의미가 될 수 있다. 또한, 환자와 환자 가족들의 치료 의지를 북돋기 위해 이 부분을 강조하기도 한다."

- 치매 약물치료의 역할은 무엇인가. 

"약물치료를 시작해도 뇌 기능 퇴행 속도는 일정하게 유지된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약물치료를 통해 인지기능 악화를 약 1년 정도 지연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치매의 약물치료는 환자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상태를 조금이라도 덜 악화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인지기능 저하를 1년 늦추는 것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환자의 남은 수명이 10년라고 가정하면 1년은 여생의 10%에 해당한다. 또한, 평균 1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 환자에서는 더 크게 효과가 나타나는 사례도 있다.

아직 약물치료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군과 그렇지 않은 환자군을 예측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은 없으며,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약물치료의 효과가 나타나는 환자군과 그렇지 않은 환자군이 반반이다."

- 앞으로의 치매 치료가 흘러갈 방향을 어떻게 보고 있나. 

"1990년대 도네페질 등장 이후 더 나은 효과를 입증한 치료제가 없고 치매 치료제 개발은 계속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당분간은 치매 치료도 고혈압 치료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고혈압의 경우 합병증을 피하면서 질환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치료법을 연구해왔다. 다양한 치료제 개발과 더불어 운동이나 생활습관 개선, 콜레스테롤 감소 등 고혈압과 그에 동반하는 합병증 경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조절하는 데 집중적으로 노력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을 통해 치명적 합병증을 막아왔다. 

과거 치매 치료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 쌓이고,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독성에 의해 세포가 죽어 간다'는 가설에 따라 아밀로이드를 제거하는 항체나 약물 개발에 집중했다. 그러나 일부 약물이 아밀로이드 단백질 제거에 성공했음에도 치매 증상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좌초했다. 이후 비약물적 요법, 즉 생활습관 개선이나 치매 위험인자 관리 등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생활습관 관리, 운동요법, 인지 훈련 등 질환 관리 영역의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2009년부터 약 5년간 핀란드에서 1,200명의 노인 인구를 대상으로 인지장애 예방이나 지연에 위험인자 및 생활습관 관리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 진행한 'FINGER Study'에 따르면 ▲운동 격려 ▲인지 교육 ▲고혈압 및 당뇨 등의 철저한 기저질환 조절 상담을 통해 노인들을 관리한 결과,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를 보면 혈관계 위험인자 및 건강에 유해한 생활습관을 관리하는 것이 인지기능저하 예방 가능성을 높이며, 인지기능 장애 위험이 높은 환자를 조기에 확인해 발병 예방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치매 치료제를 선택할 때 어떤 부분을 고려하는가.

"도네페질은 투약 초기의 위장장애를 제외하고는 부작용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장 널리 사용하고 있다. 1997년 도네페질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이후, 약 150~300개의 치매 치료제 신약 개발이 시도됐지만, 아직 도네페질만큼의 효과를 입증한 약물은 없다. 메만틴의 경우 인지기능 개선 효과도 있으나 불안증이나 강박, 집착 등의 행동 증상 완화에서 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상행동을 동반한 인지장애 환자의 경우 도네페질과 메만틴을 같이 사용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이 외에도 갈란타민이나 리바스티그민 등의 약제가 있으며, 도네페질과 반감기나 부작용 등이 약간씩 다를 뿐 효능 및 효과는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이중 리바스티그민은 1일 2회 복용하는데, 기억력이 떨어진 환자들에게서 투약 순응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도네페질은 1일 1회 복용으로 출시되면서 투약 순응도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리바스티그민은 복약 순응도가 떨어지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패치제를 선보였다. 패치제는 위장을 통과하지 않기 때문에 위장 부작용이 적지만 피부 트러블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갈란타민도 초기에는 1일 2회 복용으로 출시됐으나, 1일 1회 복용할 수 있도록 서방형이 추가 개발됐다. 그러나 효능 및 효과가 도네페질과 비슷한 수준이고, 이미 진료 현장에서 도네페질 사용 경험이 오래 축적되었기 때문에 약물 변경은 많은 것으로 기억한다." 

- 치매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치매를 두려워하는 것은 편견에 해당한다. 치매라는 질환을 환자의 입장에서 설명하면 '모두 잊어버리는 병'이다. 치매는 과거를 잊어버리고 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이 상태의 환자는 불행하다기보다 평온한 상태라고 볼 수도 있다. 이후의 고통은 환자 가족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따라서 환자의 증상이 악화할수록 환자보다는 가족과 상담을 진행하는 편이다. 

치매의 약물치료는 병원에서 담당하지만, 생활습관 관리 등 비약물치료는 가정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해야 한다. 치매 예방과 관리를 위해서는 인지기능수칙인 'PASCAL'을 기억해야 한다. 생활습관이 인지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개발된 수칙인데, 신체활동(Physical activity), 금연(Anti-smoking), 사회활동(Social activity), 인지활동(Cognitive activity), 적당한 음주(Alcohol drinking in moderation), 적당 체중(Lean body mass), 뇌건강식사(Healthy diet)를 의미하는 생활습관별 영문 알파벳 앞글자를 따서 명명했다. 다만, 환자 스스로 실천이 어려울 수 있어 가족들이 PASCAL 수칙을 기억하고 환자가 실천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지하고 응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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