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편의증진센터 조사 결과, 병원·공공기관 편의시설 설치 크게 미흡

▲ 출처 : SBS 드라마 홈페이지 이미지 캡쳐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여주인공 '오영'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외출할 때면 늘 흰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극중에서 여주인공이 사람들이 붐비는 공중시설에서 시각장애로 인한 불편을 겪는 장면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아마도 그 여주인공은 드라마가 아닌 현실이라면 더욱 큰 불편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8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에 들어간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 설치가 미흡해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의료기관 역시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아 장애인들의 건강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산하 시각장애인편의증진센터에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규정에 따른 '정당한 편의' 제공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인천국제공항,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국민연금공단 등 8곳을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14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상의 시설물 접근ㆍ이용의 차별금지, 이동 및 교통수단 등에서의 차별금지 항목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확인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내부에서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진료실과 승강기에 점자표지판이 전혀 설치되지 않아 시각장애인의 시설이용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병원에서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돕기 위해 설치한 점자블록은 스텐리벳돌기 재질로 돼 있어 미끄럼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서울아산병원은 접근로 주위에 보행장애물이 있어 시각장애인이 보행할 시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고, 주출입구까지 설치된 점자블록은 폐문으로 유도하고 있어 실제로 이 길을 시각장애인이 점자블록에 의지해 보행할 경우 사고 위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설치돼 있는 점자블록은 이격거리 및 재질이 기준에 부적합하고, 점자 안내판의 점자표기방식 또한 기준에 부적합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대병원도 서울아산병원처럼 외부에서 주출입구까지 점자블록이 폐문으로 유도하게끔 설치돼 사고를 유발할 수 있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안내판, 음성유도기가 전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실내 진료실에는 벽면 점자표지판이 설치되지 않았으며 승강기 조작반 및 계단 전면에도 점형블록이 없었다.  

▲ 점자블록이 사용하지 않는 폐문으로 유도하게끔 설치된 한 대형병원 출입문 모습. 사진 제공 : 시각장애인편의증진센터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부 역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가 미흡했다.

건보공단의 경우 주출입구에 규격이 맞지 않는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으며 점자안내판은 있지만 찾기 힘든 격리된 곳에 있었다.

화장실의 경우 올스텐 리벳 돌기형의 점형블록이 입구 전면에 설치돼 있어 휠체어 사용자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민연금공단 본부 역시 시각장애인의 안전한 유도를 위해 설치한 점자블록이 정규격이 아닌 이형블록으로 설치돼 있어 실질적인 기능성이 결여돼 있었고, 주출입문도 상시 사용하는 문이 아닌 고정문으로 유도하도록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었다.

근로복지공단 본부는 주출입구 접근로까지 보행도로와 차도가 구분돼 있지 않아 사고 위험이 있으며, 시각장애인용 안내시설인 점자안내판이 설치돼 있긴 하지만 점자표기방식이 부식형이라 촉지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밖에 인천국제공항과 서울고속버스터니널 역시 점자블록이 설치돼 있지 않거나 설치돼 있더라도 시각장애인에게 실질적인 이용편의를 제공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다.

센터는 "이번 현장 조사에 사용된 점검표와 지침은 권장 차원이 아니라 편의증진법과 교통약자법에서 정한 의무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사항"이라며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위해 모든 생활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편의시설을 단순히 확충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으로 편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센터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관련 편의시설 모니터링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4~6월 사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제주 등 전국 6개 도시의 의료기관 158곳을 대상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휠체어 사용자를 고려한 통과유효폭, 엘리베이터 설치 등은 90% 이상이 기준을 만족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주출입구 점형블럭, 점자안내판 설치 충족률은 20%~60% 수준으로 미흡했고, 휠체어 사용자를 고려한 낮은 접수대 설치는 40%에 그쳤다.

의료행위 관련 편의제공 부문에서는 의료기록의 점자 및 확대문서 형태 제공은 25% 수준으로 매우 미흡했고, 의료행위 시 수화통역 및 화상전화서비스 제공도 25%로 서비스 제공 수준이 상당히 낮았다.

의료기관 홈페이지 정보 접근성에 있어서 시각장애인이 웹을 통해 진료 예약이 가능한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비율은 20%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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