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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의권천부설’, 한국 의사사회의 낯뜨거운 기억
  • 김상기 편집부국장
  • 승인 2013.01.2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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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권의 인상적인 책을 읽었다. 한 권은 미국의 과학·의학분야 전문저술가인 존 퀘이조가 지은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이다. 다른 한 권은 의학사가인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와 의철학자인 강신익 인제대 인문의학연구소 소장이 나눈 대화를 풀어낸 ‘의대담(醫對談)-교양인을 위한 의학과 의료현실 이야기'란 책이다.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는 히포크라테스부터 공중위생, 백신, 항생제, 그리고  통합의학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바꾼 의학의 혁신적인 10가지 발견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심도 있게 다뤘다. 또 ‘의대담’은 황상익 교수와 강신익 소장이 2010년 6월부터 8월까지 네 차례 만나 의료의 현실과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법을 찾아 나눈 대담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콜레라는…’은 마치 추리소설 같다. 지금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는 의학적 성과가 누구에 의해, 어떤 노력을 거쳐 세상의 빛을 보게 됐는지 그 과정을 흥미롭게 추적한다. 특히 본문 2장의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 공중위생의 발견’ 편을 보면 새로운 의학적 성과가 인정받고 실제로 적용되기까지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금이야 콜레라가  물이나 음식물에 들어 있는 세균에 의해 전염되는 ‘수인성전염병’이란 개념이 의심의 여지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유럽에서는 어림없는 이론이었다. 미생물학이 태동하기 전인 19세기 초중반의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것은 바로 ‘미아즈마’(miasmaㆍ나쁜 공기나 기운) 이론이었다. 콜레레와 같은 전염병이 늪지대나 하수구, 화산 등에서 나오는 미아즈마에 의해 발생한다는 믿음이 굳건했다. 의사 사회 역시 미아즈마 이론을 신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30대 중반의 의사였던 존 스노우는 이런 믿음을 뒤로 하고 콜레라가 접촉성인 동시에 오염된 물에 의해 전파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10년이 넘는 오랜 시간동안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어떻게 전파되는지 규명하는 데 매달렸고, 결국 콜레라가 오염된 물에 의해 전파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 의사 사회는 스노우의 이런 성과를 거부하는 대신 미아즈마 이론을 여전히 신봉했다. 스노우가 ‘근대 역학의 아버지’로 평가받게 된 것은 그보다 한 참 뒤의 일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역자 중 한 명이 황상익 교수다. 그는 책의 서평에서 "의학 교과서에 땀과 눈물이 담겨 있지 않은 페이지란 없다. 아니, 단 한 줄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고뇌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과연 그렇다. 인간이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그 지평을 넓혀나가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의학사가 보여준다.

또 다른 책 ‘의대담’은 단편적으로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의학사가와 의철학자가 만나 '대한민국의 의료(의학)는 건강한가'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으니 그 대화의 맥락을 따라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다만 흥미로웠던 내용은 ‘한국 의료문화의 역사‘란 소제가 붙은 3장이었다. 그 중에서도 ’근대적 병원과 의사의 탄생‘ 편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들은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서양에서 근대적 의학교육 체계가 정립되고 지금처럼 국가로부터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의사면허를 부여받게 된 과정을 ’의사들이 의료서비스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싸워온 투쟁의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른바 ’의료전문주의‘ 형성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사회적 지위를 쟁취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의사 사회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일방적으로 주어진 의사면허제도였기 때문에 의사의 독점적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의사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 예로 지난 2000년 의사파업 당시 나왔던 ‘의권천부설(혹은 의권신수설)’을 든다. 의사의 권리는 하늘이 준 것이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 의권 천부설이다. 저자들은 이를 의학과 의료를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하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서양의 의사 사회가 비과학적, 반의학적 이론이나 환경과 싸워가며 굳건한 의학적 스페트럼을 구축한 결과물로 독점적 의사면허를 부여받았다면 한국의 의사 사회는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런 탓에 의사 직업의 전문화는 이뤄졌지만 의료전문주의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했다.  문명을 구한 것은 과학과 결합해 의학적 발견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싹 튼 의료전문주의였다고.

우리의 역사 속에서 의사집단이 국가, 혹은 지역사회와 공적인 관계를 맺고 사회적 지위를 스스로 형성하는 과정을 겪지 못했음은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다. 그나마 2000년 의약분업 도입과 의사파업을 거치면서 의사 사회는 백년이 넘는 자영업자 의식에서 깨어났다. 뒤늦게 의료전문주의에 눈을 돌렸다. 지난 수년 간의 잇따른 대정부 투쟁과 자정선언은 아마 그러한 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역사적으로 생략된 의료전문주의 형성과정을 뒤늦게 메우려다 보니 수많은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선후가 바뀐 탓에 외부로부터 불신을 받기도 한다. 의사의 진료권 보장이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다고 말하지만 늘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벗어나는 일이 어디 쉬울까 싶다. 뒤늦게나마 불붙은 의료전문주의로의 인식의 전환 노력이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길 고대한다. 

김상기 편집부국장  bus19@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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