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는 살인인가 / 토니 호프 지음 / 김양중 옮김 / 한겨레출판 펴냄

건강보험공단과 대한병원협회가 올해 수가협상에서 “협회는 만성질환 예방 및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등 국민운동을 전개한다. 단, 목표지표를 설정하고 그 성과에 대한 별도의 인센티브를 고려할 수 있다”는 부대합의문을 채택해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바 있습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줄이게 된다면 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경제논리로 접근했기 때문에 나타난 심각한 반작용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만약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라는 화두를 환자 입장에서 고려했더라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요? 2008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었던 김할머니 사건에서 재판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달라는 자녀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인공호흡기를 떼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습니다. 우리의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생명권과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할 가치로 보았던 것입니다. 비록 연명치료를 중단함에 따라 환자의 생명이 단축된다고 하더라도 진료행위를 통하여 인위적으로 환자의 신체에 개입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에 따라 죽음에 이를 수 있다면, 이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부합한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만약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관한 사항을 경제적 이슈가 아니라 김할머니 사건에서처럼 의료윤리적 이슈로 전개하였더라면 오히려 긍정적 반응을 얻었을 것입니다.

의료윤리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의료윤리문제라고 하면 안락사, 낙태, 체세포복제와 같은 굵직굵직한 이슈를 떠올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범위가 의외로 광범위하다는 점을 알게 되면 평소에 윤리적 문제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소개하는 옥스퍼드대학교 의료윤리학 토니 호프교수의 <안락사는 살인인가?>에서 일상적인 의료행위에서 만날 수 있는 윤리적 문제를 볼 수 있습니다. 같이 고민해보시겠습니까.

당신의 환자 가운데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급성 중증질환이 생겼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급성기 병원으로 이송하여 최신 의약품을 포함하여 가능한 모든 치료를 받도록 하시겠습니까? 만약 가족들이 집에서 요양하도록 해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경우에는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환자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답을 적용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환자의 질병상태와 환경을 최대한 고려하여 환자에게 최선이 될 방안을 결정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토니 호프교수의 <안락사는 살인인가?>에서는 다양한 의료윤리문제들 가운데, 안락사, 유전학, 인공임신시술법, 자원분배, 정신보건, 의학연구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저자가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데 적용한 논리를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의 논리에 반드시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겠습니다.

첫 번째 이슈는 책의 제목에도 인용되고 있는 안락사문제입니다. 저자는 자발적인 적극적 안락사가 원칙적으로 그릇된 것이라는 견해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적극적 안락사란 시술자가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여 시술을 받은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경우를 말하는데, 자발적인 경우는 사리분별력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적극적 안락사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연명치료를 중단하여 자연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소극적 안락사에는 동의하는 입장입니다.

그것은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것처럼 적극적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는 살인이 윤리적으로 그릇된 것이라는 기본원칙에 동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환자가 오랫동안 엄청난 고통을 받는 것보다 당장 죽는 것이 환자에 가장 이롭다면, 살인이 더 이상 그릇된 것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적극적 안락사가 원칙적으로 그릇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살인이 그릇된 것이라는 개념과 죽음이 해롭다는 개념 간의 연관성을 망각한다.(47쪽)”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환자가 호소하는 엄청난 고통의 크기가 과연 인위적으로 죽음을 앞당겨야 할 정도인가를 판단하는 일을 틀림없이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에 답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안락사 반대론자들이 사용하는 논증의 예로 “당신들의 입장은 나치주의 신봉자들의 견해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당신들의 입장은 완전히 비윤리적이다.(23쪽)”라는 ‘나치카드 활용하기’를 예로 든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보건자원의 분배에 관한 이슈를 다루고 있는 ‘통계상’의 익명자들이 죽지 않도록 예방하는 조치를 논하면서 저자는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군고위층은 자식들을 전쟁터로 보낸 어머니를 위하여 하나 남은 막내아들을 전쟁터에서 불러내야 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한 명의 병사를 전쟁터에서 불러내기 위하여 여덟 명의 병사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은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인공수정시술은 불임부부들의 고통을 해결해주고 있습니다만, 윤리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도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탈리아까지 날아가 인공임신시술을 받아 쌍둥이를 출산한 59세의 영국여성의 사례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인간의 수정 및 배아발생에 관한 법’은 꽤나 엄격해서 장차 태어날 아이들의 복지에 대한 우려 때문에, 너무 나이든 여성은 인공임신시술을 받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인공임신시술을 입양과 유사한 측면이 있는지 비교하고 또한 인공임신시술은 존재하는 경우와 존재하지 않는 경우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를 입양을 원하는 여러 부모를 비교하여 최선의 조건을 갖춘 부모에게 입양을 보내는 것과는 달리 인공임신시술은 제한된 자원을 두고 피시술자가 경쟁하는 구도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시술을 통하여 태어날 아이가 문제의 부모에서 태어나는 경우와 문제의 부모에서 태어나지 않은 경우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비교 가능한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노령의 여성에게 인공임신시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이가 불행해질 것이라는 추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그 추론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타당한가하는 문제와 함께 임신을 원하는 여성의 행복추구권 역시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일상적인 의료행위에서 윤리적 문제에 직면하였을 때 결심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추론의 도구들을 예시하여 설명하고 있어 이를 활용하면 많은 도움을 얻을 것 같습니다. 먼저 윤리적 명제에 적용하는 논증은 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들의 집합이므로 논리적으로 옳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추론이 가능하려면 개념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개념분석에는 정의 내리기, 개념 명료화, 차이 구별, 서로 다른 두 가기 개념 간의 유사성 확인이라는 네 가지 유형을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의료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은 무엇이 환자를 가장 이롭게 하는 것인가를 고려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서 서로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 결정의 윤리적 차이를 분명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하며, 윤리적으로 모순이 적은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이처럼 무모순성을 결정하는데 있어 가상적 사례를 사용하는 ‘사고실험’을 활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의료의 네 가지 원칙에 입각한 추론을 통하여 좋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데, 네 가지 원칙으로는 1. 환자의 자율성 존중, 2. 환자에게 최대한 베푸는 선행의 장려, 3. 악행 금지, 4. 분배 정의, 법 존중, 권리, 보복적 정의 등 네가지 요소로 구성되는 ‘정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추론상의 오류 찾기는 의료윤리에서 매우 유익한 훈련이라고 합니다.

최근 들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범죄와 관련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영국법률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형법은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행위를 한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으려면 해당행위를 한 자가 바로 이 자여야 하며, 이 사람이 그 행위의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전제를 충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범죄행위와 범행의도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신질환자의 범죄행위의 피해자 입장에서는 수용하기가 쉽지 않겠습니다만 온전하지 않은 정신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라는 점에서 범행의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죄판결을 받게 되는 자유주의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저지른 범죄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위험한 인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켜 치료를 받도록 하는 적극적 조치에 대하여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므로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대립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저자는 환자가 자신에게 이롭다고 할 수 있는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권리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개인의 권리를 일정 수준에서 제한함으로서 권리의 형평을 추구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국의 정신보건법에서도 정신질환자의 보건이나 안전을 위해서나 타인들의 보호를 위하여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치료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 같은 규정이 정신질환자를 차별하는 처사라는 입장에 서는 것으로 보입니다.

의학연구에 관해서는 신약의 임상시험에 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미래의학을 위한 연구는 일정부분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위험을 이유로 연구조차 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면 의학의 발전은 매우 더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경우에 한하여 임상시험이 허가되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간 전문가들이 심각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는 카바수술에 대한 판단을 구체화하는데 있어 참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관심이 가는 이슈입니다. 제한된 지면에서 카바수술 임상시험의 타당성을 논하는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입니다만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들의 안전을 위한 제반규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신약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임상시험에서도 윤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약이 기존의 치료약을 대체하게 되는 경우에는 기존의 의약품과 대조시험을 하게 되기 때문에 신약의 안전성 부분에 대한 윤리적 판단의 무게가 실리게 됩니다. 하지만 대조약이 없는 신약의 경우에는 효능을 비교하기 위하여 대조위약을 사용하게 되므로, 치료효과를 기대하면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환자들 가운데는 치료효과가 없는 대조위약을 먹게 되는 대조군에서의 윤리적 타당성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빈곤국에서 실시되고 있는 에이즈 치료약물에 대한 임상시험의 윤리적 판단을 함에 있어 부유국에서의 임상시험과 차별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 불편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즉,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부유국에서 실시되는 임상시험에서 어느 환자든 위약을 받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빈곤국에서 실시되는 임상시험에서는 치료약을 받는 사람이 누릴 치료효과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논리의 형평성을 잃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윤리적 판단을 함에 있어 개인에 따라 시각차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상황에 따라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알림> 『'양기화의 Book소리' 소셜댓글 이벤트를 당분간 중단토록 하겠습니다. 내부적인 검토를 거쳐 더 많은 독자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해 빠른 시일 내에 도서증정 이벤트를 재개토록 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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