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전환·기금모금 활성화 등 만만찮아…"근본적으로 공정경쟁규약 완화돼야"

지난 2010년부터 의약품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이 시행된 이후 제약사의 재정적 지원이 어려워져 학회 활동이 상당히 위축된 가운데 대한의학회가 대안 모색에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 

의학회는 오는 22~23일 열리는 임원아카데미에서 ‘학회의 재정 운영과 개선 방향’이라는 세션을 통해 공정경쟁규약 발효 이후 팍팍해진 학회 살림살이를 어떻게 꾸려갈지 논의할 계획이다.

의학회 김동익 회장은 지난 20일 학회 뉴스레터를 통해 “공정경쟁규약으로 인해 작년부터 우리 의학계는 큰 어려움과 변화를 겪고 있다”며 “공정경쟁규약은 리베이트 방지를 위해 발효되고 있지만 학회의 학술활동과 관련된 사항이 많아 학술진흥 차원에서 이러한 규약이 우리나라 의학발전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넓은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화된 공정경쟁규약 탓에 학술대회장에 설치하는 부스 설치 기준이 까다로워지고, 제약사가 기부할 학회를 직접 지정하지 못하게 되면서 등 각 학회마다 재정상 어려움을 겪어왔다. 

해외학회는 물론 대국민 홍보캠페인 등의 지원도 눈에 띄게 줄면서 학회 발전과 국민 건강 향상에 기여하는 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려대의대 병리학교실 최종상 교수(의학회 감사)는 공정경쟁규약과 관련해 “학술대회 장소를 호텔로 정하는 것부터 점심 제공 등 과거보다 지원 기준이 복잡해져 학회 활동에 브레이크를 건다”며 “학회 자부담 규약이 있음에도 이중으로 규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놨다”고 불만을 호소했다.  

학회들은 공정경쟁규약으로 인한 적자 보전의 한 대안으로 법인 설립을 추진하는데 눈을 돌리기도 했다.

실제로 의학회에 소속된 학회 152곳 중 20여곳이 법인으로 등록돼 있으며, 이 중 최근 몇 년간 재단법인을 설립한 학회는 10여곳에 이른다.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으로 전환하면 기부자가 기부금 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어 출연이나 기부를 받기가 수월해진다.

반면 법인 등기를 위해선 일정한 요건을 갖춰 복지부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허가요건도 까다롭고 설립준비금도 수억원 이상 필요해 재정 상황이 어려운 학회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재단법인이 된다 하더라도 제약사 등으로부터 기부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대한당뇨병학회 차봉연 이사장은 “재단법인을 설립한 이후 외국제약사 등을 비롯해 자발적으로 기부를 하는 제약사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기부 처리를 하는데 있어 수월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학회 활동에는 선뜻 기부하기 어려워하는 건 여전하다. 공정경쟁규약 개선없이는 재단법인 설립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 매년 9억달러에 달하는 기금이 모이는 American Cancer Society(미국암학회) 홈페이지.

떳떳하게 재원을 확충할 수 있는 기금모금(fund-raising) 방식도 학회 재무 활성화의 또 다른 대안으로 언급된다.

학회가 단순히 제약사의 협찬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있는 펀드레이징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연세의료원 등 의료기관 및 비영리단체의 기금모금을 컨설팅하고 있는 ‘도움과 나눔’의 최영우 대표는 “학회는 회원 개인보다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을 어필해 기금모금을 끌어내는 훈련을 할 필요성이 있다”며 “학회가 사회로부터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은 당당히 요구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방암 예방을 위한 ‘핑크리본’ 행사 등 대국민 홍보 캠페인이나 질환 연구 등 학회가 공익적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을 극대화해 반드시 제약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분야의 기업 등 잠재 기부자를 발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의학 연구 및 환자 치료 지원을 위한 공익적 활동에 기금을 모금하고 제공하는 비영리단체들이 활성화돼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암협회(American Cancer Society)를 들 수 있는데, 이 협회는 암환자 케어를 비롯해 암 역학 조사와 효과적인 암 예방을 위한 행동 연구 등 암 예방 및 치료법 개발에 연간 1억3,000만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암협회의 연간 기금모금액은 9억달러에 육박한다. 작년 기준으로 기금모금 건수만 840만건에 달하고, 이 중 개인 기부(평균 48달러)는 650만건을 차지했다.

최 대표는 “우리도 미국암협회와 비슷한 형태의 비영리단체들이 있지만 대부분 환자 지원에만 머물고 있다”며 “따라서 학회가 의지를 갖고 큰 의료 차원에서 펀드레이징 체계를 갖추는 미션을 장기과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근본적으로 국민건강을 증진하는 홍보 캠페인을 지원하고 학회의 특성을 고려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정경쟁규약이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당뇨병학회 차봉연 이사장은 “당뇨병은 대표적인 만성질환으로 장기적인 건강습관을 알리는 지속적 대국민 홍보 캠페인이 필수”라며 “당뇨병학회의 경우 의사부터 간호사, 영양사 등 여러 직종의 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지 않은 규제 일변도의 공정경쟁래규약은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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