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재상(보라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촉탁의)

 

이번 국정감사에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인력 부족 사태가 지적받았다고 합니다. 현재 직원 1명이 하루 7천건을 심사하는 상황이라고 하죠. 참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된 심사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생김과 동시에, 다른 의문이 드시진 않으세요. '과연 심사평가원에서는 무엇을 심사하는 걸까?' 하는 질문이요. 막연하게 의사들의 진료와 처방을 심사한다라고 알고 계시겠지만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실 겁니다.  

이렇게 운을 띄워 놨으니 심평원의 심사 업무를 소개하는 글이 나오는 게 당연지사겠습니다만, 사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런 글은 안 나올 겁니다. 사실 의사들도 잘 모릅니다. 심평원에서 대체 심사를 어떻게 하는 건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요? 간단합니다. 심평원에서 정확한 심사 기준과 심사 사례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지적됐습니다. 여기에 대해 심평원은 "심사 사례를 공개하면 진료비를 과다하게 청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자,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간단한 비유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과속 단속 카메라가 설치된 쭉 뻗은 도로가 있습니다. 이 곳을 차를 몰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이 도로의 제한속도가 애매합니다. 그냥 80km/h가 아니라, '80km/h이지만, 급한 일이 있을 때는 90km/h 이상도 가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급한 일'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궁금한 운전자들이 문의를 합니다. "어떨 때 90km/h 이상으로 달려도 되는 겁니까?" 그러자 경찰서에서 답하기를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가능한 상황을 일일히 알려드리면 거기에 딱 맞춰 편법으로 지나가는 차량이 많아져 사고가 증가할 것 아닙니까. 그냥 적당히 지나가시면 우리가 알아서 단속 할테니 신경 끄세요" 이게 지금 심평원에서 정확한 심사 기준과 심사 사례를 공개하지 않는 이유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심평원의 규정에는 이와 유사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계속해서 도로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3대의 자동차가 그 도로를 달려갑니다. 첫번째 자동차가 비상 깜빡이를 켜고 도로를 100km/h로 달려가는데 카메라에 찍히지 않습니다. 두번째 자동차는 80km/h로 달려갔는데 역시 찍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번째 자동차가 이 도로를 마찬가지로 비상 깜빡이를 켜고 90km/h로 달려가는데 카메라가 깜빡합니다. 며칠 후 세번째 자동차의 운전자는 과속 범칙금 통지서를 받습니다. 물론 100km/h로 달려간 첫번째 자동차의 운전자는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습니다. 웃기죠? 심평원의 심사에서는 이런 일이 허다합니다. 물론 의료기관에는 범칙금 통지서 대신 '삭감' 통보가 날아오죠.

'삭감'이란 말을 정확히 이해 못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의사들은 진료를 하고 처방을 한 다음 환자에게 일부 본인부담금을 받고, 나머지 금액을 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해 받습니다. 이게 '보험 청구'입니다. 즉 ‘의사의 수입(보험 수가) = 본인부담금 공단 청구 금액’이 됩니다. 간혹 의사들이 '의료수가 인상'을 말할 때 왜 환자에게 받는 금액은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사실 의료수가는 환자 부담금이 포함된 금액입니다.

그런데 심평원에서 심사를 통해 의사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진료를 한 치료 또는 처방이 심평원의 지침에 맞지 않는다라고 생각이 되면 "이 의사는 과잉 처방을 했으니 이 처방에 대한 수가는 줄 수 없을 뿐더러, 환자가 낸 돈도 물어내라"라고 하게 됩니다. 이게 '삭감'입니다.(심평원에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기준과 사례입니다) 그리고 이 삭감 내역을 가지고 연말 즈음에 "병의원의 과잉 진료가 심각하다"라고 발표하는 거죠.

더욱 큰 문제는 삭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처방이나 치료를 하기 전 심평원에 연락을 하면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환자에게 이 행위를 하는 게 보험이 되는지 연락해 물어보면 심평원 답변은 대부분 이렇습니다. "의사선생님들 판단에 따라 쓰시면 됩니다" 그래서 다시 묻죠. "판단이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보험이 된다는 겁니까?" 그럼 대개 이런 답변이 나옵니다. "그건 그 때 그 때 다른데, 저희가 일일이 알려드릴 수는 없죠. 현장에서 판단하셔야죠"

이 뿐만이 아니라, 환자가 문의했을 때와 의사가 문의했을 때 답변이 다른 경우도 자주 접합니다. 환자가 문의했을 때는 보험이 가능하다고 대답해놓고, 의사가 보험 청구를 하면 삭감되는 경우도 많죠.

그렇다면, 정말 심평원이 정한 요양급여비용 심사기준에 맞지 않으면 '과잉 진료'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왜냐고요? 심평원의 심사기준은 '의학'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경제 논리'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올해 초부터 심평원은 재미있는 기준을 하나 만들었는데요, '12세 이상 환자에게 시럽제제를 사용하면 보험이 되지 않는다'라는 기준입니다. 시럽제제가 12세 이상 환자에겐 효과가 적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시럽제제가 '비싸기' 때문입니다. 12세 이상 큰 아이에게는 비싼 시럽보다 싼 알약을 주라는 것이죠.

그런데 말이죠, 소아들의 성장은 개인차가 있습니다. 어떤 소아는 10세인데도 성인처럼 커서 알약을 잘 먹습니다. 또 어떤 소아는 만 12세인데도 아직 알약을 삼키기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12세 이상이면 다 알약을 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서는 있지요. '연하곤란(삼킴 장애)이 있는 환자에겐 인정'이라는 겁니다. 이제 어떻게 되는지 아시겠죠? 12세 이상 환자에게 시럽제를 쓰고 싶으면 병명에 '연하곤란' 코드가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자, 의사가 환자를 진료한 후 이 환자가 알약을 먹으면 되겠다 생각되면 굳이 시럽제를 쓸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로 나이가 있어도 알약 삼키기 힘들다고 하면 시럽제를 주면 되는 거죠. 이걸 굳이 12세라는 기준을 정해 멀쩡한 소아를 연하곤란 환자로 만들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의사의 재량에 맡기면 되는 문제죠. 그런데 이 기준 하나 때문에 의사는 편법을 동원해야 하고, 이걸 심사하는 인력이 심평원에는 필요하게 되는 겁니다.  

더 기가 막힌 건 심평원의 심사기준을 적용하는 방식이 '복불복'이란 점입니다. 연하곤란 코드를 넣어도 어떨 땐 삭감 되고 어떨 때는 안 됩니다.(주로 많이 사용하면 삭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평원이 심사 사례를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 짐작이 가시나요?

비슷한 사례는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정장제'는 6세 이하에서 설사를 유발하는 항생제 사용 때나 감염성 설사에만 사용 가능합니다. 물론 '감염성 설사'는 증명을 해야 하기 때문에 (피 검사 및 배양 검사) 실제로는 6세 이하 항생제 사용 때만 사용 가능하죠. 그럼 6세 이상은 효과가 없을까요? 아니죠. 효과가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이건 '의학적인 기준'이 아니라 '경제적인 기준'이니까요. 그럼 생각해 봅시다. 이런 기준을 어겨서 6세 이상의 환자에게 정장제를 처방하면 그게 '과잉 진료'일까요?

이번 국정감사에서 지적 된 덕분에, 내년부터 심평원에서 '일부' 사례들을 공개한다고 합니다. 물론 얼마나 개선이 될지, 얼마나 공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심사 인력이 부족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쓸 데 없는 규정들을 정리하고 심사 과정을 좀 더 효율화시킬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겁니다. 이런식으로 몸집을 키우고, 그러니 호화 청사가 필요하고, 이렇게 늘어난 공무원들은 또 철밥통 논란이 나오는 게 아닐까요. 이제 그 고리를 끊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은재상은?

2007년 가톨릭의대 졸업 후  서울성모병원에서 인턴 과정 수료2008년~2011년 4월 군의관 복무. 현재 보라매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촉탁의로 근무하고 있다.

<*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부 필진의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의견을 보내주시면 적극 반영토록 하겠습니다(bus19@rapportian.com). 혹은 기사 본문 하단의 '독자 첨부뉴스'를 통해 반론이나 의견을 게재할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라포르시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