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산책 / 창홍 지음 / 정유희 옮김 / 시그마북스 펴냄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분야를 많이 알지 못한다는 말씀을 자주 드립니다만, 그래도 해외여행이라도 하게 되면 그 곳에 있는 미술관은 열심히 찾아다니는 편입니다. 아마도 유명하다는 작품을 나도 보았다고 내세우기 위한 문화적 허영심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녀본 미술관 가운데 세계3대 미술관에 든다는 시카고 미술관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전시하고 있는 작품들이 잘 분류되어 있어 시대별로 변하는 미술사조를 쉽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술작품을 대표로 들었습니다만, 어느 분야든 세월이 흐르면서 주류 표현방식이 변하는 것은 기왕의 사조에 대한 반발을 비롯한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창홍교수가 쓴 <미학산책>은 미술을 포함한 예술의 사조변화가 당대의 미에 대한 관점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미학은 미, 미적 체험, 미의 창조, 그리고 교육법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심미활동의 기원, 미적 경험의 심리, 미학 활동의 구조와 형태 등을 학습하고 탐구하는 것을 통해 철학적 시야와 이론적 소양을 넓히고 미학적 관점으로 세계를 보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미학을 이해하게 되면 인류의 가치추구와 예술 창조에 대한 미학적 수양과 예술적 감상능력을 높일 수 있고, 일상생활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미적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만 미학과 관련된 학과의 체계가 매우 방대하고 구조가 복잡하며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난해하고 심오하기 때문에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했으니 아무래도 저와 같은 범인으로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울 듯합니다. 간혹 주변에서 미학을 전공하였다는 분들이 본디 배운 일은 하지 않고 세속의 일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면 미학이 정말 어려운 모양이다 싶기도 합니다.

다행히 <미학산책>은 미학의 입문서로 안성맞춤이 아닐까 하는 것은 소크라테스에서 소쉬르에 이르기까지 미학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 가운데 명성이 높고 영향력이 컸던 대표적 인물 34명의 중요한 미학적 이론과 성과를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들을 통하여 서양 고전 이성주의 미학, 중세 미학, 계몽주의 미학, 그리고 현실주의 미학에 이르기까지 주요 유파의 미학적 주장과 사상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박스형태의 독립된 공간으로 만들어 둔 ‘미학사전’에 중요한 용어를 압축하여 설명하고 있어 개념정리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모든 학문이 그리스 철학에 근원을 두고 있듯이 미학 역시 그 뿌리를 찾아 올라가다보면 그리스 철학에 이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에서 미(美)는 하나의 단어로 옮기기 어렵지만 형태학적인 아름다움과 내재한 덕성을 두루 갖추고 있는 상태, 즉 미(美)와 선(善)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임을 의미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소크라테스를 서양 고전 이성주의 미학의 시조(始祖)로 꼽고 있습니다. ‘미덕이 곧 지식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한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사용하는 사물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아름답다, 선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모두 사물이 지닌 적합성이라는 동일한 관점에서 비롯된다.(19쪽)”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물이 목적에 적합하게 쓰이는 것을 미(美)라고 할 것이므로 그에게 있어 미(美)란 상대적인 개념이며 절대불변의 미는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한걸음 더 나아가 미의 본질이 자연사물에 있지 않고 이데아에 있으므로 다양한 등급으로 나눌 수 있는데, 최고의 이데아가 지극히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며 그것이 구현하는 미는 절대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절대미는 영원하며, 시작과 끝이 없고, 생기지도 사라지지도 않으며,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것은 시간, 장소, 대사에 따라 아름다웠다가 추해지는 것이 아니다.(34쪽)”라고 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미학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미에 대한 개념을 보다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아름다운 사물은 하나의 살아있는 사물 혹은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사물일 수 있다. 이 사물의 각 부분은 일정한 배열을 가지고 있으며 일정한 크기를 지닌다. 즉 미란 크기와 질서가 잡힌 배열에 근거한다.(43쪽)” 그는 미의 기준을 질서, 균형, 명료성 등 사물의 완전성으로 보았는데, 여기에서 완전하다는 의미는 사물의 모든 부분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말한다 하겠습니다.

사물의 조화는 느낌으로 알 수 있는데, 미술을 모르는 제가 보기에도 참 아름답다고 느끼는 작품은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미학에 대한 많은 이론들이 나왔지만 조화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사물의 완전성’이란 근원적인 설명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스 말기 철학자 롱기누스는 <숭고론>를 통하여 문예를 인간의 정신과 심미활동의 결과로 보는 견해의 기초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숭고하다고 여기는 것은 가장 적합한 성분을 선택해서 그것으로 유기적인 통일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70쪽)”이라고 말해 역시 ‘조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구체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세 기독교 미학의 창시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은 아름답고 선하시며, 신의 미와 선은 피조물을 까마득히 초월한다. 아름답고 선한 신이 아름답고 선한 세상을 창조했다.(78쪽)”라고 말한 것처럼 기독교 미학에서는 신을 미의 본원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시대의 문예에 나타난 형식미는 중세에 이르러 더욱 강조되는 경향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중세미학을 집대성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에 적은 미에 대한 개념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미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완결성 혹은 완전성이다. 완전하기 못한 것은 결과적으로 추하다. 둘째, 적합한 비례 혹은 조화이다. 셋째는 명료성이다. 선명한 색을 띠는 것은 아름다운 것으로 인정된다.(91쪽)”

앞서 말씀드린 시카고 미술관에서 여러 점의 중세미술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이 작품들을 보면 아퀴나스의 ‘명료성’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퀴나스가 말하는 선명한 색으로 면들을 나누고 있어 선이 분명하여 천편일률적이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는 개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름답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는 저의 탓이겠지만, 아름다움을 보는 일반인의 시각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음을 알게 합니다. 절대미는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말씀대로라고나 할까요?

미학 역시 르네상스시대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자연과학의 영향을 받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누군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 대하여 “과학이 예술과 결혼했고 철학이 이 완벽한 결합 위에 입맞춤했다.(105쪽)”고 평했다고 합니다. 다빈치는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라고 했던 그리스 예술을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는 예술작품에서 자연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하여 회화기법에 투시학, 색체학, 해부학, 비례학, 구도학 등의 자연과학을 응용하였습니다. 특히 그가 30여구의 시체를 직접 해부하여 인체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감은 각 부분이 신성한 비례를 이루고 각각의 특징이 동시에 기능해야만 보는 사람이 조화로운 비례를 느낄 수 있다.(108쪽)”고 말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 역시 이런 점을 고려하였기 때문인지 다빈치의 미학을 설명하면서 그의 작품 <모나리자>를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기법을 처음 적용한 것 아닐까하는 억측도 해봅니다.

17세기 들어 미학은 한층 발전한 자연과학의 성과를 토대로 하고, 이성주의 경험주의 등 철학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미학 가운데, 인간에게는 천성적으로 선악과 미추를 구별하는 능력이 있으며 선악을 구별하는 도덕감과 미추를 구별하는 미감이 서로 일치한다는 영국의 철학자 섀프츠베리의 미학에 이끌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에게는 미를 인식하는 외재적 감각능력에 해당하는 오감(五感) 이외에 식스 센스, 즉 심미안이 있다는 심미내재적감관설이 저의 부족한 예술감상력을 변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심미안이란 일종의 심리적, 이성적 능력인데 동물적인 외재적 감각능력만으로는 미를 제대로 인식하거나 감상할 수 없기 때문에 마음과 이성이라고 하는 고상한 내재적 능력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섀프츠베리의 주장은 “많은 사람들이 미를 정확하게 감상하지 못하는 가장 큰 뚜렷한 원인은 상상력이 충분히 민감하지 않아서이다. 정교한 느낌이 전달되려면 이 민감함이 없어서는 안 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심오하고 난해한 철학의 도움을 청할 필요는 없다.(148쪽)”고 한 데이비드 흄의 미학적 설명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 단순무식한 제 입장에서 말한다면 ‘그림을 보았더니 참 좋더라’는 느낌이 들면 충분한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18세기 계몽주의는 다양한 분야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미학분야 역시 그 영향을 받아 전례없는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는 미학의 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장자크 루소는 체계적인 미학 사상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감상적 자연주의 사조에 영향을 주었으며, 드니 디드로의 현실주의 미학이 주목할 만하다고 합니다. 한편 독일 철학자이자 미학자인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은 미학 학과를 정식으로 창립한 최초의 인물로서 ‘미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로써 미학이 서양의 근대 인문과학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그는 “미학의 대상은 감성적 인식의 그 자체적 완전성이며, 이것이 곧 미이다. 이와 반대로 감성 인식의 불완성이 곧 추이다.(203쪽)”이라고 정의하였는데, 감성인식의 완전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사유의 조화, 질서의 조화, 기호의 조화라는 세 가지 필수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19세기 들어 페히너의 실험미학이 등장하는데, 이는 심리학의 연구방법을 적용하여 미학과 미적경험을 연구하는 사조로 미학과 자연과학을 결합함으로써 연구대상을 객체에서 주체로 전환시키고 미의 본질을 탐구하는데서 주체의 심리적 경험을 연구하게 된 점이 특이하다 하겠습니다.

20세기 들어서 예술의 사조도 다양해진 것처럼 크로체의 표현주의 미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미학, 후설의 현상학 미학, 카시러의 상징주의 미학,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미학,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사회비판 미학, 아도르노의 부정의 미학, 소쉬르의 구조주의 미학에 이르기까지 미학 이론 역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이론이 새로운 예술사조를 이끌어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직관만으로 예술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간 것 같습니다. 작가의 작품제작 배경을 알지 못하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평론가들의 해설에 의지하여 작품을 이해하려는 경향마저도 등장하게 되는데, “능수능란한 글 솜씨와 화려한 미사여구로 무장한 일부 평론가들의-특히 높은 인기와 영향력을 누리고 있는 일부 평론가들의-지나친 정치의식 또는 정치적 의도가 예술 행위 자체를 중심에서 밀어내버리고 마치 자기네들이 주체인 양 행세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날선 추천사가 실감났던 책 <평론, 예술을 엿먹이다>에 크게 공감했던 것도 이런 경향에 대한 반발같은 것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난해한 작품을 이해하는 척하려는 것은 저의 문화적 허영심으로 포장하는 것도 쉽지 않은 듯해서 입니다.

<미학산책>은 처음 접하게 되는 중국 철학자의 책입니다. 저자가 미학에 관한 중국철학계의  많은 연구성과를 인용하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과 저자가 고른 34명의 등장인물(?)의 대부분이 철학자라는 점이 특이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인용한 인물들의 미학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 이외에도 그들의 삶 가운데 특이한 사항도 요약하여 그들의 미학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200여점이 넘는 미술, 조각, 채색도기 작품 등을 인용하여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 사진자료들 가운데는 제작자와 작품명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더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양기화는?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병리학을 전공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병원에서 신경병리학을 공부해 밑천을 삼았는데, 팔자가 드센 탓인지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을지의과대학 병리학 교수, 식약청 독성연구부장,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을 거쳐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상근평가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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