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다. 당시 여당의 실세이자 유력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전 의원과 지금은 고인이 된 고 김근태 의원이 입각을 앞두고 통일부와 복지부 장관직을 누가 맡을지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졌다. 이유는 두 사람 모두 정부 부처 내에서 위상이 높은 통일부 장관직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동영 전 의원이 통일부 장관을, 김근태 전 의원이 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러자 통일부 장관 자리를 놓고 김근태 전 의원이 정동영 전 의원과 기싸움을 하다 밀렸다는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복지부 장관의 위상이 낮았던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부처 가운데 보건복지부만큼 하는 역할이나 업무가 많은 부처도 없다. 보건 위생과 식품 및 방역, 의정과 약정 업무는 물론 건강보험 및 국민연금, 사회 복지와 여성 복지 및 보육 등의 사무를 담당한다. 하지만 그 업무 범위에 비해 중앙 행정 기관으로서 위상은 초라하다. 

정부조직법 관련 규정을 보면 행정각부의 명칭을 순서대로 나열해 놓았다. 사실상 이 순서는 국무총리가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위원이 그 직무를 대행하는 ‘국무총리 직무대행’ 순서로 여겨진다. 그 순서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은 현 15부처장관 중 거의 말미에 자리잡고 있다. 복지부장관보다 순서가 낮은 국무위원은 환경부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이다. 이 중 환경부와 고용노동부는 예전에 보건복지부내 조직에는 떨어져나가 독립한 부처이다. 따라서 국무총리 직무대행 순서로 따져볼 때 복지부장관의 위상은 상당히 낮은 편이다.

현 보건복지부의 실질적인 모태는 1948년과 이듬해인 1949년에 신설된 사회부와 보건부가 1955년 통합하면서 출범한 보건사회부이다. 이후 보건사회부 산하에 노동청이 만들어지고 다시 복지연금국과 환경청이 신설됐다. 지금의 노동부와 환경부는 보건사회부에서 떨어져 나가 독립한 부처이다. 1994년에는 정부조직 개편으로 보건사회부에서 현재의 보건복지부로 개편됐고, 1998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신설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1948년 정부 출범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보건복지부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보건복지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다. 60여년 넘는 기간 동안 보건복지 담당 부처의 조직과 명칭이 변경되는 동안 단 한 번도 보건의료를 핵심에 두고 조직 개편이 단행된 적이 없었다. 보건과 복지업무를 관장하는 보건복지부란 명칭이 무색할 지경이다.

 

하긴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보건복지의 비중이 낮은 곳도 없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국민의료비 재원구성에서 우리나라의 정부부담 규모는 터무니없이 낮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 약 1/3 수준에 그친다. 특히 보건의료 부문의 정부 예산은 초라할 정도다.

올해 보건복지부의 예산은 각종 기금을 포함해 총 36조6,928억원이다. 이 중에서 보건의료 부문 예산은 총 7조5,955억원이다. 여기에서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예산 6조113억원을 제외하면 실제로 보건의료 부문에만 지출되는 예산은 1조5,842억원에 불과하다. 올해 영유아 보육료 예산이 2조3,913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정말 터무니없다. 전국적으로 8만개가 넘는 의료기관 수에 전국민 건강보험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의 보건의료 부문 예산이 2조원에도 못미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대선 후보들은 보건의료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들이 제안하는 공약만 보면 당장이라도 무상의료가 실현될 것 같다. 하지만 거기에 필요한 재원마련에 대한 고민은 별로 없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속으로 곪아가고 있는 보건의료 현안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오로지 표만 바라본 한건주의식 공약 뿐이다. ‘대 서민용 코스프레’란 비난을 들어 마땅하다. 당연히 의료계는 물론 국민들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다음 정권에서는 또 어떤 정치인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을 지 모르겠다. 그들에게 복지부장관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위에 놓인 자리처럼 여겨질 수 잇다. 건강보험 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국민들의 불만도 높고, 의료계와 협의도 쉽지 않다. 뭔가를 의욕적으로 하고 싶어도 예산을 확보하기도 어렵다. 잘해도 티가 안나고 못하면 그 책임만 뒤집어 쓸 수 있는 자리다.

과연 누가 보건복지부를 이렇게 만들었나 따져보자. 정치권과 정치인이다. 평소에는 보건복지에 눈길조차 안 주다가 선거철만 되면 잔치상에 파리 꼬이듯 달라붙고 선거가 끝나면 나 몰라라 내팽개친다. 보건복지 예산 빼앗아 지역구 챙기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보건복지와 관련된 일만 터지면 목청을 높이고 질타하면서 법을 바꾸고 새로운 규정을 만들지만 정작 예산을 확보하는 일은 외면한다. 돈없이 립서비스로 보건복지가 실현될 수 있나. 

다음 정권에서 복지부장관을 누가 맡든 꼭 당부하고 싶다. 예산부터 챙기라고. 그렇게 챙긴 예산으로 필요한 곳에 펑펑 인심을 써도 좋다. 보건복지 포퓰리즘? 말만 앞서고 제대로 예산 쓴 적도 없는데 무슨 포퓰리즘인가. 우리도 그런거 한번 제대로 누려봤으면 좋겠다. 곁불 쬐는 보건의료 정책은 더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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