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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피임약 맹신하다 임신·낙태"…실패율 15%의 함정일반약 전환시 오남용 부작용·성병 증가 등 우려…많은 여성들 효능·효과 오해
"외국선 실패한 정책 입증…복지부가 뒷북 치고 있어"

# A씨(24세, 여성)가 상담 전화를 한 건 2007년 7월. 임신 후 낙태에 대한 고민이었다. A씨는 남자친구의 성관계 강요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상태였다. 남자친구는 응급피임약을 복용하면 되지 않냐고 말하며 성관계를 강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둘은 성관계를 갖고 인근 약국(경기도 K시)에서 노레보정을 구입해 72시간 이전에 2회 복용했다. 하지만 둘다 출산을 원치 않았고, A씨는 몇 차례 상담을 진행하다가 결국 낙태를 하고 말았다. 

# 2012년 5월. B씨(32세, 여성)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B씨는 교제하던 남자와 피임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가졌고, 7시간 후 의사 처방을 받아 노레보정을 복용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응급피임약을 복용하고 며칠 안돼 급격히 사이가 나빠진 둘은 헤어졌다. 문제는 B씨가 6주가 지나서야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 낙태 시술을 받기로 마음먹고 병원을 찾았던 B씨는 진료실 앞에서 마음을 돌리고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B씨는 현재 상담을 받고 있지만 언제 다시 병원문을 두드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성관계 후 72시간 안에 응급피임약을 복용했지만 피임에 실패해 낙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낙태운동반대연합(이하 낙반연)에 따르면 한달 평균 30여건의 낙태 상담이 접수된다고 한다. 대부분 응급피임약인 노레보정을 복용하고 피임에 실패한 경우다.

노레보정은 24시간 안으로 복용하면 95%, 48시간 안으로 복용하면 85%, 72시간 안으로 복용하면 58%의 피임성공률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낙반연 김현철 회장은 “노레보정을 복용한다는 것은 강력하게 원치 않는 임신이라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임신이 되면 낙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경우인 것"이라며 "상담 전화는 여성의 본능에 의해 도움을 요청한 드문 사례이고, 대부분은 여성 혼자서 고민하다가 낙태를 결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낙태 상담은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2010년 8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위기임신상담신고센터(129)에 2011년까지 접수된 상담 건수만해도 2,700여건에 달한다. 특히 불법낙태 신고건수는 2010년(8~12월) 25건에서 2011년 68건으로 급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응급피임약이 일반의약품으로 전환돼 손쉽게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지난 7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의약품을 재분류하면서 응급피임약 노레보정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 것이다.

식약청은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한 배경에 대해 의약선진외국 8개국 중 5개국(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 스위스)에서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국가에서조차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이 원치 않는 임신은 물론 낙태를 줄일 수 없다는 보고가 속속 나오고 있다.

미국·영국·스웨덴 등 일반약 전환후 낙태율 그대로 거나 되레 늘어미국에서는 1992년 응급피임약의 사용을 지지하는 단체들이 ‘응급피임약을 쉽게 구입할 수 있게 하면 낙태율을 50% 이상 줄일 수 있을 것’라고 주장했었다.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보급한 이후 기대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지난 1998년부터 2006년 사이에 보고된 23개의 연구에서 하나같이 응급피임약의 접근성을 높여도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나 낙태의 비율을 크게 감소시킨다는 통계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반약 전환을 강하게 주장했던 제임스 트러셀(美 프린스턴대 교수) 등은 2011년 최근 응급피임약에 관한 보고서에서 “응급피임약의 접근성 확대가 비계획 임신을 감소시키는데 효과적이지 못하다”며 “그 이유는 무방비 성교 빈도가 증가하고 응급피임약의 효과도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응급피임약의 접근성이 높아지면 오히려 낙태가 늘어나고 성병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응급피임약 전문가인 안나 글래지어는 'British Medical Journal' 2006년 9월호 사설에 “응급피임약 사용이 뚜렷하게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낙태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1984년 1,000명 당 11명에서 2004년 1,000명 당 17.8명으로 증가했다”고 기고했다.

2010년 ‘Journal of Health Economics’에 실린 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청소년들에게 처방전 없이 무료로 응급피임약을 구할 수 있게 했을 때 청소년 성병 감염율이 5% 증가된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16세 이하의 청소년의 경우 성병 감염율이 12%까지 증가했다.

응급피임약의 부작용은 예상보다 컸다.   

WHO가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응급피임약의 부작용 빈도를 조사한 결과, 노레보정(1.5mg)의 경우 출혈 31%, 복통과 무기력, 오심이 각각 14%를 차지했다.

고려의대 신정호 교수(산부인과)는 “응급피임약은 평균 피임실패율이 15%로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해야 한다”며 “출혈 부작용이 가장 많은데 대다수의 여성은 이를 생리로 오인하고 임신이 되지 않았다고 안심하다가 뒤늦게 임신을 발견하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자궁외임신이나 난관파열까지 이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임신이 영구적으로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응급피임약을 복용하는 상당수의 젋은 미혼 여성들이 이런 부작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순천향대의대 이임순 교수(산부인과)의 ‘응급피임약처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급피임약을 처방 받는 여성들의 연령대는 20대가 66.7%로 높았고 미혼여성이 많다는 응답이 80.0%로 매우 높았다.

응급피임약을 반복해 사용하면 피임 효과가 떨어진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응답이 53.3%에 달했고,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이 23.3%로 나타났으며,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들어봤다는 응답이 13.3%로 나타났다.

반복된 응급피임약 복용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응답이 36.7%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는 정확하게는 모르나 들어는 봤다는 응답이 30.0%,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이 23.3% 등의 순이었다. 

복지부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 최안나 원장.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응급피임약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인 분류를 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진오비) 최안나 산부인과원장은 “복지부는 응급피임약의 부작용과 낙태 문제에 대한 고민없이 응급피임약의 일반약 전환을 단지 의약품 재분류 과정으로만 보고 있다. 기계적인 알고리즘에 의해서만 분류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복지부가 앞으로 상시분류하겠다고 하지만 그동안 응급피임약 부작용이나 낙태로 인한 희생은 누가 책임질거냐”면서 “최근 데이터는 응급피임약을 일반약으로 바꿔봐야 소용 없고, 사전피임이 효과적이라는 흐름인데 복지부는 뒷북을 치고 있는 셈이다. 응급피임약은 성폭행 등 소수의 피해자를 위해서만 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정부는 원치 않는 임신을 줄이고 낙태를 예방하기 위해 피임 진료의 보험급여화 등 정상적인 피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그동안 의사가 피임상담을 해도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이유로 의사도 피임이 적극적으로 진료할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의사도 자발적으로 피임 상담에 참여해야겠지만 정부가 먼저 피임 치료 영역을 급여화해 병원 문턱을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의규 기자  sunsu@rappor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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