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7개월간 환자들의 의료서비스 이용환경에 많은 변화를 불러오는 정책들이 시행됐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작년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경증질환 약제비 차등제'를 비롯해 올해 4월부터 시작된 '의원급 만성질환 관리제'와 일괄 약값인하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제도는 의료기관 기능의 재정립과 의료전달체계 개선, 그리고 환자의 의료비 부담 완화 등을 목표로 도입됐다. 본지는 이 3가지 제도가 실제로 환자와 의료기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기 위해 취재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 방식의 기사를 작성해 봤다.<편집자주>


서울의 한국대학병원 인근에서 11년째 개원 중인 제일내과의원 박 원장은 최근 정부가 추진해온 약가 및 의료전달체계 개선 정책을 지켜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지우기 어렵다.

정부 정책이 환자의 의료비 절감과 1차의료기관 활성화를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지만 기대만큼 효과를 체감하기도 힘들고, 대체 왜 이런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를때도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정책들이 시행되면서 환자가 느는 효과는 있었지만 달갑지만은 않았다.  

작년 10월부터 시작된 경증질환 약값 차등제만 해도 그렇다.

동네의원의 약제비 본인부담 비중은 그대로(30%)여서 그런지 제도 시행 후 얼마 안있어 대학병원을 다니던 환자들이 조금씩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서 넘어온 환자들 대부분은 의사에게 진찰을 받고싶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처방전이나 빨리 뽑아 달라는 정도의 '처방전 리피트'가 많았다.근처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온 60대의 당뇨병 환자 최모씨만 해도 어느날 불쑥 찾아와 석달 치 처방전을 내밀어 박 원장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매일 평균 1~2명씩 찾아오는 이런 환자들보다는 단골환자 한명을 더 살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게 솔직한 속마음이었다. 

초진 환자가 월 평균 30명 늘면 40만원 정도 진료 수입이 늘어나는건데 처방전 리피트해주려고 꼭 그래야 하나 싶었다.      개원한지 얼마 안된 이웃 B내과의원에는 처방전 리피트 환자들이 몰린다는 얘기가 들려오긴 하지만 크게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여기에 올 4월부터 약가인하와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가 동시에 시행돼 더 혼란스러워졌다.

사실 약가인하야 약국이나 도매상의 문제지 의사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칠 게 없었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약제는 갑자기 다른 약으로 바꾸면 저혈압 등 부작용이 올 수도 있어 약가인하 품목으로 갈아타면서까지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오리지널과 제네릭 가격이 비슷해지는 제품은 기왕이면 오리지널 쪽으로 처방해 변경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만성질환관리제도 시행된지 얼마 안되지만 앞으로 환자들과 갈등만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 원장은 건강보험공단에서 발송된 만성질환관리제 홍보용 리플렛을 접수데스크에 쌓아 놓고 내원 환자들을 대상으로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고혈압 및 당뇨병 환자(65세 미만)의 재진료 920원을 깎아주는 거 외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어서인지 환자들도 시큰둥한 반응이다.  

의사협회 새 집행부에서 공식적으로 만성질환관리제를 반대하고 있어 막상 만성질환 관리를 받겠다는 환자들이 늘어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다.

게다가 앞으로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가 감기 때문에 내원했을 때  왜 진료비를 할인해 주지 않느냐고 따져 묻지나 않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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